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집 추모공원에 피해자 유골함
광주시 "애초에 위법...다 이전하라"
유족 "유골까지 억지로 옮기라니
나라가 어머니 또 피해자로 만들어"
나눔의집, 권익위에 고충민원 접수
권익위 "면밀히 검토" 조정 여부 주목
지난 2월 작고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정복수 할머니의 사진.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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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지나간 걸 아는데, 이제는 안전하다는 걸 아는데도 할머니는 가끔 꿈을 꾸면 위안소에 갇힌 열 몇살 때로 되돌아갔다.
“엄마, 엄마….” 다시 무서움에 떠는 어린 소녀가 된 할머니는 허공에 팔을 허우적거리며 잠꼬대로 몇번이고 엄마를 불렀다. 할머니와 방을 함께 쓰던 영문 모르는 어린 손자는 “할머니도 참, 다 큰 어른이 왜 엄마를 찾지?”라며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다.
지난 2월 별세한 최고령 위안부 피해자(향년 99세) 고(故) 정복수 할머니의 손자 김지형(가명ㆍ54)씨가 전해준 어린 시절 이야기다. 할머니가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는 어른이 된 뒤에야 알게 됐다. 지형씨는 지난달 29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도 그런 꿈을 꾸곤 하셨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엄마를 찾다가, 깨어난 뒤엔 무서운 마음에 소리를 지르셨다.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정 할머니는 유언으로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위안부 피해지원 시설 나눔의집에 묻히길 원했다. 나눔의집 한켠에 조성된 추모공원에는 이곳에서 생활하다 영면에 든 다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9명의 유골함이 봉안돼 있다. 정 할머니는 2013년부터 나눔의집에서 생활했다.
2일 경기도 광주 퇴촌면 나눔의집에 조성된 추모공원 전경. 우상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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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형씨는 아직도 할머니의 유언을 지키지 못했다.
“광주시에서 법 위반이라면서 나눔의집 추모공원에 유골함을 봉안하면 안 된다고, 지금 있는 다른 할머니들 유골함들도 다 옮기라고 했대요. 할머니께는 나눔의집이 ‘내 집’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죽어서도 내 집에서 동무들과 함께 지내고 싶다’는 유지를 받들어 그곳에 모시려 했는데, 법 위반이라니…. 할머니들 유골함이 혐오시설이나 환경오염 시설도 아닌데, 도무지 이해가 안 갑니다.”
30여분 간 전화 인터뷰를 하는 동안 지형씨는 몇번이나 울먹이며 말을 멈췄다. 정 할머니의 유골함은 현재 부천의 한 사찰에 안치돼 있다.
송기춘 나눔의집 민관합동조사단 공동단장.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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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실은 지난해 경기도의 민ㆍ관 합동조사단 조사에서 드러났다. 조사단이 나눔의집과 관련한 여러 위법 의혹들을 살펴봤는데 수변구역 유골함 봉안도 그중 하나였고, 이를 시정하라고 결론 내렸다.
이에 따라 광주시는 나눔의집에 과태료 180만원을 부과하고, 10월 1일까지 유골함을 이전하라고 명령했다. 장사법에 따르면 이전 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광주시와 경기도는 상황 자체는 안타깝지만, 법 규정이 명확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장사법 해당 조항은 예외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 법을 이행하는 행정기관으로서는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추모공원은 지상에 세운 추모비와 조형물 안에 도자기 유골함을 봉안해놓은 형식이라 수자원 오염과는 큰 연관이 없어보이지만, 행정 기관이 법 규정을 자의적으로 확대해석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위안부 피해자 고(故) 이용녀 할머니의 고향인 여주시는 지난해 8월 할머니를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했다. 사진 여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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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유족들은 어머니들이 눈감은 뒤에도 편히 쉬지 못한다는 생각에 괴로워했다. 어버이날을 엿새 앞둔 2일 카네이션을 들고 추모공원을 찾은 고(故) 이용녀 할머니(2011년 작고, 향년 87세)의 아들 서병화(61)씨를 나눔의집에서 만났다.
