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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법 없이도 사는 법] 위안부 재판부의 ‘혼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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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2차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패소한 21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488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기자회견을 앞두고 정의기억연대(정의연) 관계자들이 사법부를 규탄하는 문구를 부착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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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 15부(재판장 민성철)이 ‘국가면제’ 이론을 들어 위안부 피해자들의 소송을 각하했습니다. 피해자들에게 첫 패소를 안긴 이 판결은 큰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국가면제는 주권평등 원칙상 한 국가가 다른 국가 재판권 행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국제법 원칙입니다. 불과 3개월 전 다른 재판부(민사 34부) 가 ‘반인도적 사건에는 국가면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며 피해자 손을 들어준 것과 정반대 결론입니다.

법원은 ‘선례(先例)’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판사들이 비슷한 사건의 판결문을 수시로 검색하는 것도 그 이유입니다. 앞선 판결의 결론을 따르는 것은 가장 쉽고 안전한 방법입니다. 그런데 ‘일본 논리를 따랐다’ ‘피해자 인권을 외면했다’등의 비난을 감수하고 민사 15부가 3개월 전과 정반대의 결론을 내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국제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국가면제’는 국제 관습법의 한 내용입니다. 국제 관습법은 국내 법률과는 달리 성문(成文)법이 아닌 ‘원칙’입니다. 그렇지만 효력은 국내 법률과 동일합니다.

앞선 재판부는 ‘반(反)인도적 사건’등 강행법규 위반에는 국가면제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국제관습법이 바뀌어 국가면제에 예외가 생겼다고 본 것입니다.

이번 재판부는 ‘실증’에 나섰습니다. 해외 사례를 광범위하게 분석했습니다. 국제 관습법은 성문법이 아니기 때문에 내용 변경을 조문(條文)으로 확인할 수 없고, 실제 적용 사례를 일일히 살펴야 합니다.

재판부는 2차 대전 중 독일의 강제징용으로 피해를 입고 이탈리아 법원에 독일을 제소했던 루이키 페리니씨의 사례를 자세히 살폈습니다. 이탈리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독일의 배상책임을 인정했지만, 2012년 국제사법재판소(ICJ)는 국가면제 이론에 따라 독일의 책임을 부정했습니다. 전쟁 등 국가의 주권적 행위에서 빚어진 일인 만큼 손해배상은 소송이 아니라 외교적 협상으로 해결하라는 취지입니다.

페리니 판결 뿐 아닙니다. 70쪽의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ICJ규정, UN 국가면제 협약을 비롯해 슬로베니아 대법원, 폴란드 대법원 벨기에 및 브라질 대법원 사례도 들여다봤습니다. 모두 2차 세계대전 중 자국 영토에서 독일군의 불법행위에 대해 자국 법원에 소송을 낸 사례들입니다.

그 결과 재판부는 “이들 사건에서 모두 독일에 대해 국가면제를 인정했다” 며 “국가면제를 부정한 사례는 이탈리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그리고 서울중앙지법 2021.1.8 선고 2016가합505095 판결(앞선 손해배상 판결) 뿐”이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탈리아 사례는 ICJ가 그 정당성을 부정했으니 중앙지법 사건도 마찬가지 결론이 예상되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재판부로서는 그 결론을 따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검증 결과 ‘국가면제’ 는 여전히 살아 있는 국제관습법이기 때문입니다.

민사 사건에서 원고와 피고 주장이 대립하면 재판부는 그 중 설득력 있는 쪽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피고 일본은 일체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재판부가 ‘혼공’(혼자공부)으로 원고측 주장의 타당성을 판단한 것입니다.

이 사건의 최종결론은 대법원이 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명수 대법원은 2018년 강제징용 사건에서 소멸시효 법리를 무시하고 일본의 배상책임을 인정했습니다. 반일 앞에서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이는 진보 대법원이 이번에도 같은 결론을 낼 지는 지켜볼 일입니다만, 적어도 중앙지법 민사 15부가 ‘쉬운 길’을 가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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