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매경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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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가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이 공개된 지난해 7월에서야 그간 써오던 '성추행' 표현을 쓰지 않기로 결정했던 사실이 확인됐다. 인권위 직권조사 결정 시점을 고려할 때, 박 전 시장 사건은 인권위의 '성희롱 통일 표기' 방침이 적용된 거의 최초 사례인 셈이다.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실이 인권위로부터 받은 답변을 매일경제가 분석한 결과, 인권위는 지난해 7월 이후에야 내부적으로 '성추행'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
인권위는 서 의원실에 보내는 답변에서 "지난해 7월 인권위 성희롱 시정권고 사례집 제9집을 제작하면서 '성희롱'과 '성추행'이 기준 없이 진정인들이 제기한 진정서에 따라 작성됐던 부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됐다"며 "그 이후부터는 인권위법에 따른 법적 용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변경했다"고 밝혔다.
성추행 용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것은 지난해 7월이지만, 이는 사례집 제작 때문이라는게 인권위 설명이다. 하지만 인권위가 말하는 사례집은 문재인정부 들어 2018년 최영애 인권위원장이 임명된 후 2019년 이어 두번째 발간이다. 2019년 발간 때는 '성추행'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다가, 돌연 지난해 발간을 계기로 표기 방침을 바꿨다는 것이다. 서범수 의원실 측은 "단지 사례집 발간이 용어 정책 변경의 이유라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작년 발행된 사례집도 34개 사례 중 5건을 '동료 공무원에 의한 성추행 및 2차 피해 등' 등 성추행으로 표기했으면서도, 위원장 발간사나 보도자료 어디에서도 이런 문제의식과 용어 통일 방침을 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지난 7월말 박 전 시장에 대한 직권조사 계획을 발표한 후 올해 1월 그 결과를 발표하면서 '성희롱'이라는 용어만 사용했다. 성추행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기자들의 개별 질문에 "인권위법상 성희롱은 성추행을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을 뿐이다.
그러나 일상에서 '성희롱'과 '성추행'이 의미하는 바가 달라 대중에게 오인됐다. 이를 빌미로 일부 박 전 시장 지지자들은 "피해자가 성추행을 주장하더니 성희롱이었느냐"는 2차가해를 쏟아냈다. 친문단체인 적폐청산국민참여연대 신승목 대표는 지난 1월25일 페이스북에 "인권위 조사 발표는 성희롱"이라며 "성희롱과 성추행 차이, 성희롱은 형사처벌 조항 없어 형사고소 불가"라고 주장했다.
서범수 의원실은 "이 같은 오해는 인권위의 '성희롱 용어 통일' 방침에 영향을 받았는데, 이 방침의 거의 첫 적용대상이 박 전 시장 직권조사"라며 "인권위가 정무적인 판단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라고 꼬집었다.
인권위는 의원실의 질의에도 의도적으로 답변을 회피하는 등 정무적 판단으로 볼 수 있는 행보를 했다. 최근 서범수 의원실이 '인권위가 성추행이라는 표현을 쓴 사례는 몇 번으로 파악하고 있느냐'고 물었지만 인권위는 "향후 정확한 용어를 사용해 혼선이 없도록 각별히 유의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의원실이 재차 답변을 요구했지만 인권위는 구두답변으로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어 수치를 파악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객관적인 통계에 대한 헌법기관의 요구마저도 조직에 대한 비난 가능성을 염두해 두고 답변을 피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인권위 관계자는 '지난해 7월 성추행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기로 결정했느냐'는 매일경제의 질문에 "인권위법상 성희롱을 쓰는 것"이라며 "따로 성추행 표현을 쓰지 않기로 정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윤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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