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1일 경기 이천 SK하이닉스 본사에서 열린 M16 준공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날 최 회장은 "SK하이닉스에서 받은 연봉을 구성원에게 반납하겠다"고 말했다. [사진 SK하이닉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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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 노사가 내년부터 성과급 기준을 개선하기로 합의했다. 지난달 말 SK하이닉스에서 촉발된 대기업 성과급 논쟁이 10여 일 만에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같은 성과급 사태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성과급을 임금처럼 일괄적으로 지급하는 '한국식 성과보상 시스템'을 개별 평가로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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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 노사 "성과급 기준 개선" 합의
성과급 규모를 둘러싸고 대립하던 SK텔레콤 노사는 9일 합의안을 내놨다. SK텔레콤은 이날 오전 "예측 가능하고 투명한 성과급 체계를 함께 만들어 가기로 노사간 합의했다"면서 "노사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제도 개선을 위한 세부 지표와 지급 방식을 만들어 내년부터 적용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이 회사 노사는 ▶경제적 부가가치(EVA)를 대체할 수 있는 별도 기준을 노조와 함께 설계하고 ▶지급 방식을 대폭 개선해 기준 금액 이상 지급받는 구성원 비율을 확대하며 ▶임금협상을 통해 구성원의 자부심 회복에 노력한다는 데 합의했다.
앞서 SK하이닉스는 4일 노사협의회를 통해 성과급 산정 기준을 기존 EVA에서 내년부터는 영업이익에 연동하는 방식으로 바꾸기로 합의했다. 이와 별도로 기본급의 200%에 해당하는 자사주 지급, 복지포인트 300만 포인트는 올해 지급키로 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성과급이 연봉의 20%로 공지되자 노조 측에서 "산출기준을 공개하라"고 요구해 내홍을 겪었다.
논란은 삼성으로도 옮겨붙었다. 삼성전자를 포함한 삼성그룹의 8개 계열사 노조는 8일 "성과급 산정 방식을 투명화하고 지급기준 변경을 모색해야 한다"는 내용의 공동 요구안을 내놓고 사측에 공동 교섭을 촉구했다. 이달 중 성과급 규모를 공지 예정인 LG전자에서는 긴장감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이 회사는 지난해 영업이익 3조1950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SK텔레콤의 성과급 논란이 노사 합의로 일단락됐다. 사진은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사진 SK텔레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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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리그" vs "깜깜이 이제 그만"
이번 성과급 논란에 대해 일각에서는 "돈 잘 버는 대기업에서 벌어진 그들만의 리그"라고 폄훼했다. 실제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항공·여행·호텔 업계 등에선 연봉 동결·삭감에 이어 명예퇴직 등으로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주요 대기업을 중심으로 성과급을 둘러싼 갈등이 여과없이 드러나자 "이기적인 밥그릇 싸움" "상대적 박탈감이 든다"는 반응이었다.
재계에서는 이번 성과급 논란에 대해 "공정성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성과급 기준 마련이 필요해졌다는 시그널"로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사내 노조 게시판이나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 등에서는 "성과급을 '더 달라'는 게 아니라 '깜깜이 시스템을 고쳐달라'는 게 핵심"이라면서 "제도를 공정하게 고치자는 주장을 집단 이기주의나 철없는 불만으로 몰아가선 안 된다"는 취지의 글이 공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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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성과급은 임금…개별 평가 도입해야"
회사별, 소속 사업부별로 일괄적으로 성과급을 지급하는 한국식 성과보상 시스템을 바꿀 시점이란 지적도 나온다. 외국 기업처럼 고용 단계부터 개인별로 임금과 인센티브 기준을 정하고, 성과 평가도 개인별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요 글로벌 기업은 국내 기업과 성과급 구조가 다르다. 특정 기간에 기업이 내건 목표를 달성하면 주식을 보상으로 지급하는 성과보상체계인 RSU(Restricted Stock Unit)와 임직원에게 회사 주식을 특정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스톡옵션 등으로 나뉜다. 대개는 해당 부서에 일괄적으로 성과급이 지급되지 않고 개인별로 다르다. 예컨대 연봉 현상을 할 때 RSU나 스톡옵션을 함께 협상하는 식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은 성과금을 회사 성과에 따라 모든 구성원에게 일괄 적용하는데, 이는 성과급이 아닌 임금의 성격"이라면서 "회사 구성원에 대한 개별 평가에 따라 인센티브가 적용되는 구조로 전환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형수·최현주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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