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15 (토)

추석 온정은커녕…인적마저 뚝 끊긴 쪽방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추석연휴를 앞둔 지난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은 명절의 설렘보다 적막이 감도는 분위기였다. 쪽방이 모여 있는 골목골목은 돌아다니는 사람 없이 조용했고 더위와 답답함을 쫓으려 문을 활짝 열어둔 채 방충망을 쳐둔 모습이었다. 대화 소리 없이 TV 소리나 선풍기 소리만 새어 나왔다. 이곳에서 10년 넘게 거주한 김 모씨(72·여)는 "작년부터 폐병에 걸려 숨 쉬기가 힘든데 코로나19 때문에 밖에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담장 너머 지나다니는 사람들 구경하며 지낸다"면서 "자식이 없어서 추석이라고 특별한 것도 없고 몸이 불편해 명절 음식도 이웃이 해서 가져다주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하는 추석 명절이 다가오고 있지만 독거노인 등 홀로 지내는 취약계층은 코로나19 여파로 더욱 쓸쓸한 추석을 맞이하고 있다. 복지사·봉사원들이 직접 찾아가는 대면 서비스를 펼치기 어려워졌고 기업 경영난으로 후원도 줄어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을 향한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쪽방촌 주변 공원과 무료 급식소·상담소도 발길이 끊겨 한산했다. 내부에는 '2m 거리 두기' 안내문이 크게 붙어 있고 밥을 먹는 사람도 띄엄띄엄 앉아 있었다. 이곳에서 봉사하는 사람도 대부분 쪽방 주민이었다. 한 봉사자는 "이 동네에는 몸이 편찮은 분이 많기 때문에 우리가 약도 챙겨드리고 안부도 물으러 다닌다"며 "그나마 있던 공사장 일자리 같은 것도 줄어들어 공공근로 겸 봉사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쪽방 주민 박 모씨(56)는 "일요일마다 근처 교회 목사님이 공원에서 빵 같은 걸 나눠주곤 했는데 요즘에는 코로나19 때문에 그런 것도 없다"며 "기업에서 봉사를 나와 컵밥이나 과일 같은 음식을 나눠줄 때는 500~600명이 몰려 줄을 서기 때문에 절반은 받지 못하고 실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노인종합복지관도 매년 명절 봉사원들과 기업들의 기부로 바빴지만 이번 추석은 직원만 있어 썰렁하다고 한다. 코로나19 우려로 외부 봉사원 참여가 어렵고 기업 역시 경영난을 이유로 후원을 끊었기 때문이다. 어르신들 또한 복지회관에 모여 있지 못해 복지관 직원들이 일일이 방문 봉사를 펼쳐야 하지만 외부인 방문을 꺼리는 집도 많은 상황이다.

이은주 서울시노인종합복지관협회장은 "예전에는 봉사자가 많게는 100명 가까이 와서 집집마다 방문했는데, 올해는 하나부터 열까지 직원 30명이 다 해야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회장은 "추석 시즌인데도 후원 문의가 한두 건밖에 안 왔고 기업 역시 외부와 단절돼서 사회공헌활동이 어렵다고 전해왔다"며 "어버이날만 해도 후원이나 봉사자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너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반년 넘게 지속되는 코로나19와 여름철 장마·태풍으로 수해를 입은 지역에 기부가 쏠리면서 연말로 갈수록 도움이 부족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관계자는 "기부할 수 있는 여력이 정해져 있는데 코로나19와 수해 특별모금 때 참여한 분이 많아 연말에는 줄어들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차선책으로 비대면 봉사활동을 펼치는 이들도 있다. 윤순화 중앙자원봉사센터 사무국장은 "직접 방문해 안부를 나누고 인사하던 게 거의 없어지고 서로 조심스러워서 물품 전달만 하고 있다"며 "봉사원들이 각자 재택봉사로 명절 선물을 만들어 비대면으로 전달하는 등 방식을 바꿔 이어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수도권보다 덜한 지역에서는 소규모로 방문 봉사활동을 진행하기도 한다. 지난 17일 부산 대한적십자사 나눔의 집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송편, 완자, 산적, 고기 등 명절음식을 만들어 결연가구 100여 가구에 전달했다.

문천순 적십자봉사회 부산북구지구협의회장은 "코로나19로 몸은 멀어졌지만 마음은 가까이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명절음식 봉사활동을 진행했다"며 "한 젊은 베트남 여성은 남편이 두 달 전 사망하고 홀로 아이들을 키우는데 이런 명절음식은 처음 받아본다면서 눈물을 흘려 울음바다가 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금이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