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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첫 기부] “시댁은 성탄절 장바구니도 기부… 아이들도 배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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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행복입니다] 아빠 BBC 인터뷰 중 난입해 웃음준 남매

조선일보

로버트 켈리 부산대 교수와 김정아씨 부부가 딸 예나(왼쪽)양과 아들 유섭군을 안고 있다. 켈리 교수의 BBC 방송 출연 중 온 가족이 돌발 등장하는 해프닝이 일어났던 2017년 찍은 사진이다. 지금은 예나양은 여덟 살, 유섭군은 다섯 살이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공


“내가 편지 보냈던 하산 오빠는 어떻게 지낸대?”

부산에 사는 초등학교 2학년 예나(8)가 얼마 전 이렇게 엄마 김정아(45)씨에게 물었다. 하산은 예나가 내는 후원금으로 도움을 받고 있는 형편이 어려운 해외 아동이다. 예나는 “그 오빠는 연필을 사려고 온종일 일한대”라면서 과학관에 갈 때 쥐여준 용돈 2000원 중 1000원을 남겨와 기부 저금통에 넣었다고 한다. 김씨는 “4년 전 ‘그 사건’을 떠올리면 아직도 식은땀이 난다”며 “그렇게 천방지축이었던 아이들이 어느새 자라 나눔의 의미도 깨닫고 실천해 참 대견하다”고 말했다.

예나네 가족은 지난 2017년 ‘BBC 방송사고’로 전 세계 사람들의 큰 관심을 받았었다. 아빠인 로버트 켈리(49)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당시 BBC와 화상 통화 인터뷰를 진행하던 도중 예나가 방문을 열고 ‘난입’했고, 한 살이었던 둘째 유섭이도 보행기를 탄 채로 방에 들어왔다가 엄마 김씨에게 제지돼 나가는 장면이 고스란히 방송을 탔었다. BBC가 이 훈훈한 돌발 사건을 홈페이지에 크게 소개해 많은 이가 즐거워했고, 각국에서 인터뷰 요청도 쇄도했었다.

그때 보행기를 탔던 유섭이는 이제 아빠가 집에 오면 꼭 안아주며 ‘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애교 많은 다섯 살이 됐고, 예나는 꾸지람을 듣고 나면 ‘엄마가 나에게 모든 걸 다해줘서 고마워요’라고 편지를 써서 건네는 의젓한 아이로 자랐다.

조선일보

4년 전 BBC와 화상 인터뷰 진행 도중 로버트 켈리 부산대 교수의 뒤로 불쑥 나타난 예나양과 유섭군의 모습. /BBC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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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그동안 예나·유섭이의 성장과 함께 가족만의 특별한 문화가 생겼는데 바로 ‘나눔’”이라고 했다. 네 사람 모두가 자기 이름으로 다양한 곳에 매달 기부를 하고 있다. 처음엔 부부만 기부했었는데, 아이들에게도 나눔을 일찍 체험하게 해주고 싶어 두 아이 이름으로도 기부를 했다. 예나는 세 살 때부터, 유섭이는 태어난 해부터 시작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을 통해 기부한 돈은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쓰인다. 켈리 교수와 김씨는 환경과 인권 관련 단체에 꾸준히 후원하고 있다.

김씨는 “미국에 있는 시댁을 보면 대학생 사촌들은 재능 기부로 지역사회 청소년들 공부를 도와주고, 어머님도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 때 장을 본 것 중 일부는 기부하는 것이 너무 자연스럽더라”며 “우리 아이들에게도 자연스러운 나눔 문화를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부를 하면서 가족 간 대화 주제도 폭이 넓어졌다. 하산의 안부를 묻는 예나와 “너희가 물을 낭비하고 세제를 많이 쓰면 강과 바다의 물고기들이 아파(엄마)” “가장 가까운 북한의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해(아빠)” 같은 대화들이 자주 오간다. 부부는 “자기가 못 가진 것을 생각하면 불행하지만 자기가 가진 것을 쪼개고 나누면 기쁨을 얻는 것 같다”며 “예나와 유섭이가 나눔의 의미를 알고 자기가 가진 재능으로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씨는 서른일곱 살에 예나를 낳았고 유섭이는 마흔 살에 출산했다. 출산이 다소 늦어진 건 부부가 부모가 되기로 결심하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 부부의 행복은 단연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이다. 특히 아이를 갖기 전 “좋은 아빠가 될 준비가 안 됐다”고 말했던 켈리 교수는 요즘 아내 김씨에게 자주 “가족이 있어서 너무 좋다” “나에게 이런 가족을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말한다고 한다.

그러나 다문화 가정으로서 가끔 마음 아픈 일도 겪는다. 아이들이 친구들에게 ‘외국 괴물’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털어놓거나, 가족끼리 지하철을 탔는데 어르신들이 김씨를 두고 이상한 눈초리로 수군거리는 일도 있어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김씨는 “우리 가족뿐 아니라 국내에 있는 많은 다문화 가정이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며 “보육 기관이나 교육 기관에서의 인식 교육 등을 통해 다문화 가정 아이가 상처받는 일이 줄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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