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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르포] 사라진 ‘전기차 메카’ 꿈… 잡초만 무성한 옛 한국GM 군산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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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이 전기자동차 생산 기지로 부활하는 줄 알았습니다. 인수한다는 회사가 낯선 중소기업이었지만, 계속 차를 만든다고 하기에 잘 될 것이라 믿었죠. 당시 대통령과 정부까지 관심을 보였던 터라 이 큰 공장이 지금처럼 방치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겁니다.


지난 14일 전북 군산 지곡동에서 만난 주민 홍모씨는 어두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는 평소 업무차 지곡동에서 자동차로 약 10분 거리에 있는 소룡동 산업단지를 자주 찾는다고 했다. 그곳에는 과거 한국GM이 운영했던 군산공장이 있다. 현재는 자동차 부품 제조사인 명신으로 간판을 바꿔 단 상태다.

홍씨는 “명신은 2019년에 군산공장을 인수하면서 중국 전기차를 위탁 생산하겠다고 했지만, 지난 5년 간 제대로 공장이 가동되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주변을 지나면서 공장을 들여다보면 마치 거대한 공터처럼 적막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4시쯤 찾은 옛 한국GM 군산 공장은 을씨년스러웠다. 한때 공장에서 만들어진 수천대의 차량이 빼곡하게 들어찼던 출고 대기장은 잡초만 무성한 채 폐허처럼 방치돼 있었다. 명신이 인수한 후 거의 관리를 하지 않은 듯 철문은 녹이 슨 채 굳게 잠긴 상태였다. 출고 사무소 역시 제너럴모터스(GM)의 쉐보레 브랜드 마크가 빛이 바랜 채 그대로 붙어 있었다.

옛 한국GM 군산 공장의 정문은 바리케이드로 막혀 있었고, 출입하는 차량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주변에 있는 세아베스틸, 타타대우 상용차, DS단석 등의 공장에 여러 대의 트럭과 승용차가 연신 드나드는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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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찾은 옛 한국GM 군산공장의 출고 대기장. 굳게 닫힌 녹슨 철문 뒤로 잡초가 무성한 빈 땅과 멀리 빛바랜 쉐보레 로고가 보인다. /진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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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 전기차 위탁생산 꿈꿨지만 물거품

명신은 현대차·기아의 1차 협력사인 엠에스오토텍의 자회사다. 엠에스오토텍은 2019년 6월 명신을 통해 1130억원을 들여 한국GM 군산공장을 인수했다. 엠에스오토넥은 한국에서 전기차를 만들어 미국 등에 납품하려는 중국 업체로부터 물량을 위탁받아 이곳에서 생산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명신은 군산공장 인수 이후인 2019년 9월 중국 전기차 제조사인 바이톤과 위탁생산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바이톤이 개발하던 전기차 ‘엠바이트(M-byte)’를 연간 5만대씩 생산하기로 한 것이다. 당시 바이톤은 ‘중국의 테슬라’로 불릴 만큼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서 주목받는 회사였다.

그러나 중국 전기차 생산업체로 성장하겠다는 명신의 계획은 바이톤의 파산과 함께 물거품이 됐다. 바이톤은 2018년 엠바이트 콘셉트카를 공개한 후 2019년 말부터 양산할 계획이었지만, 막대한 채무를 감당하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이후 중국 전기차 시장의 거품이 빠지고 많은 업체가 경영난을 겪으면서 명신은 바이톤을 대체할 다른 제조사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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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명신 군산공장에서 열린 전북 군산형 일자리 생산 1호 차인 '다니고 밴' 출고식에서 송하진 전북도지사(왼쪽 세 번째)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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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文 전 대통령이 치켜세운 ‘군산형 일자리’도 삐걱

문재인 정부는 군산을 전기차 클러스터로 육성해 고용을 늘리는 내용의 ‘군산형 일자리’ 사업을 2019년부터 진행했다. 과거 한국GM 차량을 대량으로 제작했던 군산공장을 새로운 전기차 위탁 생산 기지로 조성하겠다는 명신은 군산형 일자리 사업을 대표하는 핵심 기업으로 꼽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9년 명신 군산공장에서 열린 ‘군산형 일자리 상생협약식’에 참석해 “군산이 전기차 시대의 새로운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초 기대와 달리 명신이 위탁 생산 물량을 받을 중국 전기차 업체를 구하는데 애를 먹으면서 군산형 일자리 사업은 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다급해진 명신은 2021년 국내 초소형 전기차 업체인 대창모터스와 소형 화물차인 ‘다니고 밴’을 위탁 생산하기로 계약했으나, 군산공장의 규모를 감안하면 턱없이 적은 물량이었다.

군산형 일자리 사업은 지난 3월 1차 3개년 계획이 종료됐다. 명신 군산공장이 중심이 돼 3년 간 35만5327대의 전기차를 생산할 계획이었지만, 실제 생산 물량은 4292대로 목표치의 1.3%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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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찾은 옛 한국GM 군산공장의 출고 사무소. 명신 인수 이후 거의 관리가 되지 않은 듯 빛바랜 쉐보레 로고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진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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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신, 완성차 사업 철수… “공장 땅 분할 매각” 소문 무성

돌파구를 찾지 못하던 명신은 결국 지난 5월 완성차 사업을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군산공장은 자동차 부품 제조와 자동화 설비 사업 등에 쓰기로 했다. 최근 전기차 수요가 줄어들자 버티지 못하고 완성차 위탁 생산을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군산공장이 자동차 부품 생산 기지로 제대로 가동될지는 불투명한 상태다. 계열사인 명신산업의 경우 미국 전기차 제조사인 테슬라의 협력 업체에 부품을 납품하고 있지만, 이미 미국 텍사스에 현지 공장을 두고 있어 물량을 분산하기 힘든 상황이다. 만약 신규 물량을 수주해도 군산공장의 총 면적이 129만㎡(약 39만평)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부품 생산만으로는 공장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게 자동차 업계의 시각이다.

명신은 완성차 사업 철수를 결정하면서 군산공장 부지를 분할 매각해 재무 구조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군산 지곡동의 한 주민은 “한때 옛 한국GM 공장은 군산 지역 경제를 떠받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공장이 분할 매각되면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진상훈 기자(caesar8199@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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