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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이슈 신도시 이모저모

'신도시 투기' 정부 조사, 고작 7건 적발..."증거인멸 기회 보장" 우려가 현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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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의혹 제기 9일만에 1차 조사결과 발표
국토부·LH 등 1.4만 여명 조사… 토지 소유자 7명 추가 확인
수사권 없는 정부 조사 한계… 개인정보 동의에만 일주일
"증거가 핵심인데, 인멸 시간 벌어줘… "

정세균 국무총리가 11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과 관련한 1차 조사결과를 발표한 가운데 ‘실효성도 없는 뒷북 조사’라는 비판이 들끓고 있다.

참여연대와 민변이 지난 2일 기자회견을 통해 투기 의혹을 폭로한 지 9일 만에 첫 조사결과를 내놨는데, 새로 밝혀진 사실이 전무(全無)하다시피하기 때문이다. 앞서 경찰도 지난 9일 의혹 제기 일주일만에 진주 LH 본사 사옥을 압수수색하면서 뒷북 강제수사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정 총리는 이날 오후 2시30분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례브리핑을 열고 "국토교통부와 LH 직원 1만4000여명을 조사한 결과, 3기 신도시 및 인접 지역내 토지소유자는 20명으로 파악됐다며 "20명 전원에 대해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에 수사의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존 참여연대와 민변이 찾아낸 공무원 토지소유자 13명을 제외하면, 7명을 더 찾아낸 셈이다.

조선비즈

경찰의 압수수색 있던 지난 9일 새벽 2시쯤으로 추정되는 LH 본사 전경. 한 네티즌은 사진을 커뮤니티에 올리며 기록 지우고 대응책 만드느라 퇴근을 못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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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에서는 LH 직원들의 땅투기 사건이 불거진 지난 2일을 기점으로 9일이나 지나서 조사결과를 발표한 것에 대해 사실상 투기꾼들에게 증거인멸의 시간을 보장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애초 수사권이 없는 국무총리실과 국토교통부의 전수조사만으로는 진상규명의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강제 수사권이 없는 정부는 국토부·LH 직원들의 부동산 정보를 ‘열람’하겠다면서 1주일 가량을 직원들에게 개인정보동의서를 받는 데 허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계 인사는 "단순히 토지 소유 직원을 찾는다고 9일이라는 시간을 허비했다"며 "애초에 강제 수사로 전환했다면 의심거래 혐의자를 찾았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정부합동조사가 애시당초 성과를 낼 수 없는 조사였다고 비판한다. 조사 대상이 공직자와 LH 직원 개인에 국한됐기 때문이다. 조사 범위가 협소한 정부 전수조사만으로는 차명거래 등을 잡아낼 수도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정부가 한계가 분명한 합동조사를 무리하게 끌고 가면서, 투기꾼들이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 등의 증거를 인멸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줬다는 비판이 나온다.

토지대장상의 소유주 명부와 LH직원 명부를 대조하면 1~2일이면 충분할 조사기간이 지나치게 길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광명·시흥지구 투기 의혹이 제기된 다음날인 지난 3일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했지만, 이후 나흘동안인 7일까지 국토부 공무원과 LH 임직원에게 개인정보 활용 동의서를 받았다. 사실상 나흘동안 아무런 조사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한국부동산원의 부동산거래관리시스템(RTMS)에 부처·공기업·지자체 직원의 성명과 주민번호를 조회하는 방식으로 거래내역을 추출하기 위해 필요했다는 대상자의 개인정보 이용 동의가 애초 사실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정부 관계자는 "대상 직원으로부터 법적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있는 만큼 자발적인 동의를 구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밖에 정부 조사 대상이 지나치게 협소해, 데이터로서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의 1차 조사결과는 국토부 4509명, LH 9839명 등 직원 총 1만4348명을 대상으로 조사됐다. 따라서 배우자, 형제·자매, 배우자의 부모와 배우자의 형제·자매 등 차명 거래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못했다. 또 법인명의를 활용한 투기도 감시하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전수조사를 한다면서 시간을 번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악화된 여론을 반전시킬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하느라, 전수조사를 한다면서 마치 비리조사를 하는 시늉을 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의혹이 처음 불거졌을 당시 강제 권한이 없는 자체 조사에 방점을 두는 등 수사 초기 골든 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변호사는 "9일이면 핵심적인 증거는 이미 인멸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며 "이번 수사의 핵심은 신도시 관련 정보를 알 수 있는 관련 부처 공무원들과 LH 직원들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투기를 했느냐 여부를 밝혀내는 것인데, 결국 명확한 증거확보가 가장 중요하다. 정부가 이번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정무적 판단을 버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편 LH 직원들의 경기도 광명·시흥 지구 부동산 투기 의혹을 수사 중인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지난 9일 경남 진주 LH 본사 등을 압수수색했다. 폭로에서 압수수색까지 만 일주일이나 걸린 것이다. 이에 뒷북 강제수사라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 이날 새벽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새벽 2시 LH 본사 건물이래요'라는 설명과 함께 대낮처럼 불을 밝힌 건물 사진이 공유됐다. 이를 두고 네티즌들은 "평소에는 6시 칼퇴근하더니 새벽 2시에 불 밝힌 것 봐라"라며 "카톡도 지우고, 통화내역도 지우고, 컴퓨터 검색기록도 지우고, 공모자들 입단속도 하고, 알리바이도 만들고, 대책회의도 하고 할일이 산더미라 퇴근을 못하는 것인가"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세종=박성우 기자(foxpsw@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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