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사장단 회의를 소집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대대적 혁신을 주문하며 신경영을 선언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삼성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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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재계의 큰 별이 떨어졌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타계했다. 향년 78세.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 증세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지 6년5개월 만이다.
삼성은 이날 이 회장의 별세 소식을 알리며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장례는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으며, 조문과 조화는 정중히 사양한다"고 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있다. 홍 전 관장과 이 부회장 등 유족들은 전날 이 회장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았으며 함께 고인의 임종을 지켜본 것으로 전해졌다. 빈소는 고인이 입원해 있던 삼성서울병원에 차려졌으며 장례는 4일장으로 진행된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빈소 내부 인원은 50인 미만으로 제한할 예정이다. 이 밖에 구체적인 장례 일정 등은 현재 논의 중이라고 삼성 측은 밝혔다.
고인은 2014년 5월 10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급성심근경색을 일으켜 병원에서 심폐소생술(CPR)까지 받고 소생해 치료를 이어왔다. 이후 자가호흡을 하며 재활치료를 받아왔으나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
고인은 선친인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 창업주 별세 이후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라 2014년 5월 초까지 삼성을 이끌면서 삼성을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는 창업보다 어렵다는 수성(守城) 차원을 넘어서 제2의 창업을 훌륭하게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취임 후 여러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1등으로 끌어올렸다.
D램 반도체가 처음으로 1992년 세계 1위로 등극한 데 이어 S램(1995년), 대형 LCD(1999년), 낸드플래시 메모리(2002년),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2005년), 평판TV(2006년), 모니터(2006년), 스마트카드IC(2006년) 등이 잇따라 글로벌 점유율 1등을 꿰찼다. 글로벌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한 삼성 제품은 정보기술(IT) 분야에서만 11개에 달하며 삼성그룹 전체적으로는 20개로 추산된다.
고인이 회장으로 취임할 당시인 1987년 매출 17조3900억원, 순이익 2060억원, 시가총액 1조원에 머물던 삼성그룹은 50주년인 1988년 매출 20조원을 돌파했고, 2020년 10월 말 현재 396조원대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고인은 1942년 1월 9일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4남 6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서울사대부고를 졸업한 후 1965년 일본 와세다대에서 경제학 학사, 1966년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MBA)을 수료했다. 1966년 동양방송(TBC)에 이사로 입사해 1978년 삼성물산 부회장, 1979~1987년 삼성그룹 부회장을 지냈다.
[노현 기자 / 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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