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자주파’ 파격 발탁 이후
최근 외교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최종건 1차관이 했다는 말이 화제다. BC와 AC는 ‘최종건 이전(Before Choi)’ ‘최종건 이후(After Choi)’를 뜻한다. 지난 8월 부임한 최 차관이 외교부의 변화를 주문하면서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세대 교수 출신으로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 합류했던 최 차관은 청와대 안보실 비서관을 거쳐 외교부 1차관에 발탁됐다. ‘역대 최연소(46세)’ ‘첫 비(非)외시 출신’이라는 수식어가 말해주듯 최 차관 인사는 파격 중 파격이었다. 본인도 이를 의식해 ‘뭔가 보여줘야한다’는 의욕이 강하다고 한다. 외교부 한 간부는 “침체돼 있는 조직에 새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포부에 기대감도 있다”면서도 “장관도 아닌데 외교부를 본인 전후로 나누겠다는 것은 좀 과한 것 아니냐”고 했다.
◇새 스타일 ‘실세’의 의욕
최종건 차관은 부임 후 직업 외교관과는 다른 스타일을 연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지난달부터 자신 소관인 주요 지역국에 매일 ‘프로그레스 리포트’를 내라고 지시했다. 국별로 주요 현안에 대한 진행 상황 등을 업데이트하는 보고서다. 특별한 변동 사항이 없을 때도 리포트를 내야 하기 때문에 일선 실무자들이 상당한 부담을 느낀다고 한다. 최 차관은 최근에는 미국 대선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직접 챙기고 있다. 북핵, 전시작전권 전환 등 교수 시절부터 관심을 기울여온 이슈들이 미 대선 결과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미리 준비하고 대응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보좌관을 1명에서 2명으로 늘린 것은 이른바 ‘왕(王)차관’ 논란을 일으켰다. 최 차관은 국감에서 “(차관 비서실) 총원 4명에서 순증은 없다”고 했지만, 9급 비서를 빼고 5급 사무관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조직에서 무게감은 다를 수밖에 없다. 업무 보고를 받는 스타일도 과거 간부들과 다르다. 실무자들을 17층 차관실로 부르지 않고 각 국(局)에 내려가 보고를 받고 있다. 1차관이 2차관 소관인 다자(多者) 외교, 조약, 개발 협력 부서까지 업무 보고 대상에 포함한 것도 이전에 없던 일이다. ‘외부인’ 이미지를 벗기 위해 직원들과 밥 자리도 적극적으로 만들며 부 내 스킨십을 넓히고 있다. ‘왕 차관’ 논란을 의식해 강경화 장관에게도 깍듯하다고 한다.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이 지난달 10일 미국을 방문해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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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 대화' 둘러싼 잡음
젊은 실세 차관의 의욕적 행보에 대해 일각에서는 “가시적 성과에 대한 조급함이 느껴진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 차관은 외교 차관으로서 자신의 ‘대표 브랜드’를 원한다. 청와대 비서관 시절 그의 대표 작품은 9·19 남북 군사 합의였다. 이 합의가 우리 안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서해·동해 완충 수역’ 등 합의의 핵심 내용에 당시 최종건 비서관 입김이 세게 작용했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외교부 부임 후 주변 여건은 녹록지 않다. 코로나 사태, 임박한 미 대선 등으로 인해 굵직한 외교 현장이 대부분 올스톱 상태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미 국장급 동맹 대화’를 둘러싼 잡음도 이런 초조함에서 비롯된 부작용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최 차관은 지난달 미국을 방문해 1차관 직속인 북미국장을 대표로 하는 동맹 대화를 제안한 뒤 이를 방미 성과로 홍보했다. 하지만 바로 미 측에서 “합의한 적 없다”는 얘기가 나왔고, 후속 조치도 이뤄지지 않아 당초 목표로 내세웠던 ’10월 중순 개최'는 무산됐다. 애초에 대선을 코앞에 둔 미국은 새 협의체를 고려할 상황이 아니었다. 게다가 기존 한·미 간 대화 채널보다 급이 낮은 협의체 필요성이 크지 않은데 본인 영역을 확장하려다 동맹 간 이견만 드러낸 것이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지금 한·미 사이에서는 차관급 전략 대화, 북핵 협상 대표 채널 등이 돌아가고 있다”며 “국장급 대화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오히려 양국 소통 수준을 떨어뜨리는 셈”이라고 했다.
◇직급 뛰어넘는 ‘전략가’ 꿈꿔
최 차관과 청와대에서 같이 근무한 인사는 “최종건은 외교 안보 정책 종합적 밑그림을 그리는 전략가를 꿈꾼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 때의 박선원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 이명박 정부 때의 김태효 대외전략기획관 같은 역할이다. 이들은 대통령의 전폭적 신임을 바탕으로 직급을 뛰어넘어 외교 안보 정책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최 차관은 청와대 군비통제비서관, 평화기획비서관 시절에 우리 외교 안보 업무의 핵심인 북핵, 대북 제재, 동맹 이슈를 모두 직접 관리했다. 외교부 출신이 주축인 외교비서관실은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덜한 업무를 맡아 직원들이 ‘우린 뭐냐’고 푸념할 정도였다.
하지만 최 차관이 외교부에서 꿈을 어느 정도 실현할 수 있을 지는 두고 봐야 한다. 우선 외교부에서 청와대 때만큼 힘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다. 그는 안보실에서 대북 제재 해제 등을 적극 밀어붙이다 직속 상관인 김현종 2차장과 극심한 불화를 겪었다. 최 차관이 ‘김현종을 자르든 나를 자르든 하라’면서 출근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날 정도였다. 정권 운동권 실세들과 가까운 최 차관이 청와대에 남고 김 차장이 밀려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최 차관을 외교부에 내려보낸 인사가 대통령의 외교 전략 포석이 아니라 김현종을 더 신임한 데 따른 불가피한 선택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들어 외교부는 역대 어느 때보다 실질적 권한이 없는 상태다. 정권 출범 초부터 청와대가 외교 안보 전반을 틀어쥐고 외교부를 ‘뒤처리 부처’로 만든 결과다. 외교 소식통은 “청와대를 벗어난 이상 최 차관이 외교부에서 ‘원맨쇼’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2018년 9월 평양 프레스센터에서 최종건 당시 청와대 군비통제비서관이 남북 군사합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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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견제하면 어때"라던 자주파
학자 시절부터 남북 관계를 앞세우는 강경 자주파 성향을 보여온 최 차관이 외교부 조직과 어떻게 융합할지도 관심사다. 최 차관은 과거 언론 기고나 논문에서 “과도한 대미 의존과 맹신은 우리의 역사적 정체성을 송두리째 부정하게 만들 수 있다” “‘미국을 견제하면 어때’라는 담대한 세계관이 필요하다” “중국과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사고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현 정권 들어 외교부 내 ‘워싱턴 스쿨’은 전멸하다시피 했지만 그래도 직업 외교관들 머릿속에는 여전히 ‘한·미 동맹 우선’ 사고가 뿌리 깊게 박혀있다. 최 차관이 본격적으로 외교부 주도권을 잡기 시작하면 노무현 정부 시절 ‘동맹파·자주파 갈등’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찰음이 계속 새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임민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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