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이재영·이다영, 송명근·심경섭 등 학폭 논란
욕설·폭행에 금품갈취… 급소 수술 피해 호소도
흥국생명 "무기한 출전 정지"징계
"솜방망이 징계", "영구제명하라" 비판… 靑 청원도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여자 프로배구 흥국생명 이재영(오른쪽)과 이다영.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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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영은 기자] 대한민국 프로배구계가 연일 학교폭력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흥국생명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와 OK 금융그룹의 송명근, 심경섭 등이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것에 이어 또 다른 피해자들의 폭로가 계속되는 가운데, 구단 측의 대처가 미온적이고 징계 내용도 불명확해 배구계 퇴출 등 엄중 처벌을 요구하는 비판 여론이 거세다.
지난 10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재영·이다영 선수로부터 학교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글이 올라왔다. A 씨는 '현직 배구선수 학폭 피해자들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장문을 글을 올려 현재 유명 여자배구 선수에게 10여 년 전 중학교 재학 당시 학교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A 씨는 "가해자는 음식을 먹지 못하도록 막거나 돈을 빼앗았고 흉기로 위협하거나 신체적 폭력을 가하기도 했다. 피해사례가 20가지가 넘는다"라며 "심부름을 시켰는데 이를 거부하자 흉기를 가져와 협박했다. 본인들 마음에 안 들면 부모님을 '니네 애미, 애비'라고 칭하며 욕설을 퍼부었다"라고 전했다.
이 같은 논란이 불거지자 이재영·이다영은 당일(10일) 사실을 인정하고 각자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깊은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라며 사과문을 올린 후 팀 숙소를 떠났다.
하지만 이 자매의 소속 구단인 흥국생명 관계자는 한 매체를 통해 "학교폭력 논란과 관련해 쌍둥이 자매를 징계하라는 요구가 있는 걸 잘 안다"면서도 "현재 두 선수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심신의 안정을 취해야 하는 상황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징계라는 것도 선수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정신적·육체적 상태가 됐을 때 내려야 한다고 판단한다"라는 등 가해 선수 징계에 앞서 선수 보호가 우선이라는 취지의 미온적 대응을 하는 모습에 비판이 이어졌다.
학폭 피해자 부모 C씨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선수명단. 사진=네이트판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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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이재영·이다영이 사과문을 올진 지 사흘만인 지난 13일에는 또 다른 피해 사실이 폭로됐다. B 씨는 이날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번 기사들을 보다가 너무 화가 나서 더는 안 되겠다는 심정으로 글을 쓴다"라며 "(쌍둥이 자매는) 제일 기본인 빨래도 동료나 후배 할 것 없이 시키기는 마련이고, 틈만 나면 무시하고 욕하고 툭툭 쳤다"라고 주장했다.
B 씨는 2009년 당시 쌍둥이 자매와 전북 전주 근영중학교 배구부에 소속돼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대한체육회에 학생 선수로 등록된 본인의 인적 사항을 공개하기도 했다.
또한 14일에는 쌍둥이 자매로부터 학교폭력을 당한 피해 학생의 학부모 등도 폭로에 동참했다. 자신의 자녀가 쌍둥이 자매와 함께 근영중학교 배구팀에서 활동했다고 주장한 C 씨는 자매의 모친인 배구선수 출신 김경희 씨를 언급하며 "시합장에 다녀보면 쌍둥이만 하는 배구였지 나머지는 자리만 지키는 배구였다. 시합장 학부모 방에서 (김경희 씨가) 딸(이다영)에게 '언니(이재영)한테 공을 올리라'고 하는 전화 소리를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C 씨는 "피해를 받은 아이들이 있고 한두 명이 아닌 상황인데 서로 눈치 보기만 하고 있다"면서 "10년이 지나 이런 일이 사회적으로 드러나면서 그때의 기억이, 고통이 우리 아이들을 다시 괴롭게 하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이날 또 다른 글쓴이는 "(배구 선배들이) '머리 박기'를 시키고 울면 바가지를 가져와 바가지를 눈물로 다 채울 때까지 머리 박기를 시키겠다고 했다. 눈물, 콧물, 침 그리고 오줌을 싸서라도 바가지를 채우라고 했다"라며 "공으로 얼굴을 때려 쌍코피가 났는데 닦고 오라고 해서 닦고 오니 머리 박고 코트를 돌게 했다"라는 등 가해자를 특정하지 않은 채 프로 여자 배구 선배들로부터 학폭을 당했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쌍둥이 자매 등 여자배구에 이어 남자 프로배구 OK 금융그룹 송명근과 심경섭도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됐다. 중·고등학생 시절 동료를 폭행해 급소 부위 수술을 받게 만들었다는 이들은 14일 모든 가해 사실을 인정하며 자숙의 의미로 올시즌 남은 경기에 나서지 않겠다고 전했다. 이후 피해자는 두 선수의 사과 메시지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글을 추가로 올리기도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배구계 학폭 가해자로 지목된 선수들의 처벌을 촉구하는 청원 글이 게시돼 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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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배구계 학폭 문제를 두고 피해자들의 폭로가 끊이지 않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학교폭력 논란 선수들의 배구계 영구 퇴출 및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청원이 4개 이상 올라오는 등 공분이 일었다.
