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개월 영아 양부모 학대로 사망… 작년 학대신고 10% 증가
감염 위험에 방문조사 어려워… 사회 감시망 사각지대 더 커져
이렇게 활짝 웃는데 - 지난해 10월 양모의 학대로 숨진 정인이가 입양 전 밝게 웃고 있는 모습. /SBS방송 화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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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16개월 입양아가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이른바 ‘정인이 사건’에서 우리 사회의 아동학대 안전망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정인이가 다니던 어린이집, 소아과 등에서 잇따라 학대 의심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이를 세 차례나 묵살했다.
아동보호 단체, 학계, 의료계에선 코로나 상황 속에서 ‘제2·제3의 정인이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코로나로 부모의 경제적 어려움과 고립이 심화하고, 아이들 역시 유치원·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 머물며 아동학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아동보호기관 등 외부의 감시자들이 접근하려 해도 학대 부모들은 코로나를 핑계로 접근을 차단할 수 있다. 감시망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실제로 코로나가 확산했던 지난해 경찰 112에 접수된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1만5929건으로 전년(1만4485건) 대비 10% 늘었다.
정인아, 하늘에선 뽀로로 주스·과자 맘껏 먹으렴 -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에 숨진 정인이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5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에 있는 정인이 무덤 앞에 시민들이 놓고 간 편지와 선물, 꽃 등이 수북이 쌓여 있다. /이태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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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경기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안치된 故 정인 양의 묘지에서 추모객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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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초 수도권의 한 아파트. 문 두드리는 소리에 집주인이 나가보니 앞집에 사는 민성(4·가명)이가 서 있었다. 민성이의 첫마디는 “밥 좀 주세요”였다. 하루 종일 굶었다고 했다. 20대인 아버지는 집을 비웠고, 함께 사는 할머니는 만취 상태로 집에 있었다. 이웃의 신고로 조사에 나선 아동보호기관은 민성이가 사실상 방치돼 아버지, 할머니와 사는 게 어렵다고 판단했다. 쉼터에 한 달간 머물던 민성이는 최근 소규모 보육시설(그룹홈)로 터전을 옮겼다. 이곳에서 어린이집도 가고, 방문 학습지 교육도 받게 됐다. 코로나 속에서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방치됐던 민성이는 스스로 구조 신호를 보내 가까스로 학대에서 벗어났다.
작년 5월 경남 창녕군에서 4층 베란다에 쇠사슬에 묶여 있다가 지붕을 타고 옆 건물로 탈출한 A(당시 9세)양 역시 코로나로 학교에 가지 못하면서 지속적인 학대를 당했다. 담임교사가 교과서를 주기 위해 집을 세 차례나 방문했지만, A양 부모는 “신생아가 있어 코로나 감염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대면을 거부했다. A양의 가정은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시스템에 ‘위기가구'로 지정돼 있었지만, 창녕군은 코로나 사태로 현장 조사를 하지 않았다. 코로나가 아동학대를 장시간 방치하도록 만든 핑계가 된 것이다. 작년 6월 아버지의 동거녀가 여행 가방에 7시간 넘게 감금하고, 가방 위에서 최대 160kg의 무게로 압박해 결국 숨진 B(당시 9세)군 역시 코로나 사태로 학교 등교를 하지 못하던 상황에서 이같은 학대가 벌어졌다.
늘어나는 아동학대 112 신고 / 코로나 이후 변화 설문조사 |
학대 피해 아동들은 코로나 속 ‘감시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유치원, 초등학교가 코로나를 이유로 줄줄이 비대면 수업을 하고, 부모들이 병원 방문도 꺼리면서 아동학대를 적발하고 신고해왔던 교사·의사 등과의 접점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지자체의 현장조사도 크게 줄었다. 이용호 의원실에 따르면 아동학대 의심 사례 현장조사는 2019년에는 월 평균 7475회 진행됐지만, 지난해(1~8월 현재)에는 월 1344회에 그쳤다. 익명을 요청한 한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학교 선생님들이 영상통화로 체크를 한다고는 하는데 비대면인 만큼 한계가 많다”며 “아동학대로 법원 명령이나 강제 집행을 할 때도 부모가 코로나를 이유로 집에 들어오거나 만나는 걸 거부하는 경우도 잦다”고 했다.
신의진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소아정신과 의사는 “코로나 사태로 아동학대가 훨씬 늘었을 것이고, 가끔 나오는 끔찍한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위기 상황은 원래 정신적으로 취약한 사람을 더 어렵게 만드는데, 충동조절·정서조절이 어려운 사람들이 고립되고 경제적 어려움까지 더해지는 게 코로나”라며 “정신적으로 취약한 보호자들이 유치원, 학교가 해왔던 보육 기능을 도맡게 되면서 스트레스가 더 심해져 아동을 학대하게 될 수 있다”고 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5일 긴급 관계 장관 회의를 열고 전국 시·군·구에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 664명을 배치하고 약사, 위탁 가정 부모 등 아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직군을 아동 학대 신고 의무자로 추가 지정하는 등의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석남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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