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까지 형들 뒤에 서서 조용히 일했던 이건희 회장과 달리 이재용 부회장은 이 회장이 대권을 승계받던 그 순간부터 후계자로 커 왔다. 형제 중 첫째이고, 아들은 그뿐이다. 이병철 회장은 생전에 손자인 이 부회장 손을 꼭 잡은 채 차를 타고 출근하곤 했으며 이 부회장이 대학에서 전공을 동양사학으로 정한 데는 할아버지 조언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대학 진학을 앞두고 전공 선택을 고민하던 이 부회장에게 이병철 회장은 "경영자가 되기 위해서는 경영이론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을 이해하는 폭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 교양을 쌓는 학부 과정에서는 사학이나 문학과 같은 인문학을 전공하고 경영학은 외국에 나가서 공부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1995년 일본으로 건너간 이 부회장은 게이오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이 결정은 "미국을 먼저 보고 일본을 보면 일본 사회의 특성과 문화의 섬세함, 일본인의 인내성을 알지 못한다. 유학을 가려면 일본에 먼저 가라"는 이건희 회장 조언이 작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이 부회장은 2001년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다. 그러나 경영 수업은 길고 엄격했다.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사장으로 승진한 것은 근 20년간 아버지 밑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난 이후인 2010년이었다. 이 부회장은 지금도 자신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자리에 좀처럼 나서지 않는다.
과거 이병철 회장은 양과 개선활동이 중심이었던 '관리의 삼성'을 강조하는 리더십을 보였다. 이어 이건희 회장은 질과 혁신경쟁을 강조한 '전략의 삼성'을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그동안 특유의 온화한 성품을 바탕으로 부드러운 리더십을 내걸고 '이재용식 삼성'을 지향해왔다. 경청을 바탕으로 위기 대응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기회 창출과 한 단계 도약 등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일본 수출 규제 당시 "긴장은 하되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 위기를 극복하자. 새로운 기회를 창출해 한 단계 더 도약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자"고 강조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부회장은 오늘날 삼성을 만든 선대 회장들의 리더십과 '같은 듯 다른' 리더십으로 주목받고 있다. 경청과 목계를 바탕으로 대주주 투명성과 사회적 책임 강화라는 시대적 요구에 적극 부응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5월 경영권 승계 의혹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는 자리에서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식 오너 경영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더 이상 삼성에서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며 노조 허용 방침을 밝혔다.
[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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