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구미 방문. [사진제공 = 삼성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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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 회장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가 생전에 추진했던 대북사업을 통한 북한과의 인연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삼성그룹이 적극적으로 대북 진출을 모색했던 시기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며 남북관계가 급속히 진전됐던 시기다.
특히 삼성은 주 사업인 전자사업을 앞세워 대북진출 활로를 모색했다.
1999년 북한과 계약을 맺고 이듬해 삼성 브랜드를 부착한 TV를 북한에 보냈다. 이에 '아태-삼성'(ATAE-SAMSUNG)이라는 브랜드가 적힌 TV가 고려호텔을 비롯한 북한의 유명호텔 로비에 설치됐다.
반대로 북한에서 생산한 전자제품을 남한으로 들여오기도 했다.
TV·유선전화기·라디오 카세트 위탁가공 생산을 통해 평양에서 만들어진 전자제품들이 남한에 등장했다.
나아가 삼성은 남북 소프트웨어 개발에도 뛰어들었다. 삼성과 북한은 2000년 중국 베이징에서 소프트웨어 공동개발센터를 개소하고 북한은 '조선컴퓨터센터'(KCC) 전문가들을 센터로 파견했다.
이듬해 삼성은 북한에서 개발된 '류경바둑', '류경장기'게임과 북한요리를 소개하는 '조선료리' 등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국내에 판매했다.
대북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삼성의 임원들이 여러 차례 방북길에 올랐다.
대체로 당시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끄는 가운데 대북사업팀이 북한을 방문해 소프트웨어 개발, TV·오디오 임가공 사업과 함께 현대가 추진하던 개성공단과는 별도로 50만평 규모의 최첨단 전자단지를 조성하는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삼성은 대북사업을 추진하는 동안 중국 베이징을 경유해 북한을 오가는 것이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북한 측에 평양사무소 개설을 요청할 만큼, 한때는 대북사업에 적극적이었다.
전자사업 외에도 삼성은 제일모직을 통해 1992년부터 북한에서 의류 임가공 사업을 진행하며 연간 1000만∼15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2005년에는 삼성 계열 광고대행사 제일기획이 삼성전자 휴대폰 '애니콜'의 새 광고모델로 북한 무용수 조명애를 캐스팅해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남북관계가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특히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한반도에 긴장국면이 조성되면서 '이건희 세대'의 대북사업은 이렇다 할 성과 없이 미완으로 막을 내렸다.
[김승한 기자 winone@mkinter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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