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2 (일)

[ESC] 콤콤한 술, 소담한 비빔밥! 통영을 맛보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야소주반의 ‘해산물 한 접시’. 사진 백문영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거주하는 서울에서 멀고도 먼 통영을 방문한 목적은 한가지였다. ‘종일 먹고 마시는 데에만 집중하기’. 마음 맞는 친구 여럿이 몇 달 전부터 의기투합했다. 일정을 조율하고, 정리하고, 엎기를 수십번 반복한 후에야 겨우 출발할 수 있었다. 대략 5시간 걸려 도착한 통영의 첫인상은 혼란스러웠다. ‘동양의 나폴리’라는 우아한 별명과는 거리가 좀 있어 보였다.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기대가 반감되는 듯했다.

도착하자마자 향한 곳은 통영 버스터미널 근처에 있는 ‘산양식당이었다. 바다 마을에선 주로 생선과 회를 먹어야 한다는 편견을 타파하기 위해 선택한 곳이었다. 커다란 소머리를 종일 우려낸 국물에 각종 부위의 고기를 듬뿍 넣은 곰탕과 비빔밥을 주문했다. 곰탕에는 통통한 달걀 한 알이 빠져 있었다. 비빔밥은 고사리, 호박 나물, 무나물, 시금치와 버섯 등 각종 나물에 두부를 송송 얹어 낸 모양새가 소담했다. 나물 간에 기대 맛을 낸 비빔밥은 담백했다. 구수한 곰탕 국물 한 모금에 첫 소주를 걸치고는 마냥 신이 났었다.

한겨레

산양식당의 곰탕. 사진 백문영 제공


바닷가를 걸어 다니며 맥주와 번데기, 커피와 브라우니를 번갈아가며 먹다 산양읍 남평리 산기슭에 있는 ‘야소주반’으로 향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올라가자 고즈넉한 저택이 나타났다. 주인 부부가 실제 기거하는 집이기도 한 야소주반은 오직 사전 예약만으로 손님을 맞는다. 노을 녘, 마당을 둘러보며 이곳저곳에 나 있는 야생화와 각종 허브를 만나는 기쁨은 이곳을 방문해 본 사람만 안다. 각종 찻그릇이 있는 다실, 주인 부부가 직접 만든 막걸리가 익어가는 숙성실을 본 순간 ‘일반적인 식당과 차이가 확실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새콤하고 콤콤한 향이 풍기는 막걸리 숙성실에서 먹는 저녁 식사는 서울에서라면 그 누가 생각할 수 있을까?

한겨레

야소주반의 음식. 사진 백문영 제공


야소주반의 음식은 섬세하고 세련됐지만, 푸근했다. 막걸리 식초 소스를 곁들인 리코타치즈 샐러드, 껍질을 토치로 그을려 구수한 삼치회, 자연산 섭·뿔소라·비단가리비·보리새우 같은 귀한 해산물로 구성된 한 접시, 제철 맞은 송이와 전복을 넣은 맑은 수프, 쑥을 넣어 지은 솥밥과 등갈비구이 같은 음식들이, 통영의 두메산골 집에서 줄지어 나온다면 누가 믿어줄까? “더는 못 먹겠다. 소화제조차도 배부르겠다”는 얘기를 하기 무섭게 직접 빚은 막걸리가 등장했다. 부드럽게 터지는 탄산, 맑고 깨끗한 빛깔, 입안에서 청량하게 터지는 산미와 깔끔한 목 넘김까지 그야말로 식후를 장식하는 술로 합격이었다.

도시에선 당연하다고 여겼을 경험이 통영에선 다 새로웠다. ‘도시 만능주의’ 같은 편협한 생각을 내세우자는 것이 아니다. 몰라서 용감했고, 낯설어서 즐거웠다. 처음 방문한 통영에서의 첫날밤은 부른 배를 부여잡은 채, 알코올과 함께 흘러갔다.

백문영(라이프 스타일 칼럼니스트)

한겨레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
▶네이버 채널 한겨레21 구독▶2005년 이전 <한겨레> 기사 보기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