이 할머니는 2000년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국제법정’에 참석해 위안부 피해에 대해 증언하는 등 생전 일제의 반인도범죄 만행을 알리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어머니 이야기를 하던 병화씨의 눈시울은 금세 붉어졌다.
2일 경기도 광주 퇴촌면의 나눔의집을 찾은 고(故) 이용녀 할머니의 아들 서병화씨가 어머니 흉상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다. 우상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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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못 지켜줘서 어머니들이 전쟁터에 끌려가 원치 않는 일을 당하셨잖아요. 그랬던 나라가 이제는 어머니 유언에 따라 묻힌 이 곳에서 유골함을 파서 다른 데로 옮기라는 둥 황당한 이야기를 합니다. 어머니가 원치 않는 일을 또 하랍니다. 그렇게 고통받고 돌아가셔서 이렇게 묻혀 계신 것도 억울한데…. 이게 우리 어머니들을 또 피해자로 만드는 게 아니면 뭡니까.”
함께 추모공원을 찾은 고(故) 김순덕 할머니(2004년 작고, 향년 84세)의 아들 양한석(73)씨도 가슴이 무너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김 할머니는 생전 나눔의집에서 지내며 매주 수요집회에 참석해 일본이 사죄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인 투사였다. 소녀의 고통을 담은 김 할머니의 작품 ‘못다 핀 꽃’과 ‘끌려감’은 피해 실상을 국내외에 널리 알렸고, 국가지정기록물로도 지정됐다.
김순덕 할머니의 작품 '못다 핀 꽃'. 중앙 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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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이션 꽃다발을 놓고 ‘못다 핀 꽃의 주인, 연꽃 되어 잠드시다’라고 적힌 묘비를 한참 쓰다듬던 한석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3년 전 쯤 몸이 많이 안 좋아지셨는데, 그때 유언으로 나눔의집에 묻어달라고 하셨다. 먼저 떠난 뒤 나눔의 집에 묻힌 다른 할머니들을 명절 때마다 스님들이 와서 챙기고, 사람들이 잊지 않고 추모하러 와주는 게 좋아 보이셨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또 “나에게는 다 어머니 같은 분들이었는데, 계속 이곳에서 함께 지내실 수 있는 방법이 정말 없겠느냐”며 답답해했다.
2일 경기도 광주 퇴촌면 나눔의집 추모공원에서 위안부 피해자인 고(故) 김순덕 할머니의 아들 양한석씨가 어머니의 묘비를 어루만지고 있다. 양씨는 어버이날을 앞두고 카네이션을 어머니의 유골함에 헌화했다. 뒤쪽은 고(故) 이용녀 할머니의 아들 서병화씨. 우상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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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함 이전 명령 소식에 놀란 것은 유족 뿐만이 아니었다. 현재 나눔의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강일출 할머니의 가족은 최근까지도 강 할머니와 함께 지낸 정복수 할머니의 유골함이 다른 사찰에 가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강 할머니도 사후 추모공원에서 영면에 들기를 원한다고도 전했다.
이에 나눔의집 측은 지난달 28일 국민권익위원회에 고충민원을 접수했다. 권익위는 행정기관의 소극적인 처분이나 불합리한 행정제도로 인해 불편을 겪는 국민이 민원을 접수하면, 이를 조사하고 국민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처리한다. 권익위 관계자는 “사안을 면밀히 조사하고 종합적으로 검토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경기도 광주 퇴촌면 나눔의집 추모공원에 있는 고(故) 김순덕 할머니와 고(故) 이용녀 할머니 추모비. 우상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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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수 할머니의 손자 지형씨는 전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뼈있는 말을 남겼다.
“나라가 힘이 없어 할머니들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일본은 아직 제대로 된 사죄도 안 합니다. 백번 양보해서 다른 나라와의 일은 어쩔 수 없다고 칩시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서 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거창한 게 아니라 원하는 데서 편히 쉬실 수 있게 해달라는 게 전부입니다. 우리 할머니 생전에 나눔의집에 와서, 또 돌아가신 뒤 빈소에 찾아와서 도와주겠다고 한 수많은 국회의원에, 장관에, 그 높으신 분들은 지금 다 어디 갔습니까.”
유지혜ㆍ박현주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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