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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미얀마 시민들 쉽게 분노 표출 안해…군이 노린다고 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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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거주 ‘양곤 세종학당’ 천기홍 교수 인터뷰

한겨레

3일 저녁(현지시각) 미얀마 양곤에서 한 여성과 아이들이 통을 두드리고 있다. 양곤/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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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국민들은 쉽사리 분노를 표출하지 않고 있어요. 군이 이를 노린다고 보기 때문이죠.”

미얀마 세종학당에서 19년째 한국어를 가르치는 천기홍 교수(47·부산외대 미얀마어과 특임교수)는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군부 쿠데타 이후 양곤의 겉보기 일상은 빠르게 회복됐지만, 소셜미디어를 통해 청년과 시민들의 불만이 끓어오르고 있다. 2기 문민정부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군부가 이를 다시 짓밟았기 때문이다. ‘덫’을 놓은 군과 이 ‘덫’에 걸리지 않으려는 시민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 3일 저녁 천 교수를 통해 현지 분위기를 들어봤다.

매일 밤 8시 냄비 두드리기, 노래부르기…불복종 퍼포먼스

-국제전화 통화가 가능하다. 현재 인터넷이나 통신, 은행 거래 등은 정상적인가?

“지난 1일 새벽 쿠데타 뒤 오전 6시반부터 통신이 끊겼다가, 낮 12시부터 정상화됐다. 통신이 순차적으로 개통되기 시작해, 지금(3일 밤)은 다 되는 상황이다. 방송도 첫날은 군이 운영하는 것만 나왔는데, 지금은 다른 국영방송이 나온다.”

-양곤 상황은 어떤가? 군인들이 시내에 배치돼 있나?

“현재 거리에는 군인들이 깔려있지 않다. 의회 등 주요 기관과 공항입구 등에만 배치돼 있다. 군이 위화감이나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는 행위는 하지 않는 것 같다.”

-시민들 분위기는 어떤가? 평소대로 생활하나?

“좀 어수선하다.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승했고, 시민들의 기대가 컸다. 2015년에 이은 두 번째 승리라, 이제 문민정부가 완벽하게 들어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상황에서 쿠데타가 발생했기 때문에 시민들의 불만과 불안감이 적지 않다.”

-당장 거리 시위 등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군부에 대한 불신과 불만은 큰데, 이걸 가시적으로 나타내진 못하고 있다. 일단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시민불복종 운동’이라는 해시태그를 만들어서 공유하고 있다. 의료계가 동참하고, 대학생들도 나섰다. 밤 8시에 ‘냄비를 두드리자’는 내용이 에스엔에스에 돌았고, 실제 2일 저녁 8시 정각에 15~20분 동안 시민들이 창가에서 냄비를 두드리고, 차량은 경적을 울렸다. 오늘(3일)은 밤 8시에 노래를 부르자며 악보가 돌고 있다. 당분간 매일 저녁 8시에 여러 방식으로 시민불복종 퍼포먼스가 이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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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현지시각) 미얀마 수도 네피도의 길가에 장갑차와 군 트럭이 정차해 있다. 네피도/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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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 군부 시나리오대로 진행되는 것 우려

-군부는 이를 통제하지 않나?

“통제하려면 할 수 있을 텐데, 하지 않고 있다. 군이 상황을 나쁜 방향으로 이끌어 국민안전과 질서 등을 이유로 과도정부를 정당화하려 한다는 얘기가 많다. 시민들은 ‘거기 현혹되면 안된다’며 일단 제한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4일 낮에 도심 시위를 한다는 보도가 나오던데?

“지켜봐야 한다. 에스엔에스에는 아직 집결하자는 얘기가 별로 없다. 최근 군부가 감금했던 민주진영 인사들 400명을 가석방 했다고 하는데, 이들을 풀어준 이유가 대규모 시위를 유도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확실한 것은 시민들은 과도정부의 시나리오대로 이뤄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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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현지시각) 미얀마 양곤의 슐레 파고다 앞 코로나19 검진소 앞을 한 시민이 지나고 있다. 양곤/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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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지지 시민 못봐…문민정부에 대한 기대 커

-쿠데타에 대한 시민들 반응은 어떤가?

“불만이 많다. 특히 청년들은 분하고 억울해 한다. 민간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워낙 높았다. 수치 고문에 대한 신뢰도 여전하다.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수치 고문이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이 선출직 의석을 80% 이상 차지할 정도였다.”

-어떤 이유인가?

“2015년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 인프라 확충이 많이 됐고 외국기업 투자도 늘었다. 경제가 비교적 안정됐고, 지난해 총선 즈음에는 코로나19 사태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1월에는 확진자 수가 100명대까지 떨어졌다. 또 인도에서 코로나19 백신이 들어오면서 여론이 더욱 좋아졌다. 문민정부에 대한 여론이 좋고 군의 입지는 좁아지니까, 군의 불안감이 커진 것 같다.”

-쿠데타를 지지하는 시민은 없나?

“아직 보지 못했다. 군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다. 1962년 쿠데타로 집권한 네 윈 정권부터 시작해 60년 넘게 군부 정권이 이어졌다. 2008년 민간에 권력을 이양하기로 약속했지만, 군은 기초헌법을 만들어 의회 의석의 25%를 확보하고, 국방, 경비 등 핵심 권력을 유지했다. 권력만 가진 게 아니다. 맥주, 목재, 은행 등 50여개 계열사를 가진 군이 운영하는 국영기업도 있다. 군과 일반 시민들의 차이가 커지면서 불신이 커지고 있다.”

-군은 쿠데타의 이유로 부정선거를 들었다.

“군은 지난해 총선에서 실제 유권자 수보다 개표 수가 더 많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근거를 대지는 못했던 것 같다. 민간정부에서 군의 주장을 다소 가볍게 여긴 측면도 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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