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01 (금)

반도체·스마트폰·TV 등 세계 1위…`월드 베스트`로 글로벌 초일류 삼성 만들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1942년 1월 9일 경남 의령군에서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회장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지금도 매년 1월 9일이면 삼성그룹은 자랑스러운 삼성인상 시상식과 신년 사장단 만찬을 연다.

이 회장이 태어날 당시 이병철 회장은 삼성상회 일로 한창 바쁠 때여서 고향의 할머니 밑에서 3년을 자랐다. 1947년 서울로 올라와 혜화초등학교에 입학하지만 6·25전쟁으로 마산 대구 부산으로 옮겨다녔고,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사대부고를 졸업하고 연세대에 입학했지만 곧바로 일본 와세다대학 상학부로, 또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건희 회장은 예전 '신동아' 등과의 인터뷰에서 떨어져 사는 게 버릇이 되어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게 됐고, 혼자 생각을 많이 하고 또 깊이 하게 됐다고 자신의 성격을 설명했다. 그는 9시간이나 계속된 프랑크푸르트 회의 등 여러 군데서 자신의 외골수 같은 성격과 집념을 드러낸 바 있다.

이 회장은 이맹희, 창희 두 형이 잇따라 아버지의 눈 밖에 나면서 삼성의 총수가 될 기회를 얻었다. 이병철 회장은 '호암자전'에서 "건희가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삼성그룹의 전체 경영을 맡을 사람이 없어 건희를 그룹 경영의 일선에 차츰 참여시키게 되었다. 다행히 건희가 자질도 보이고 기업 경영에 열심히 참여해 후계자로 정하게 됐다"고 썼다. 이건희 회장은 1968년 중앙일보와 동양방송 이사로 취임한 뒤 1978년 삼성그룹 부회장 자리를 꿰차며 후계자 자리를 확실하게 차지했다.

은둔의 이건희 회장은 기업 경영을 하면서 승부사의 기질을 본격적으로 발휘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게 1974년 한국반도체를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재를 털어 인수한 사례다. 이건희 회장은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이병철 회장이 1983년 반도체 사업 진출을 공식 선언한 것을 '구멍가게 같은 공장에서 개인사업으로 시작한 반도체가 10년 만에 삼성의 핵심 사업의 하나로 인정받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현재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은 회사 곳간을 채워주는 효자로 자리매김했다. 삼성은 현재 D램과 낸느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확고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회장은 1987년 이병철 회장이 타계하자 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이어 1988년 3월 삼성 창립 50주년에 맞추어 '글로벌 초일류 기업'이라는 비전을 제시하며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이 회장의 진가가 드러난 것은 1993년 이른바 '신경영 선언' 이후다. 이 회장은 삼성의 임원 수백명을 모두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소집해서 불량 제품을 담은 동영상을 보여주며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꿀 것"을 주문했다. 회장 취임 5년 동안 직접 경영하며 느낀 문제점들을 일시에 열변을 토하며 지적하고 변하지 않으면 끝이라고 최후통첩을 했다.

이후 '양에서 질'로 방향타를 전환한 삼성은 이 회장의 비전대로 초일류기업으로 환골탈태한다. 2006년 삼성 '보르도 TV'가 글로벌 TV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삼성의 세계 1위 제품들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다음해인 2007년 이 회장에게도 시련이 찾아왔다. 삼성 법무팀장으로 근무했던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드러난 이른바 '삼성특검'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이 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가 2010년 3월 3년만에 경영에 복귀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복귀 전부터 스마트폰 시장의 폭발적인 확대를 준비해왔다. 바로 2010년 6월에 나온 첫번째 갤럭시S 시리즈의 탄생배경이다. 갤럭시S는 전세계적으로 2500만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갤럭시 신화'의 시작을 알렸다. 삼성전자가 2012년 글로벌 휴대폰 시장에서 1위에 오르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이건희 회장 취임 후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배출한 역대 월드 베스트 제품은 총 9개 에른다.

점유율 기준 스마트폰(2012년·SA), 스마트카드 IC(2006년·ABI), 모바일 CMOS 이미지센서(2010년·TSR)와 매출액 기준 TV(2006년·디스플레이서치), 모니터(2007년·IDC), D램(1992년·아이서플라이), 낸드플래시(2002년·아이서플라이), 모바일AP(2006년·SA) 등이다.

이 회장이 경영을 맡은 27년 동안 삼성그룹의 시가총액은 350배, 매출은 34배 이상 커졌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이 회장이 취임한 1987년 9천억원이던 삼성그룹 시가총액은 이 회장이 쓰러지기 직전해인 2014년에 318조7천634억원을 기록, 348배로 증가했다. 매출 역시 9조9천억원에서 338조6천억원으로 34배로 많아졌다. 자산은 8조원에서 575조1천억원으로 70배 넘게 늘어나 명실상부한 재계 1위를 차지했다.

영국 브랜드파이낸스가 발표한 2015 글로벌 500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817억1600만달러(약90조)로 애플(1283억300만달러)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이 회장은 블룸버그가 발표한 2015년 세계 100대 부자 중 재산 135억달러로 81위를 기록해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순위권에 들었다.

[이종혁 기자 / 박재영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