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8 (월)

"팔순잔치 대신 보디빌딩 챔피언 따, 내게 선물하려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보디빌더로 돌아온 17대1의 원조 '방배추' 방동규]

'시라소니 이후 최고의 주먹' 민주화운동으로 옥고치르고 파독 광부·고급 양장점 운영…

"그냥 '배추'라고 불러, 다른 덴 몰라도 팔뚝은 쓸 만… 이 방배추 당당하게 살고 있소"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대한민국 3대 구라(입담가)'로 재야운동가 백기완, 소설가 황석영과 함께 '배추' 방동규(79)를 꼽는다. 이 중 방동규씨만 특정한 직함 없이 '방배추'로 불린다. 1950년대 장안 최고의 주먹에서 농촌 계몽운동가로 변신했고, 60~70년대엔 파독 광부·중동 근로자로 해외를 누볐다. 고급 양장점을 운영하며 패션계에 이름을 떨쳤는가 하면, 민주화 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90년대엔 중견기업 CEO로 활약하다 훌훌 털고 2005년부턴 경복궁 관람안내 위원으로 살고 있다. 방동규의 파란만장한 인생 스토리를 담을 수 있는 직함은 그 자신의 별명 '배추'뿐이다. 6·25 피란 시절 생계를 위해 밀짚모자 쓰고 장사를 하던 입성이 배추장사 같다고 또래 여고생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팔순을 바라보는 '배추'가 이번엔 보디빌딩 챔피언에 도전한다. 지난달 26일 서울 경복궁역 근처 헬스장에서 만난 그는 100㎏이 넘는 바벨을 가뿐히 들어 올렸다. 저마다 팔순 생일에 호화스러운 잔치를 벌이며 지금껏 살아온 흔적을 과시하는데, 그게 거슬렸다고 한다. "생일상 대신 보디빌딩 챔피언 타이틀을 스스로에게 선물하고 싶어요. 나이 때문인지 복부와 하체 근육 만드는 것은 예전 같지 않지만, 팔뚝만은 자신 있습니다."

조선일보

‘배추’방동규씨의 팔뚝은 여전히 우람했다. 그는“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며“이젠 몸 만들기에 전념할 계획”이라고 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방동규는 '전설의 주먹'이다. 1950년대 '시라소니 이후 최고의 주먹'으로 불렸던 10대 소년은 고교·대학가 주먹들은 물론 서민들을 괴롭히는 군인 출신 깡패들까지 꺾었다. 당시 신문에 '군인 깡패, 학생에게 혼쭐나다'라는 제목으로 방동규의 활약이 소개되기도 했다. 대학 1학년 때 홀로 17명과 맞서 싸운 이야기는 '17대1'이라는 '고수 전설'의 공식을 만들어냈다.

정치 깡패 이정재를 비롯 '어둠의 세계'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숱하게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방동규씨는 "빈천(貧賤)한 사람을 도우라 배웠는데, 세력 있는 자의 편에 붙어 세력 없는 이들을 누르는 깡패와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다"고 했다.

농촌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954년 백기완을 만나면서부터다. 당시 백기완은 영어 과외교사로 일하며 농촌계몽대를 만들어 문맹퇴치 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백기완이 '넌 한 번에 몇 놈이나 상대할 수 있냐'고 하기에 '10명은 너끈히 이긴다'고 했죠. 백기완이 느닷없이 제 뺨을 때리며 '사내가 주먹을 쥐면 삼천만 동포가 울고 웃고 그래야지, 겨우 10명이냐'고 하더군요." 이때부터 백기완, 구중서(문학평론가) 등과 농촌운동에 투신한다.

'배추'의 변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1960년대 초 방동규는 돌연 파독 광부로 한국을 떠난다. 돈도 벌고 새로운 세상도 만나고 싶어서였다. 광부 생활 후 4년간 파리에서 살다 귀국해 서울 명동에 고급 양장점 '살롱드방'을 열었다.

민주화 운동을 돕다 고초를 겪기도 했다. 1986년 그는 '말'지의 보도지침을 공개해 수배 중이던 민주언론운동협의회 김태홍 당시 사무국장이 피신할 때 보디가드 역할을 맡았다 체포됐다. 고문기술자 이근안에게 끔찍한 고문을 당했다. 그는 "이 사건 후 부와 명예를 줄 테니 전두환의 보디가드를 하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고 회고했다.

왕년의 화려한 이력에 비해 현직 '경복궁 지킴이'는 수수하지만, 정치인 이부영, 유홍준 교수 같은 이들은 여전히 그를 '형님'으로 모신다.

그는 "돈과 권세를 얻으려 했다면, 인생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았겠냐"고 했다. 아직도 해보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단다. 2009년엔 보디빌딩 장년부(60세 이상급)에 출전해 6위로 입상했다. "60대 초반 '애'들하고 하니 좀 밀리더군요. 6위는 트로피 없이 상장만 주던데, 내년엔 그 트로피를 꼭 가져보렵니다. 아, 그리고 '전설'과 달리 17대1로 싸워서 졌었어요. 정신을 잃고 입원까지 했었죠. 전설은 문인 후배들이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하하."

[김충령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