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이 재석 의원 287명 가운데 찬성 187명, 반대 99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되자 박수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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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10일 더불어민주당은 “우리는 할 만큼 했다”고 자평했다. 한 친문 핵심 의원은 “이낙연 대표도, 김태년 원내대표도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의힘에 ‘합의를 해보자’고 제안하고 기다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과 1년 전(2019년 12월 30일) 범여 공조로 공수처법을 처리할 때 내세웠던 ‘야당 비토권 보장’ 명분을 송두리째 뒤집은 데 대한 사과나 설명은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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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석수가 부른 무리수
그때는 129석이었고, 지금은 173석이다. 커진 의석수가 공수처법 말 바꾸기에서 드러난 ‘명분 상실’ 같은 무리수를 곳곳에서 만들어냈다. 민주당은 세월호 특조위 활동 기간을 1년 6개월 늘리겠다며 개정한 사회적참사특별법(사참위법)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규명 업무를 제외했다. 이를 지켜본 세월호 가족들조차 “민주당 원내대표단이 반드시 비판받아야 한다”고 비난했고 최예용 사참위 부위원장이 항의 표시로 9일 사퇴했다.
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복합기업집단감독법)과 노동 3법(노동조합법·공무원노조법·교원노조법)을 두고는 반기업 여당의 ‘코드 입법’ 한계를 노출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이날 “경제계가 수많은 건의, 공청회 등에서 끈질기게 수정안을 요청했으나 대부분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10일 오후 국회에서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 등을 위한 본회의에 참석하며 국민의힘 의원들과 충돌했다. 정 의원이 주호영 원내대표에게 항의를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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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전단금지법과 5·18 특별법은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을 받고 있다. 이미 법조계에서 “입법을 하더라도 추후 위헌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지적이 나온 법안들이다. 한 민주당 상임위 간사는 통화에서 “야당 비협조 책임이 크지만, 당 전체가 공수처법 통과에 사활을 걸다 보니 나머지 쟁점 법안에 대한 숙의 총량이 부족했던 측면이 있다”고 시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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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 지적에 독주 감행
한때 협치를 모색하던 민주당이 결국 나홀로 독주를 택한 배경에는 ‘집토끼 사수’ 판단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한다. 민주당 핵심관계자는 “FGI(표적집단면접) 등 자체 여론조사 결과 지지층과 중도층에서 ‘오만·독주’에 대한 부정 평가보다 ‘무능·무책임’에 대한 부정 평가가 확연히 큰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그는 “오만·독주 반응은 일부 보수층에서 유의미한 것으로 확인된다. 그들은 우리 표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민주당 최고위는 지난달부터 이런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받고 국회 전략을 논의했다. 한 최고위원은 “통합, 합의에 대한 요구가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보다 ‘선거 결과에 책임지라’는 압박이 더 큰 것 아니겠냐”며 “정권 공약에 대한 ‘책임정당’ 실현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국회 법사위에서 야당을 누르고 공수처법을 강행 처리한 다음날(9일) 회의실 벽면에 ‘유능한 민주당’이라고 쓴 백드롭을 내걸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운데)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김종민 최고위원(왼쪽)과 김태년 원내대표(오른쪽) 모습도 보인다. 민주당은 이날 법사위에서 공수처를 강행 처리했다. 오종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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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층을 의식한 강경론은 이미 이달 들어 민주당 곳곳에서 분출됐다. 광주를 지역구로 둔 민주당 의원 8명이 “민주당은 왜 검찰 개혁을 주저하느냐”고 7일 긴급성명을 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3일 “월성 원전 영장 청구는 윤석열의 정치공작”이라며 “정치세력으로 변질된 검찰의 표적·정치수사가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의 동력을 저하시키고 있다”고 기자회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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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尹-지지율-이낙연 변수도
여야 물밑 협상이 한창이던 지난 일주일간 벌어진 몇몇 사건이 집토끼를 향해 뛰는 민주당 독주에 기폭제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1일 법원이 윤 총장 직무집행 정지 효력을 멈추면서 내부가 술렁였고, 공수처에서 절대 밀리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커졌다”고 전했다.
대통령·여당 지지율의 심상찮은 동반 하락도 압박이었다. 광주 지역의 한 의원은 “지역에선 ‘180석을 만들어줬는데 검찰 개혁 하나 제대로 못 하냐’는 말이 많았다. 의원실로도 ‘힘 있게 밀어붙이라’는 지역 주민 전화가 수십통 걸려왔다”고 말했다. ‘문파’로 불리는 수도권 열성 지지층 외 호남·진보층 등 전통 당원들의 이탈 조짐에 위기론이 용출했다고 한다.
‘입법 독주’ 직전 일주일... 민주당에 무슨 일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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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당을 진두지휘하는 이낙연 대표가 측근 악재에 휘말렸다. “대표 개인 일”(재선 최고위원)이라는 선 긋기 속에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이 하향 곡선을 그리자 초조해진 이 대표 역시 친문 진영 울타리에 안착하고자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대표는 공수처법 본회의 통과 직후 당원 게시판에 “모든 성과는 당원 동지와 국민 여러분의 성원과 채찍 덕분이다. 감사하다”고 적었다.
그러나 중도층 확장보다 지지층 사수에 집중하는 전략이 넉 달 뒤 4·7 서울·부산시장 보선에서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는 아직 미지수다. 민주당 권리당원 수는 지난 8·29 전당대회 기준 79만6886명으로 국민의힘 책임당원 수(약 32만명)보다 두 배 이상 많다.
여론조사업체 에스티아이 이준호 대표는 “민주당 전통적 지지층과 일반 시민 생각에는 온도 차가 존재한다”며 “공수처를 제때 처리하지 않아 민심이 하락했단 진단은 밑바닥 민심과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9일 민주당 당원게시판에도 “공수처가 없어도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갔다”며 공수처 총력전에 의문을 제기하는 글이 올라왔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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