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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美·中, 알래스카 이어 ‘말싸움 2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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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보리서 외교수장 맞붙어

왕이 “약자 괴롭히며 패권 추구” 블링컨 “인종청소 용납 못해”

7일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미국을 “약자를 괴롭히거나 패권을 추구”한다고 비판하자,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은 중국이 “자국민에 대한 인종 청소”를 한다고 맞받아쳤다. 지난 3월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 회담에서 양측이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1시간 넘게 설전을 벌인 후 51일 만에 공개 석상에서 ‘2차전’이 벌어진 것이다.

‘다자주의와 유엔 중심의 국제 체제 옹호’를 주제로 한 이날 안보리 회의는 5월의 순회 의장국이 된 중국 주도로 열렸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이 파리기후협약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탈퇴하자 중국은 미국이 ‘일방주의 패권국가’라고 비판하며 유엔을 주도하는 ‘다자주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이날 의장 자격으로 회의를 주재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우리는 약자를 괴롭히거나 패권을 추구하지 않고 공평성과 정당성을 추구해야 한다”면서 미국을 겨냥했다. 그는 “제재와 다른 강제 조치는 다른 비강제적 수단이 모두 소진된 후에 정치적 타결을 추구할 목적으로만 사용돼야 한다”며 “안보리를 우회하는 모든 일방적 행동은 불법이며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중국의 신장 위구르 인권침해나 대북 제재 위반 등을 문제 삼아 중국에 ‘독자 제재’를 부과한 것을 비난하는 취지였다. 이와 함께 왕 부장은 “우리는 패권을 추구하는 대신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 모든 국가는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갖고 있고 자국의 현실에 맞는 개발의 길을 고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블링컨 장관이 발언권을 얻어 반박에 나섰다. 그는 “어떤 이들은 정부가 국경 내에서 하는 일은 그 나라의 사정이며 인권은 사회마다 달라지는 주관적 가치라고 주장한다”라며 “국내의 법적 관할권을 강력히 주장하는 것이 어떤 나라에 자국민을 노예화하고, 고문하고, 실종시키고, 인종 청소를 하거나 다른 어떤 식으로든 인권을 침해해도 되는 백지수표를 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중국을 지목해 말하지는 않았지만 ‘인종 청소’란 말을 사용해서 사실상 중국의 신장 위구르 인권침해를 지적한 것이다.

블링컨 장관은 또 “사람들의 고통을 경감시키고 인권을 인정하며 보호하는 것”이 유엔의 창설 목적이라며 “가장 강력한 국가들도 이 원칙을 준수하며 스스로 ‘자제’하는 데 동의했다. 미국은 당시 지구상에서 비교도 안 될 만큼 가장 힘이 센 나라였는데도 이렇게 했다”고 말했다. 중국이 유엔의 수호자 행세를 하지만 사실 미국이 최강대국일 때 유엔 창설을 주도했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말이었다.

이날 안보리 회의에서는 블링컨 장관에 이어서 발언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이 사실상 중국을 지지하고 나서서 눈길을 끌었다. 그는 “최근 우리는 배타적인 집단이 만든 새 규칙을 모두에게 부과하려는 시도를 목격하고 있다”며 “만약 이런 맥락에서 새 행정부가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열려는 것이라면 국제관계를 더 긴장시키고 세계에 잘못된 단층선을 만들 것”이라고 블링컨 장관을 겨냥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쿼드’나 ‘민주주의 정상회의’로 중·러에 맞서려고 하는 것을 비판한 것으로 유엔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연대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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