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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World & Now] 실리콘밸리의 트럼프 지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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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외신을 통해 미국 대선 사정을 접하시는 독자분들께서는 아마 다음 미국 대통령이 조 바이든 후보로 정해진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을 듯합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외신에 보도되는 각종 여론조사가 그렇게 이야기해주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보도만 본다면 우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미국 유권자의 절반에 가까운 이들을 간과하기 쉬울 듯합니다. 예를 하나 들어봅니다. 지난주 말 저는 실리콘밸리의 교외를 잠시 다녀왔습니다. 고속도로를 지나는데 육교에서 수많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이든 지지자들도 육교에서 유세를 하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숫자는 트럼프 지지자의 절반도 안돼 보였습니다. 도착한 야외에서는 "바이든이 당선되면 재앙이 닥칠 거야"라고 말하는 트럼프 지지자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돌아오는데 지역 라디오에서 트럼프 지지자 한 명이 사회자에게 이렇게 외치는 게 들렸습니다. "왜 미디어들은 우리들의 목소리를 막는가?" 도심 안 세차장에서 만난 어떤 이는 "트럼프를 사악하다고 공격하는 미디어 때문에 바이든의 증세 정책에 대해 합리적 토론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실리콘밸리는 민주당 지지율이 압도적인 곳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트럼프 지지자를 찾기란 전혀 어렵지 않았습니다. 비록 컴퓨터 앞에 앉으면 트럼프 지지자들 입장에서 접근하는 언론 보도를 찾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말입니다. 지난 대선 때도 그랬지만 미국 유권자 중 67%를 차지하는 백인들의 생각은 미디어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듯합니다.

저는 이게 미국 사회에서 '음모론'이 만연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이해하는 세상과 미디어를 통해 접하게 되는 세상 사이에 발생하는 거대한 차이. 그 커다란 인지 부조화를 메워줄 수 있는 간편한 수단은 음모론일 겁니다. 파충류로 구성된 은밀한 범죄자 집단이 언론을 통제해 트럼프를 모함한다는 해괴한 '큐어넌' 이론에 신빙성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믿는 공화당 지지자는 38%나 됩니다('모닝컨설트'의 10월 6~8일 조사 결과, 조사 대상 2199명). 이들은 거짓에 의존해서라도 자신이 믿는 가치를 지키려 합니다.

저는 현재 미국에 만연한 음모론이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봅니다. 그저 인터넷에 진실이 올라오는 것만으로는 민주주의가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소외받고 있다고 느끼는 이들을 이념의 채찍으로 더 소외시키는 미디어가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던 기존 선입견과 관념을 내려놓고 합리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공론장으로서의 미디어가 민주주의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미국의 사례를 통해 깨닫게 됩니다.

[실리콘밸리 = 신현규 특파원 rfrost@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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