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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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가슴 벅찬 미래를 향한 출발선상에 서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초일류이며, 방향은 하나로, 눈은 세계로, 그리고 꿈은 미래에 두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 갑시다."(1994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초일류 '를 꿈꾸며 한국 재계를 이끌어 온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이건희 회장은 삼성을 반도체, 모바일, 가전 등 첨단 기술 분야의 세계 1위에 올려놓으며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늘 위기의식을 강조하며 끝없는 혁신을 주문한 이 회장은 1987년 회장으로 취임한 이래 당시 10조원이었던 매출액을 2018년 387조원으로 40배 가까이 키웠으며, 삼성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400배 가까이 증가했다.
첨단기술 중심 '제2창업' 선언
"우리는 지금 국내외적으로 수많은 시련과 도전이 몰려드는 격동의 시대를 살고 있다."
1987년 12월1일 호암아트홀, 이 회장은 취임사로 "미래 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을 통해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킬 것"이라며 "'삼성 제2의 창업'의 선봉으로 혼신의 힘을 다하여 그 소임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1987년 이건희 회장 취임식 당시 모습. / 사진 = 삼성전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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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 취임 당시 삼성은 재계 순위에서 현대에 밀린 2위였다. 50~60년대 백설탕, 밀가루, 면방직 등 이른바 '삼백(三白)'이 산업의 주축이던 시절 삼성 역시 설탕과 밀가루(제일제당), 면방직(제일모직)이 주력이었다. 하지만 70년대 들어 자동차, 조선, 건설 등 중후장대 산업이 본격적인 성장궤도에 오르면서 삼성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좁아졌다.
이 회장은 첨단기술 분야를 넓히고 해외사업을 활성화하는 쪽으로 '제2 창업'의 방향을 잡았다. 1988년 3월 이 회장은 "지산 반세기의 발자취를 거울로 삼아 삼성의 위대한 내일을 설계하자"며 "오는 90년대까지 삼성그룹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발전시키겠다"고 제2창업을 선언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
"내 말은 양과 질의 비중을 5대 5나 3대 7 정도로 가자는 것이 아니다. 아예 0:10으로 가자는 것이다. 질을 위해서라면 양을 희생시켜도 좋다. 제품과 서비스, 사람과 경영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하다면 공장이나 라인의 생산을 중단해도 좋다는 말이다"
이 회장의 리더십은 1993년 6월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통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당시 이 회장은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이라며 "지금처럼 잘해봐야 1.5류"라고 직원들을 질책했다.
1993년 신경영 선언 당시 / 사진 = 삼성전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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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품질 중심의 '신경영'은 삼성그룹의 체질 전환 뿐만 아니라 한국의 기업문화를 바꾸는 일대 전환점이 됐다. 신경영 철학의 핵심은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자기 반성을 통해 변화의 의지를 갖고, 질 위주 경영을 실천해 최고의 품질과 최상의 경쟁력을 갖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세계 초일류기업이 되자는 것이다.
이 회장의 품질에 대한 강한 집착을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가 일명 '구미 화형식'으로 불리는 불량 제품 소각 사건이다. 1995년 구미 운동장에서 임직원 20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품질은 나의 인경이오'라는 문구를 내걸고 500억원 상당의 불량 휴대폰 10만대 이상을 불태운 충격적인 사건이다.
시대를 앞선 통찰력이 키운 '세계 1등 기업'
"언제까지 그들의 기술 속국이어야 하겠습니까?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 삼성이 나서야지요. 제 사재를 보태겠습니다."
1974년 이건희 회장이 파산 직전의 한국반도체를 인수한다고 했을 때 모두가 반대했다. 지금이야 반도체 하면 '삼성'을 떠올리는 시대가 됐지만, 그 때만 해도 한국반도체 인수는 말도 안되는 공상과 같은 이야기였다. 일본의 한 기업 연구소는 '삼성이 반도체를 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내놓으며 비판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반도체 사업은 이 회장의 30여 년을 내다본 혜안으로 일궈낸 분야다. 반도체 산업이 한국과 세계경제의 미래에 필수적인 산업이라 판단한 이 회장은 과감한 투자를 이어가며 삼성 반도체를 세계 1등으로 끌어올렸다.
2004년 반도체 현장 방문 / 사진 = 삼성전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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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의 '디자인 경영'도 삼성을 한단계 도약시킨 사례다. 1993년 6월 이 회장은 프랑크푸르트에서 "앞으로 세상에 디자인이 제일 중요해진다. 개성화로 간다"며 "성능이고 질이고는 이제 생산기술이 다 비슷해진단 말인데 앞으로 개성을 어떻게 하느냐 디자인을 어떻게 하느냐"고 다시 한 번 진전을 요구했다.
이후 삼성은 2004년 점유율 60%를 기록하며 플래시메모리 세계 1위에 올랐다. 이어 2006년 글로벌 TV 시장에서 일본 소니를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고, 노키아, 모토로라, 애플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밀어내며 휴대폰 시장에서도 선두를 차지하고 있다.
신경영과 디자인경영은 이후 '창조 경영'과 '마하 경영'으로 이어졌다. 이는 이 회장이 2006년 사장단 회의에서 처음 던진 화두다. 제트기가 음속을 돌파하려면 설계도는 물론 엔진, 소재, 부품을 모두 바꿔야 하는 것처럼, 삼성도 선진 기업을 추월해 세계 초일류 기업이 되려면 체질과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의미다. 마하경영은 후계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전 임직원들이 안착화시켜야 할 유훈이 됐다.