지난 12일 올라온 '여자배구 선수 학교폭력 사태 진상규명 및 엄정대응 촉구합니다' 청원 글의 청원인은 "더 이상 체육계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범죄에 대해 지켜보고 있을 수 없다"라며 "구단과 배구연뱅맹은 이를 방관하고 KOVO는 배구연맹 차원의 조사나 징계조차 없다. 학교 폭력이 사실이면 배구연맹은 해당 선수들에 대한 영구제명을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당 청원은 15일 오후 1시 기준 98000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이에 흥국생명은 이재영·이다영의 학폭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만인 15일, 이들 선수에게 무기한 출전 정지 징계를 내리겠다고 밝혔다. 흥국생명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이재영, 이다영 선수가 중학교 시절 학교폭력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사과했다"라며 "사안이 엄중한 만큼 해당 선수들에 대해 무기한 출전정지를 결정했다"라고 발표했다.
이어 "두 선수는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등 깊이 반성하고 있다"면서 "자숙 기간 중 뼈를 깎는 반성은 물론 피해자분들을 직접 만나 용서를 비는 등 피해자분들의 상처가 조금이나마 치유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배구계를 중심으로 한 학교폭력 사건은 전례가 없는 데다 마땅한 관련 규정도 존재하지 않아 이 같은 징계 수위에 대한 비판이 따른다.
국가대표 선발 규정 제11조에 따르면 '불미스러운 행위로 사회적 물의를 야기한 선수'는 결격 사유로 규정되어 있지만, 이는 국가대표 선발 규정에만 해당하는 사항이며 한국프로배구연맹·KOVO 규정에도 중대 범죄행위만 명시하고 있을 뿐, 학교 폭력이나 사회적 물의에 해당하는 조항은 따로 규정되지 않고 있다.
이에 여론에서는 '무기한 정지'라는 불명확한 징계가 적절치 않다며 지적하고 있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선수자격 박탈이 아니고 무기한 정지?', '잠잠해지면 곧 나오겠다는 뜻으로밖에 안 보인다', '영구제명이 답이다' 등의 부정적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전문가는 선수 징계뿐만 아니라 스포츠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구조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용철 서강대 스포츠심리학과 교수는 15일 YTN 라디오 '슬기로운 라디오 생활'에서 "(학폭은) 선수들 개인의 문제도 있지만, 팀 스포츠에서 한 팀이 완전히 망가지는 상황으로 진행되고 있어서 아마 구단이나 협회 측에서 이걸 처리하는 것에 대해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 것"이라며 "그런 걸 다 이해하더라도 지금 나온 정도의 사과는 국민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고 괴리 때문에 국민들이 분노하고 청원까지 하는 상황이 왔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 교수는 "그냥 이렇게 선수 하나를 징계할 뿐만 아니라 배구의 문화 전체를 다시 들여다보고 우리가 그동안 잘하는 선수들을 어떤 식으로 대우해왔고 그 선수들이 어떤 일을 하든지 쉬쉬하고 덮어왔던 문화들을 이번 기회에 명명백백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면서 "조금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개인을 잘라내는 수준이 아니라 전체적인 구조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김영은 기자 youngeun92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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