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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파키스탄 내전 발발’…13억 인도인들 덮친 가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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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야당인사 체포가 ‘내전’으로 부풀려져

인도 유수 언론들 가짜뉴스 전파에 적극 동참

인도와 연계된 위장 계정들이 ‘내전’ 뉴스 전파

인-파 역정보 전쟁이 최악의 가짜뉴스로 이어져


한겨레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군과 경찰이 전투를 벌이는 내전이 발발했다는 가짜뉴스와 관련된 동영상이 올라온 인도 언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위터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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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에 내전이 발발했다는 가짜뉴스가 주류 언론에서도 보도되는 등 인도를 휩쓸었다.

지난 20일 인도의 주요 언론인 <시엔엔18>, <지 뉴스>, <인디아 투데이> 등은 파키스탄의 최대 도시 카라치에서 군과 경찰이 전투를 벌이는 내전이 발발했다고 보도했다. 인도의 유명인들도 이런 뉴스들을 자신들의 소셜미디어에 올려, 인도는 곧 파키스탄 내전 뉴스가 넘쳐났다. 모두가 가짜뉴스였다.

이 가짜뉴스는 파키스탄 정부군이 카라치가 소재한 신드 주 경찰 총수를 납치해 야당 지도자 체포를 강요했다는 파키스탄 지역 언론들의 보도 뒤에 나왔다. 이런 언론 보도는 즉각 파키스탄과 적대적인 인도의 접경 지역에서 민감하게 받아들여졌다. 파키스탄군과 경찰의 충돌로 카라치 경찰관들이 죽었고, 탱크가 카라치 시내에 등장했다는 보도로 부풀려졌다. 트위터에는 카라치에서 소요를 보여주는 동영상도 나돌았다.

파키스탄에서는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의 사위 사프다르 아완이 지난 20일 체포돼 정치적 긴장이 있었으나, 어떠한 폭력 사태도 없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지난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3차례나 전쟁한 숙적 국가로서 그동안 서로를 상대로 한 역정보 전쟁도 벌여왔다. 이번 가짜뉴스도 그런 역정보 전쟁의 일환으로 보인다.

지난해 페이스북은 파키스탄의 군부와 연계된 계정을 폐쇄했고, 친인도 가짜 웹사이트 및 싱크탱크가 적발되기도 했다. 이 계정과 가짜 웹사이트 등은 유럽 등 서방에서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려고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번 가짜뉴스 사건은 조작된 계정에서만 유통되지 않고, 인도 유수의 언론매체들도 연관됐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사건의 발단은 야당 지도자인 사프다르 아완의 체포에 항의하는 집회가 카라치에서 열린 20일 밤에 한 익명의 트위터 계정에서 비롯됐다. @drapr007라는 이 계정의 트위트는 정부군과 경찰 사이에서 전투가 벌어져, 적어도 5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한 시간 뒤에 이 계정에는 또 “긴급뉴스: 파키스탄 군과 신드 경찰 사이의 격렬한 총격전이 카라치 굴샨 이 바그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글이 올라왔다.

카라치에는 그런 지역이 없는데도 이 ‘내전’ 뉴스는 곧 퍼져나갔다. 이날 카라치에서 가스 유출 사고로 인한 폭발 사고가 덧붙여지면서, 인도 유수의 언론들도 이 뉴스를 받아적기 시작한 것이다.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가 라디오에 애국 가요들을 방송하도록 명령했다’, ‘미 해군의 카라치 도착이 임박했다’는 뉴스도 나왔다.

<비비시>(BBC)의 취재 결과, 카라치 상황에 대한 가짜뉴스를 퍼뜨린 많은 소셜미디어 계정들이 신드 경찰을 위장하고 있었는데, 인도와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인도에서 활동이 정지된 언론인 <인터내셔널 헤럴드>의 이름을 가진 계정을 통해서 가짜 동영상들도 퍼져나갔다.

파키스탄에서는 인도 언론들의 이 가짜뉴스 소동을 파악하고는 조롱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유명한 가수이자 배우인 파크-이-알람은 트위터에서 “카라치 내전이 너무 악화돼 내 음식 배달 소년은 에이케이(AK)47 소총 등을 메고는 지뢰밭을 기어왔다”고 조롱했다.

인도의 한 중견 언론인은 <비비시>에 파키스탄에서 군과 경찰의 분열은 쇠락하는 파키스탄이라는 인도의 담론에 아주 적합한 것이라며 “이런 역정보를 전파하는 트위터에 대한 연구를 보면, 그런 가짜뉴스의 대부분은 집권당의 지지층이거나 관련자들에 의해 수행된다”고 전했다. 파키스탄 총리실의 디지털전략보좌관인 아슬란 칼리드는 인도 언론들이 파키스탄에 대한 공조된 역정보 작전을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말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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