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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지구 착취 않고도 풍요 누리는 시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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맬서스의 식량부족 경고 넘어섰듯 산업화 시대의 자원 고갈 경고도 신기술·제도 뒷받침으로 극복 가능

조선일보

포스트 피크

앤드루 맥아피 지음 이한음 옮김 청림출판 392쪽 1만8000원

온난화로 인해 지난달은 기상관측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9월로 기록됐다. 오늘 당장 온실가스 배출을 멈춰도 이번 세기 내내 기온의 추가 상승은 피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그런데 화석연료를 태우지 않고 어떻게 공장을 돌리고 자동차와 비행기를 움직이며 전기를 만든단 말인가. 인류 문명은 이대로 파국을 맞을 것인가. 트럼프와 바이든도 22일 대선 전 마지막 TV 토론회에서 온난화 문제를 두고 격돌했다.

미국 MIT 교수인 저자 맥아피는 “인류가 앉아서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크게 두 번의 예고된 파국을 우리가 어떻게 극복했는지 보여주며 “기후 위기도 예외가 아닐 것”이라고 전망한다. 첫 번째 파국은 맬서스가 예고했다. 그는 유명한 ‘인구론’에서 인류는 식량 부족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기아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잘못 예언했다. 18세기 증기기관 발명과 이어진 산업혁명이 일군 풍요의 기적을 그는 예측하지 못했다.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두 번째 파멸 위기는 산업혁명에서 비롯됐다. 증기기관 발명 이후 지금까지 성과는 대규모 자연 파괴를 통해 이룩됐다. 더 풍요로워지려면 더 많이 파괴해야 했다. 이런 착취를 지구가 무한정 견뎌내지는 못할 게 분명했다. 1960~70년대는 파국을 경고하는 이론과 저술이 쏟아져나온 시대다. MIT도 1972년 발간한 책 ‘성장의 한계’에서 알루미늄, 구리, 철 등이 50년 안에 바닥난다고 예언했다. 인류문명을 떠받쳐 온 석유가 2000년쯤 고갈될 것이란 암울한 전망을 내놓는 학자도 있었다. 비관론자들은 “이제 인류 앞에는 양자택일만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착취 경제를 고집하다 죽을 것인가, 지구와 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궁핍을 택할 것인가.

조선일보

풍요를 위해 지구 자원을 고갈시키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저자는 기술 발전 덕분에 환경 보전과 경제 발전이 조화를 이루는 세상이 오고 있다고 말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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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양자택일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놀랍게도 인류는 지구 파괴를 통한 성장이란 산업사회 성장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다양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자원 착취는 이미 정점(peak)을 지났거나 지나고 있다”고 분석한다. ‘정점 이후’ 인류가 가게 될 세상, 즉 포스트 피크의 세상은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혁신을 통해 이미 진행되고 있다. 이 혁신은 자연을 덜 착취하면서도 심지어 더 많은 것을 누리는 기적을 이루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미국의 2015년 철강 총사용량은 2000년 대비 15%나 줄었다. 석유 소비도 빠르면 2028년쯤 정점에 이른 뒤 감소세로 돌아설 전망이다. 경작지는 1982년 이후 지금까지 워싱턴주(州) 크기만큼 사라졌고, 2008년 이후 2017년까지 미국의 에너지 총사용량은 2% 감소했다. 그런데 농작물 생산은 오히려 35% 늘었고 경제는 15% 성장했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탈(脫)물질화’라 명명하면서 “선진국 위주로 탈물질화가 엄청난 속도와 규모로 진행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탈물질화 사례로 스마트폰을 든다. 전화기·캠코더·녹음기를 하나로 묶었고, 별개의 기기였을 때 3개 필요했던 마이크도 하나로 줄인 스마트폰이야말로 탈물질화 세계의 챔피언이라고 말한다.

탈물질화는 국제정치역학에도 영향을 미친다. 일본과 센카쿠 열도 영유권 분쟁을 벌이던 중국은 자국민이 이 해역에서 일본에 붙잡혀 억류되자 일본에 희토류 수출을 막는 것으로 항복을 받아냈다. 지금은 쓸 수 없는 압박 카드다. 중국의 힘자랑을 지켜본 기업들이 희토류를 적게 쓰거나 아예 쓰지 않는 공법을 만들어낸 것. 이후 희토류는 이름과 달리 전혀 희귀하지 않은 재료가 되어버렸다.

탈물질화를 가능케 한 것으로 기술 발전, 자본주의, 환경을 보호하는 대중의 인식, 대중의 인식에 즉각 반응하는 민주적 정부를 꼽고 이를 ‘낙관주의의 네 기수’라 명명했다. 또한 정점 이후의 세계를 산업 시대와 대비하기 위해 ‘제2의 기계 시대’라 부르자고 제안한다. 제1의 기계 시대가 지구로부터 더 많은 것을 취함으로써 번영했다면 제2의 기계 시대는 덜 취하면서 번영한다.

저자는 현 단계 인류 최고의 난제로 지구온난화를 꼽으면서도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기술의 발달에 희망을 건다.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을 적이 아닌 동지로 묶었으며, “원자력이 지구온난화와 맞서 싸울 주 무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탄소세를 걷어 정부가 쓰기보다는 국민에게 배분하는 ‘세수 중립적 탄소세’를 도입해야 탄소 억제 정책이 힘을 받는다는 등 정책 제안도 곁들였다. 자본주의와 기술의 발전이 환경 보전의 적이라는 일반적인 견해를 통쾌하게 전복한 책이다. 무책임한 낙관으로 흐르지 않기 위해 열거한 사례들은 설득력이 강하다. 환경론자와 개발론자를 적으로 돌리지 않고 지구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동지로 보는 시선도 인상 깊다.

[김태훈 출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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