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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오병상의 코멘터리]검사장의 절명시..정치가 검찰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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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철 남부지검장 전격사퇴..'장관 지휘권이 검찰 정치화'

윤석열 국감에서 같은 맥락 주장..'총장은 장관 부하 아니다'

중앙일보

박순철 서울남부지검장이 19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서울고검·수원고검 산하 검찰청들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앞은 이성윤 서울지검장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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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2일 아침 대검찰청(윤석열 검찰총장) 국정감사는 엉뚱하게도 박순철 서울남부지검장의 사퇴발표로 시작됐습니다.

윤 총장이 ‘방금 박순철 지검장이 전산망에 사퇴서를 올렸다’고 보고했습니다. 갑작스런 사퇴에 다들 놀랐습니다. 남부지검은 라임 사태를 수사하는 곳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사퇴이유, 즉‘정치가 검찰을 덮어버렸다’는 제목입니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박순철은 지금까지 추미애 사람으로 알려졌습니다. 올해초 의정부지검장으로 부임하자말자 윤석열의 장모를 기소하고, 불과 7개월만에 서울지역 검사장으로 발탁됐습니다. 그가 추미애를 정면비판하면서 사표를 던졌습니다.

2.

사퇴서의 골자는 ‘추미애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가 검찰의 중립성을 침해했다’는 고발입니다.

수사지휘권 행사가 잘못된 첫번째 이유는 ‘거짓에 근거한 판단’이란 점입니다. 추미애가 윤석열을 수사에서 배제시킨 근거는 김봉현(라임 사태 주범격인 사기꾼)의 주장입니다. 김봉현을 수사해온 책임자로서 모두 거짓이라 반박했습니다.

즉 ‘라임수사 검사(윤석열 사단)가 룸살롱 접대를 받았다는 얘기는 김봉현이 (수사과정에서) 말한 적이 없고, 야권 정치인 비리는 (봐주려고 뭉갠 것이 아니라) 총장의 지시에 따라 철저히 수사해왔다’는 것입니다.

3.

사퇴서가 밝힌 ‘지휘권행사가 잘못된 두번째 이유’는 법의 취지에 맞지않게 남용되었다는 점입니다.

장관의 지휘권행사는 검찰의 중립성을 해칠 수 있기에 매우 엄격하게 행사되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지휘권을 행사하더라도 장관은 검사를 직접 지휘할 수는 없고, 오직 총장만 지휘하게 제한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기존의 법에 대한 일반적 해석입니다.

4.

박순철의 이런 해석에 따르면, 추 장관의 지휘권 행사는 검찰의 정치화를 초래했습니다.

수사책임자가 ‘거짓’이라고 밝히는데도 불구하고 추미애는 사기꾼의 말을 믿고 총장을 배제합니다. 지휘권행사 방식 역시 지나칩니다. 총장을 지휘하는게 아니라 아예 총장이 꼼짝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검찰수사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높아진데 대해 박순철은‘가만히 있을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검찰수사를 믿어달라’고 호소하면서 스스로는 ‘검사직을 내려놓으려한다’고 했습니다.

5.

윤석열이 국정감사에서 시종일관 주장한 내용은 박순철의 사퇴서와 같은 맥락입니다.

하이라이트는‘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는 윤석열의 작심발언이었습니다. 윤석열은 부하가 아니기 때문에 ‘장관이 총장을 배제한 지휘는 검찰청법 위반’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당연히 여당이 이 발언을 문제 삼아 설전을 벌였습니다. 추 장관은 ‘총장은 장관 지휘받는 공무원’이라고 당장 반박했습니다.

‘부하’란 표현이 직설적이긴 하지만 총장과 장관의 복잡한 관계를 설명하기엔 투박합니다.

6.

장관과 총장의 관계는 법적으로도 그렇고 현실적으로도 미묘합니다. 검찰이란 조직이 워낙 막강한데다, 준사법기관으로서의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조직법상 검찰청은 법무부 소속 외청입니다. 그러니 총장이 장관의 부하 맞죠.

그런데 검찰 책임자는 청장이 아니라 총장이라고 부르며 장관급 대우를 받습니다. 동급이죠.

장관은 감독권이 있지만 주로 인사와 예산을 통해 검찰을 통제합니다. 수사와 기소는 전적으로 총장 권한입니다. 협력관계죠. 물론 이번처럼 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박순철의 주장처럼 매우 제한적이어야 맞습니다.

7.

윤 총장이 작심발언을 했지만, 대부분 예상했던 발언들이었습니다. 윤총장은 뚝심은 있어 보이지만 별로 달변은 아니더군요.

대신 박순철의 사퇴서가 더 찡합니다. 검찰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서 떠나야하는 연정과 충심이 느껴져서일까요. 매천 황현의 절명시 같은 짠한 마음이 남습니다.

‘난작인간식자인' (難作人間識字人.험한 세상에 지식인 역할하기 어렵구나)

〈칼럼니스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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