'인재제일' 철학으로 세계 일류기업 '내실' 마련
"대학 졸업장과 관계없이 입사할 수 있는 기회를 동일하게 주고 입사 후 승진, 승격에도 차별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삼성의 입사 기준은 학력이 아니고 실력입니다."
이 회장은 외형적인 성장 외에도 삼성에 선진 경영 시스템을 입히고 경영체질을 강화해 내실 면에서도 세계 일류기업의 면모를 갖추도록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먼저 학력과 성별, 직종에 따른 불합리한 인사 차별을 타파하는 열린 인사를 지시했고, 삼성은 이를 받아들여 '공채 학력 제한 폐지'를 선언했다. 삼성은 이때부터 연공 서열식 인사 기조가 아닌 능력급제를 전격 시행했다.
2011년 선진제품비교전시회 / 사진 = 삼성전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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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1995년 7월 채용 대 학력제한을 철폐하는 것을 포함한 열린 인사 개혁조치를 발표해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열린 인사는 '기회균등 인사', '능력주의 인사', '가능성을 열어주는 인사' 등 세 가지 내용을 담았다. 학력이나 성별을 이유로 기회조차 주지 않던 닫힌 제도와 관행을 모두 철폐하고, 직원들은 급여 인상이나 승진·승격 때 본인 스스로 일궈 낸 능력과 업적에따라 대우받게 하겠다는 방향이다.
이 회장은 '인재제일'의 철학을 바탕으로 핵심인재를 확보하고 양성하는데도 힘썼다. 삼성은 1990년부터 지역전문가제를 운영하여 2012년까지 4400여 명을 세계 각국에 파견했다. 1994년에는 제조 부문의 과·차장급 간부를 대상으로 '테크노 MBA' 과정을 도입하고,1995년에는 경영지원 부문의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소시오 MBA' 과정을 도입했다.
이건희 회장은 "기업이 인재를 양성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죄악이며 양질의 인재를 활용하지 못하고 내보내는 것은 경영의 큰 손실"이라며 "부정보다 더 파렴치한 것이 바로 사람을 망치는 것"이라고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건희 회장 연혁>
1987년 11월 회장 취임
1988년 3월 제2창업 선언
1988년 11월 삼성전자, 반도체통신 흡수합병
1989년 9월 잭 웰치 GE회장 접견
1989년 12월 삼성복지재단 설립
1991년 3월 제1회 호암상 시상식
1992년 3월 부시 미국대통령 단독면담
1993년 3월 그룹 新CI 정립
1993년 5월 협력사 대표 오찬간담회
1993년 6월 삼성 신경영 선언
1993년 7월 全 계열사 조기출퇴근제 실시
1993년 10월 제1회 여성지위향상 골든 어워드 수상
1994년 1월 일본 본사 출범
1994년 10월 삼성 사회봉사단 출범
1994년 12월 빌 게이츠 MS 회장 오찬
1995년 1월 미주·구주·중국 본사 출범
1995년 3월 삼성디자인학교(SADI) 설립, 여사원 근무복장 자율화
1995년 7월 공채 필기시험 전면 폐지
1995년 10월 영국 윈야드 전자단지 준공식
1996년 4월 멕시코 티후아나 복합단지 시찰
1996년 7월 IOC위원 선정
1997년 2월 말레이시아 전자복합단지 건설
1998년 2월 사마란치 IOC위원장 접견
1998년 3월 미국 오스틴 반도체 공장 준공
1998년 4월 엘빈 토플러 박사 면담
1998년 5월 후진타오 부주석 접견, 볼보 회장 접견
1998년 9월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 만찬
1999년 6월 IOC 서울 총회 참석
2000년 9월 시드니 홍보관 개관식 참석
2002년 1월 서울大 명예 경영학 박사 학위 수여
2002년 7월 삼성이건희장학재단 설립
2002년 11월 삼성 펠로우 제도 시행
2003년 6월 에드윈 퓰러 헤리티지 재단 이사장 접견
2003년 7월 삼성 브랜드 가치 100억불 돌파
2004년 6월 프랑스 레종드뇌르 훈장 수훈, 아테네 올림픽 성황봉송
2004년 9월 동유럽 현장경영
2004년 10월 리움 미술관 개관식
2005년 7월 동남아 현장경영
2005년 9월 화성 반도체 2단지 본격 투자
2006년 9월 벤 플리트 상 수상, 뉴욕 사장단 회의 주재
2006년 11월 태릉 선수촌 격려 방문
2007년 1월 평창 올림픽 유치 지원
2007년 2월 과테말라 IOC총회
2010년 1월 세계 최고층 빌딩 버즈 칼리파 완공, CES 방문
2010년 2월 호암 100주년 기념음악회, 벤쿠버 올림픽 활동
2010년 5월 소니 회장 접견, 화성 캠퍼스 기공식 참석
2010년 9월 와세다大 명예박사 학위 수여
2011년 7월 남아공 더반 IOC총회, 평창 올림픽 유치 성공
2011년 10월 제임스 호튼 코닝 명예회장 면담
2011년 11월 알사바 아시아올림픽평의회장 오찬
2012년 4월 멕시코 카를로스 슬림 텔멕스텔레콤 회장과 만찬
2012년 6월 알베르 2세 모나코 국왕 만찬
2012년 9월 홍콩 리카싱 청콩그룹 회장 면담
2012년 10월 베트남 호앙 쭝 하이 부총리 면담
2013년 5월 제임스 호튼 코닝 명예회장 만찬
남도영 기자 hyun@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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