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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한일관계 최악고비…강제징용에 위안부 판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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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안부 피해 日에 첫 승소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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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우리 법원 판결이 8일 나옴에 따라 가뜩이나 경색돼 있는 한일 관계가 최대 고비를 맞게 됐다. 주한 일본대사관·영사관·문화원 등의 자산 압류가 가능해진 이번 판결에 대해 일본 정부는 즉각 '국제법 위반'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올여름 예정된 도쿄올림픽을 남북 관계 개선 이벤트로 활용하려는 정부 구상이나 한·미·일 3각 협력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되는 조 바이든 차기 미국 행정부와의 관계에도 작지 않은 파장이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고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이 이날 오전 내린 승소 판결은 우리 사법부가 일본 정부를 배상 주체로 명시한 최초의 판결이다. 2018년 10월부터 진행돼 온 강제징용 배상 판결은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등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내려진 판결이다. 특히 이번 소송은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것인 만큼 국제법상 국가가 다른 나라 재판에서 피고가 되지 않는다는 '주권면제' 원칙도 고려돼 강제징용 소송보다 한결 승소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주류였다. 법조계와 한일 관계 전문가 일각에선 "주권면제 때문에 승소하기 어려울 것으로 봤는데 바로 판결이 나와 놀랐다"는 반응도 나왔다.

승소한 위안부 피해자들이 판결에 불복하는 일본 정부에 대응해 주한 일본대사관·영사관·문화원 등 한국 내 일본 정부 자산 압류 신청을 할 경우 파장은 한층 더 커진다. 우리 사법부가 실제로 압류 절차에 돌입하면 일본 정부는 자국 기업 압류 자산 현금화 시 예고한 보복 조치보다 더 강력한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

최근 한일 양국은 강제징용 판결로 초래된 갈등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있었지만 이번 판결은 그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일본 도쿄로 건너가 스가 요시히데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문재인·스가 선언'을 제안하고, 서훈 국가안보실장도 방일 일정을 제의하는 등 물밑 움직임이 이어졌다. 이어 강창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일본 대사로 지명됐고, 일본도 같은 시기에 주한 대사 교체를 알리며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던 중이었다.

김숙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대외전략연구실장은 "스가 총리가 낮은 지지율을 반전시키기 위해 이번 판결을 계기로 '한국 때리기'로 전환하며 보수 지지층에 어필하려고 할 수 있다"면서 "바이든 당선인 측에도 '관계 개선을 거부하는 쪽은 한국'이라는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번 판결은 한일 관계뿐 아니라 그와 엮인 다른 외교 사안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외교가에 따르면 정부는 올여름 열릴 예정인 도쿄올림픽에 북한 고위 인사를 초청해 교착상태인 남북 관계를 풀어보려 구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 불쾌한 반응을 나타낸 일본이 우리 정부 구상에 대해 비협조적 태도로 전환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남북 관계 개선 등 우리 정부의 외교 노선에 일본이 방해공작을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정부 희망대로 도쿄올림픽 구상이 실현되긴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한·미·일 3각 공조 체제를 강조할 것으로 예상되는 바이든 행정부의 등장도 부담 요소다. 다자 협력을 중시하는 미국 민주당 정부 특성상 현 트럼프 행정부보다 강하게 한일 관계 개선을 압박하고 나설 공산이 크다. 특히 '국무부 2인자' 부장관직에 거론되는 웬디 셔먼 전 국무부 정무차관은 2015년 동북아시아 국가 간 과거사 갈등에 대해 "정치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꼬집는 등 관련 이슈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이번 일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카드 등이 재검토될 경우 한일 관계는 물론 한미 관계까지 손상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그럼에도 정부가 이번 판결에 대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한일 행정부 간에 해결을 결단한 박근혜정부는 2015년 일본 당국과 협의 끝에 위안부 합의를 내놓은 반면 문재인정부는 화해치유재단 해산 조치 등으로 이를 사실상 무효화하는 데 힘을 쏟았기 때문이다. 정부 간 합의를 형해화하고 사법부 판결을 따르기로 정한 이상 이번 판결도 손 놓고 구경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는 지적이다. 한 소식통은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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