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이 2012년 7월 22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자격으로 런던 올림픽을 참관하기 위해 영국으로 출국하고 있다. 런던 올림픽에 전 세계 정치·경제 리더들이 모이는 만큼 이들과 네트워킹을 강화해 기업의 글로벌 역량을 확대하려는 목적에서였다. [매경DB] |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은 냉철한 기업인으로 평가받으면서도 인간적인 면모도 남달랐다.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소탈하고 따뜻하면서도 때로는 엉뚱한 행동으로 주위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울고 웃게 만들었다는 게 지인들 전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어린이집을 만들라고 지시했던 일화다. 1987년 회장 취임 직후 외부 인사들과 호텔신라에서 오찬을 하던 이 회장은 창밖을 내려다보더니 갑자기 비서진에게 "저기다 어린이집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당시 호텔신라 뒤쪽에는 낙후된 집들이 밀집해 있었는데, 이 회장은 "저런 곳에 사는 사람들이 제대로 근무하려면 아이들을 편안하게 맡겨야 할 텐데, 좋은 시설에 맡길 수는 없을 것 아닌가"라며 "그런 걸 우리가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 회장은 이후에도 "다섯 살, 여섯 살 어린이들을 맡는 데 (가구 등) 모서리가 각이 지면 안 된다" "아이들 하루 급식 칼로리가 얼마나 되느냐" 등 어린이집 건립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1990년 1월 '1호 어린이집' 개관 소식을 전해 듣고는 "진작에 하라니까 말이야"라며 크게 기뻐했다. 이 회장은 직원 사랑도 남달랐다. 그는 생전에 "삼성에서 30년을 일했으면 노후 걱정은 없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임직원 처우를 직접 챙겼고, 비서진에게 "그분이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직접 찾아 안부를 물어보라"면서 회사를 떠난 참모들을 끝까지 챙겼다.
이 회장의 인간적인 면모는 학창 시절 은사와 친구들이 겪은 사연에서도 엿볼 수 있다. 고교 2·3학년 때 담임이었던 박붕배 서울교대 교수(2015년 별세)는 생전에 "친구들과 장난치고 도시락 반찬도 뺏어 먹는 평범한 학생이었다"면서 "잘난 체, 부자 아들 티, 그런 걸 전혀 못 느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서울대 사대부고 동창으로 60년 지기인 홍사덕 전 국회 부의장(2020년 6월 별세)은 생전에 이 회장을 "엉뚱하고 싱거운 친구였다"고 회고했다. 홍 전 부의장은 "방과 후 자기 집에 놀러가자며 앞장서 가던 그가 배고프다며 군용 천막 안에 있는 즉석 도넛 가게로 끌고 간 적이 있다"며 "시골 촌놈인 내 눈에도 비위생적인 곳이지만 털썩 주저앉아 잘도 먹어 치우는 그의 모습을 보고 '녀석, 가정 형편이 우리 집 수준밖에 안 되는 모양'이라고 단정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홍 전 부의장은 "시시하게는 어느 콧대 높은 여학생과 데이트하는 것을 놓고 걸었던 내기에서부터 크게는 사업 구상에 이르기까지 그가 입 밖에 낸 말을 주워담거나 바꾸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특유의 '마니아적 취향'으로도 유명했다. 대표적인 것이 자동차에 대한 열정이다. 특히 스포츠카에 무한 사랑을 보냈다. 페라리F430스파이더, 포르쉐911터보카브리올레 등이 대표적인 애마였다. 2014년 초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삼성 사장단 신년 만찬에 차 가격만 10억원을 넘는 최고급 세단 '마이바흐'를 타고 등장해 차에 대한 애정이 식지 않았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회장은 반려견 마니아이기도 했다. 유학 생활을 마친 뒤에는 직접 전남 진도까지 내려가 진돗개를 사들여 애지중지 키웠고, '진돗개애호협회'까지 만들어 직접 회장을 맡았다. 카메라에 대한 사랑도 빼놓을 수 없다.
이 회장은 예술 후원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남다른 심미안으로 국보급 고미술부터 현대미술까지 폭넓은 작품들을 수집하고 예술가를 지원했다. 2004년에는 선친인 이병철 회장의 성 '이(Lee)'와 미술관(Museum)을 의미하는 '움(um)'을 조합한 삼성미술관 리움의 문을 열어 한국 미술 1번지로 키웠다. '비디오아트' 창시자인 백남준과의 특별한 인연도 눈길을 끈다. 백남준은 1987년 박명자 현대화랑 회장의 주선으로 이 회장을 만났는데, 이후 그간 사용하던 일본산 소니 TV 대신 삼성전자 TV를 후원받아 쓰기 시작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념해 제작한 그의 대표작 '다다익선'은 삼성전자가 후원한 1003대의 TV로 만들어졌다.
고인은 때로는 기발한 언행으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거나 당황스럽게 하기도 했다. 삼성 회장 재임 시절 한 임원을 불러 "사장들 가운데 보신탕을 먹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은 뒤 명단을 적어 오라고 지시한 것이 대표적인 일화다. 그는 당황한 임원이 "혼내실 것이냐"고 묻자 "개를 한 마리씩 사주겠다"고 말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전지현 기자 / 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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