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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기술과 손잡은 자본주의…인간, 지구와 함께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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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제2의 기계 시대'는 묵시록이었다. MIT 디지털비즈니스센터 앤드루 맥아피 교수는 컴퓨터와 로봇으로 상징되는 기계와 인간의 관계가 재설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급부상하는 기술에 공포심을 느끼게 한 이 책 이후 6년이 지났다. 그는 산업 구도의 개편을 예고한 '머신 크라우드 플랫폼'에 이어 또 하나의 신작을 썼다. 부제는 '거대한 역전의 시작'. 바로 기술 문명이 선사할 마법 같은 미래를 그리는 책이다.

인류의 번영은 지구에서 더 많은 자원과 경작지를 채취하도록 이끌었다. 절벽으로 내달리는 마차처럼 성장을 구가했다. 그런데 마침내 우리 행성을 더 가볍게 하는 법을 인류는 터득하기 시작했다. 미국인, 즉 세계경제의 약 25%를 차지하는 대국의 시민들은 해가 갈수록 대부분의 자원을 덜 쓰기 시작했다. 경제와 인구가 성장하고 있음에도 그렇다. 게다가 공기와 물을 덜 오염시키고, 온실가스를 덜 배출하며, 사라졌던 동물들이 돌아오고 있다. 이런 현상에 근거해 저자는 "미국은 지구 착취의 정점 이후(Post-peak) 시대에 들어섰다"고 주장한다. 다른 부유한 국가와 중국 같은 개발도상국조차 지구를 더 잘 돌보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 책은 인류가 어떤 전환점을 맞았는지, 이후에 어떤 일이 올지 정교하게 예측해 본다. 현재도 온난화와 환경오염, 동물의 멸종 등은 급속히 진행 중이지만 저자는 "우리가 그런 과제들을 해결할 방법을 알고 있다"고 선언한다.

환경과학자 제시 오스벨은 2015년 '자연의 귀환: 기술은 어떻게 환경을 해방시키는가'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미국인들이 1인당 자원을 점점 덜 소비할 뿐만 아니라 철강, 구리, 비료, 목재, 종이 등 핵심 자원 소비를 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지질조사국 통계는 미국의 5대 금속 소비량이 모두 1990년대 후반을 정점으로 줄어드는 추세를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철강 총사용량은 2015년 기준으로 2000년보다 15% 이상 줄었다. 정점 대비 알루미늄은 32%, 구리는 40% 넘게 줄었다.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GDP)은 눈이 부시게 성장했다.

세계 최대 농업국인 미국은 작물 생산량을 지속적으로 늘려 왔지만 비료는 1999년 정점보다 2015년에 25%를 덜 썼다. 경작지 총면적도 20세기 가장 적었던 수준까지 떨어졌다. 목재와 종이 소비는 극적으로 줄었다. 1990년 정점 이래 목재 소비량은 3분의 1이, 종이는 절반이 줄었다. 지질조사국이 조사한 72개 자원 중 정점 이후에 다다르지 않은 6가지는 규조토, 석류석, 보석, 소금, 은, 바나듐뿐이다. 탈물질화의 예외적 사례는 플라스틱이다. 심지어 2017년 미국의 에너지 총사용량도 2008년 정점 대비 2%가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경제는 15% 이상 성장했다. 심오한 변화다. 지난 10년간 미국에서는 산업시대의 습관을 뒤집는 거대한 역전이 일어나고 있다.

1970년 4월 첫 지구의 날 행사에서는 덜 소비하고, 재활용하고, 제약을 가하고, 귀농하는(CRIB) 전략을 통해 환경을 살리자는 주장이 등장했다. 하지만 소비는 여전히 늘고 있고, 귀농은 땅에 좋지 않으며 도시 생활이 더 환경 친화적이다. 저자가 CRIB를 대신해 혁명적 변화인 '탈물질화'의 핵심 엔진으로 지목하는 건 '자본주의'와 '기술 발전'이다.

21세기 인류는 컴퓨터와 인터넷을 비롯해 소비를 탈물질화하게 해줄 많은 디지털 기술을 발명했다. 디지털 기술이 원자를 비트로 대체함으로써 비용을 절감했고, 비용 절감 압력을 받던 자본주의 기업도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변화는 도처에 있다. 비옥한 농장과 기계화 농업은 생산량을 증대시켰고, 맥주와 청량음료의 캔은 강철 대신 알루미늄을 택했고 해가 갈수록 가벼워지고 있다. 과거 계산기, 캠코더, 시계, 라디오, 전화기, 녹음기, 나침반 등 각각 주머니에 넣어 다니던 15가지 전자제품은 아이폰 하나 속으로 들어갔다. 심지어 제2의 기계 시대가 발전하면 탈물질화도 가속된다.

여기 두 가지 엔진이 더해진다. 인간이 지구에 끼치는 피해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반응하는 정부'도 탈물질화에 핵심 역할을 했다. 저자는 이 네 가지를 '낙관주의의 네 기수'라고 부른다. 네 기수가 발맞춰 달릴 때 인간과 환경의 고통은 경감된다.

이 책은 네 기수에 채찍을 가하기 위해 탄소에 매기는 새로운 세금과 오염과 멸종 위기 동물로 만든 제품의 교역을 막는 등 엄격한 규제를 제안한다. 원자력과 유전자 변형 농산물을 더 써야 한다고 옹호한다. 이 책의 주된 주제는 자본주의 체제 기업은 가격 변화에 민감하므로, 세금이나 탄소 배출권 거래제를 통해 오염의 비용을 증가시키는 것이 오염을 줄이는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 개인들도 청정에너지 제품을 구입하는 것으로 여기에 동참할 수 있다. 수요 증가는 경쟁을 부추기고, 경쟁은 가격을 떨어뜨린다. 기술과 자본주의의 조합은 언제나 마법을 일으킨다.

저자에 따르면 인류는 마침내 지구를 지배하며 숱한 종을 멸종시킨 실수를 속죄할 기회를 얻었다. 오스벨은 "우리는 자연을 무가치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연을 경제적으로 무가치하게 만들어서 자본주의의 탐욕스러운 시선으로부터 안전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거기에 도달할 때 우리는 자연의 가치를 즐기게 된다. 이 변화는 아픈 아이, 굶주린 동물, 해변의 쓰레기 더미를 보고서 울컥하는 마음에서 시작될 수 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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