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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노래와 세상]일렁이는 보리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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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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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판에 나가면 시나브로 계절의 변화가 느껴진다. 특히 바람결에 일렁이는 보리밭은 초여름으로 내닫는 길목의 척후병이다. 연두색 보릿잎이 쑥쑥 자라서 제법 까칠해지면 햇볕도 덩달아 여물어진다. 그 보리밭 앞에서 우리 가곡 ‘보리밭’을 떠올리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저녁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아동문학가 박화목이 작사하고, 윤용하가 곡을 붙인 이 노래는 한국전쟁 당시 만들어졌다. 부산 피란시절 북이 고향인 두 사람이 전쟁에 지친 피란민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었다. 어느 날 윤용하가 보리밭을 걷다가 자꾸만 누가 부르는 듯한 환청을 듣고 악상을 떠올렸다. 박화목은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로 시작하는 ‘과수원길’도 작사했다.

“아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 가슴 시린/ 보릿고개 길/ 주린 배 잡고/ 물 한 바가지/ 배 채우시던/ 그 세월을 어찌 사셨소/ 초근목피의 그 시절/ 바람결에 지워져 갈 때/ 어머님 설움”

2015년 발표한 진성의 ‘보릿고개’는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 본인이 직접 쓴 노랫말이다. 아버지는 유랑극단 단원이었고 어머니는 가난에 지쳐 집을 나갔기 때문에 진성은 친척집을 전전해야 했다. 옆집 할아버지에게 창을 배워서 노래로 배고픔을 달랬다.

가수 진성에게 보릿고개는 다른 이들과는 무게감이 다른 단어였으리라. 어쨌든 음력 사월 무렵 작년에 수확한 작물이 바닥나서 보리가 익을 때까지 배를 주렸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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