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현지시각) 미얀마 양곤에서 시민들이 쿠데타 반대 시위에서 저항을 상징하는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양곤/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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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발생 4주째인 지난 22일, 미얀마 거리에는 시민 수백만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전날 밤 군 과도정부가 국영방송을 통해 “강성 시위대가 아무것도 모르는 10대와 젊은이들을 선동해 국가를 혼란 속으로 몰아간다”며 단호하게 응징하겠다고 협박했지만 청년들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청년들은 유혈사태가 발생할 수 있고 인명 피해 대상이 자신이 될 수 있다고 걱정했던 것 같습니다. 많은 이들이 한쪽 팔을 걷어붙이고 혈액형과 이름, 연락처를 지워지지 않게 유성펜으로 새겼습니다. 청년들이 아무것도 몰라 쉽게 선동된다는 군부의 말을 과연 누가 믿을 수 있을까요?
무장한 군경과 맨손의 시위대가 바리케이드 하나를 놓고 일촉즉발 대치했습니다. 시민들은 이날을 “봄의 혁명”이라고 부르며, 삼삼오오 대오를 갖춰 자유를 빼앗은 군부를 향해 다시 한번 소리쳤습니다. 총파업에 동참한 공무원들은 시민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줬고, 의료진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팔을 걷어 올렸습니다. 승려들은 비폭력 시위를 설파하며 끓어오른 시민들에게 ‘이성’이라는 가르침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이른바 제트(Z)세대라 불리는 젊은이들이 재능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외국어에 능숙한 학생들은 유엔 사무소와 각국 대사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도움을 요청했고,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악기를 연주하며 지쳐가는 시위 분위기에 잔잔한 위로와 힘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림 실력이 좋은 학생들은 도시 곳곳을 돌며 ‘우리는 민주주의를 원한다’는 글자를 새기고 벽화를 그렸습니다.
시민 불복종 시위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는 미얀마 제트세대는 50여년 만에 문민정부가 탄생한 2015년에 성인이 됐습니다. 군부독재 때 폐쇄됐던 대학교가 새 단장을 하고 문을 열던 때 대학에 입학했거나 학원에서 자신들의 꿈을 키워가던 세대들입니다.
당시의 열기를 이어받아 2016년 양곤대학교에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세종학당재단과 부산외국어대학교의 지원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세종학당이 개설됐습니다. 한류 붐과 함께 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학생들이 줄을 섰습니다. 한국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랑해, 보고 싶어”라는 대사를 따라 하며 얼굴이 붉어지고 미소를 짓던 순수한 청년들이었습니다.
24일(현지시각)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시민들이 바이올린을 켜면서 쿠데타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만달레이/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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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세계에서 꿈을 펼치겠다고 공부하던 청년들은 지금 나라를 구하겠다는 마음으로 거리로 뛰어나갔습니다. 세종학당은 코로나19 사태로 저녁에 온라인 수업을 하는데, 온종일 시위 현장을 뛰어다니다 온 학생들의 지친 목소리가 참 대견하고 애잔하게 느껴집니다.
한번은 학생에게 문장 읽기를 시켰는데 답이 없습니다. 피곤함에 지쳐 잠이 든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학생들을 혼낼 수 없습니다. 수업을 마칠 때면 “시위 현장에 나가더라도 안전을 먼저 생각하라”는 당부를 하는데, 제 속마음은 무너집니다. 함께 공부하고, 김밥과 떡볶이를 만들어 먹던 학생들이 나라를 구하겠다고 무더위를 버티며 거리로 뛰어다니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찢어집니다.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 반대 시위에 참가한 시위대가 만일의 유혈사태에 대비해 팔뚝에 혈액형과 긴급 연락처 등을 적어놓은 사진. 트위터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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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는 한 학생이 부족한 한국어 실력으로 “한국 시민들과 정부가 미얀마 시민들을 지지해 달라”는 장문의 편지를 써 왔습니다. 이 편지는 현재 미얀마 주재 한국대사관에 전달됐습니다. 페이스북에 공유되는 한 영상을 보니, 그 주인공이 우리 학생이었습니다. 미얀마에 있는 한국 회사에 취직해 돈을 벌어 꼭 한국에 가겠다던 당찬 녀석이었습니다. 이 청년은 집에서 두 시간이나 떨어진 외국 대사관에 여러 차례 버스를 갈아타고 가서 시위하고 있습니다.
미얀마의 제트세대들은 소셜 미디어에서 ‘키보드 팀’으로 맹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대사관 앞에 시위 인원이 부족합니다”, “○○ 현장에 물이 부족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오면 키보드 팀은 즉각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파하고 얼마 되지 않아 실제 지원이 이뤄집니다.
이번 싸움이 오래갈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청년들이 다치지 않을까, 좌절하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미얀마 사람들의 ‘봄의 혁명’은 이제 시작입니다. 이 싸움에 이기고 진정한 봄이 와, 미얀마 제트세대들이 이끌어 갈 미얀마를 꿈꿉니다. 안절부절못하는 제 모습이 안쓰러운지 아내가 오늘은 잔소리가 아닌 따뜻한 한마디로 코치를 해줍니다. 냉정함을 잃지 말라고, 그래야 이들을 더 오랫동안 도울 수 있다고.
양곤/천기홍 부산외국어대 미얀마어과 특임교수
24일(현지시각) 미얀마 양곤의 타이(태국) 대사관 앞에서 불교 스님들이 팻말을 들고 쿠데타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양곤/E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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