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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문명에서 가장 멀리, 원시와 가장 가까이 비어서 충만한 섬…‘숨바’에서 숨을 쉬다 [다른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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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명의 ‘유유자적’

[경향신문]

경향신문

말로바에서 진짜 여행을 떠나온 기분이 들었다. 인공 시설이라곤 목조 가옥 서너 채뿐이다. 전기도, 인터넷도 없다. 해변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모닥불을 피워 빵을 구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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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보면 발리도 여행지라 여기만 살아도 좋을 것 같지만 막상 오래 머물면 여기서도 여행을 떠나고 싶다. 그래서 얼마 전 숨바(Sumba)를 다녀왔다. 숨바는 면적이 1만2000㎢에 달하는 큰 섬이다. 대략 제주도의 6.5배, 발리의 두 배 크기다. 국내선뿐이지만 공항도 두 개다. 그게 여행에는 유리하다. 우리는 발리에서 출발해 섬 동쪽 와잉아푸(Waingapu) 공항으로 들어갔다가 5박6일 동안 섬을 반 바퀴 돈 다음 서쪽 탐볼라카(Tambolaka) 공항으로 빠져나왔다.

발리에서 숨바까지는 비행기로 한 시간 반 거리다. 요즘 인도네시아 국내선을 타려면 코로나19 검사 결과지를 지참해야 한다. 비행기 티켓 가격에 래피드 테스트를 포함해서 공항에서 검사를 받도록 하는 항공사도 있지만 우리 일행은 전날 발리 시내의 작은 병원을 이용했다. 혈액 채취는 실외에서 이루어졌고 결과는 30분 만에 나왔다. 가격은 1인당 15만루피아(약 1만2000원)였다. 발리 공항은 마스크 착용과 간격 유지 등 코로나19 프로토콜을 지키고 있었다.

숨바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 섬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숨바와(Sumbawa) 하고는 다른 곳이야?”라고 묻기까지 했다. 물론 다른 곳이다. 우리를 안내한 건 프랑스인 사업가 ‘유리’와 ‘마린’이었다. 두 사람은 부부로, 숨바에 건축회사와 여행사를 갖고 있다. 누구나 그들을 만나면 ‘뭐 저런 순둥이들이 있나’ 놀라고, 같이 일을 해보면 ‘뭐 이런 꼼꼼한 인간들이 있나’ 놀란다. 이들은 호텔 공사를 수주받아 누사프니다에 왔는데 성격 좋고 일 잘하니 몇 달 만에 친구도 많이 사귀고 작업도 더 받았다.

유리와 마린의 건축회사가 누사프니다에서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반면, 코로나19 직전 시작한 여행 사업은 개점 휴업 상태다. 나와 친구들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숨바 여행에는 아직 불편이 많다. 대중교통과 고젝(Gojek, 공유경제 애플리케이션)이 없고, 깨끗한 현대식 호텔이 부족한 만큼 발리보다 숙박 가성비가 낮다. 스쿠터나 자동차 렌털 업체도 찾기 힘들다. 섬이 크고 길이 험해서 엔진 수명이 낮고 물류비 때문에 제품 입고조차 어려운 탓이다. 직접 가이드를 고용할 게 아니면 단체 여행이 최선이다. 우리는 고객인 척, 친구인 척 얼렁뚱땅 마린과 유리의 숨바행에 합류했다.

아무리 건기라곤 하지만 상공에서 내려본 숨바는 황량했다. 정글이 많은 발리와는 달랐다. 솔직히 여기 뭐 볼 게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막상 다녀보니 여긴 여기대로 독특한 절경을 갖고 있다. 목야지가 많은 덕에 야생인지 방목인지 모를 염소, 소, 물소, 작은 말을 섬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첫날은 공항 근처 시내 호텔에서 묵었다. 도시는 작았다. 대부분 조적식 단층이나 2층 건물이었고 교회가 많았다. 인도네시아는 인구의 87%가 이슬람교 신자다. 기독교는 9.87%에 불과하다. 숨바는 드물게도 기독교 섬이다. 벽을 알록달록 칠하거나 아기자기한 문양을 그린 건물들, 커다란 칼라가 달린 서양식 빈티지 드레스를 입고 교회 가는 주민들의 모습이 발리와 전혀 다른 인상을 준다. 어딘가에 페인트로 간판을 그린 영화관이 있을 것만 같다. 그 풍경이 귀여워서 나는 숨바에 도착한 지 한 시간도 안 되어 이곳에 살면 어떨까 상상하기 시작했다.

“여기 꼭 남미 같네.”

“내 생각도 그래. 고향에 온 거 같아.”

우리보다 며칠 일찍 도착해 있던 브라질 친구 세르지오가 대답했다. 그는 누사프니다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다. 유리와 마린이 누사프니다에서 1년 동안 사귄 친구가 내가 지난 3년 동안 사귄 친구보다 많은 것 같다.

이튿날 우리는 섬 남서쪽 말로바(Maloba) 해변으로 캠핑을 떠났다. 승합차 두 대로 움직였다. 길은 좁고 구불구불하고 가팔랐다. 몇 년 전만 해도 되돌아 나오는 길에 승합차가 힘이 달려 지나는 트럭에 견인을 요청했다는데 지금은 그나마 일부 포장이 되어 있다.

하얀 포말이 3단으로 줄지어 몰려오는 얕은 모래 해안은 서핑에 적합해 보였다. 해안선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발리 서쪽 꾸따, 스미냑, 짱구 일대는 이런 파도와 모래밭 덕에 서핑 명소가 되었다. 호텔, 고급 비치클럽, 나이트클럽, 레스토랑, 카페, 옷가게들이 빼곡하고 스쿠터와 승합차가 뒤엉켜 항상 교통체증을 빚는다. 하지만 말로바에 인공 시설이라곤 목조 가옥 서너 채뿐이다. 전기와 수도도 없다. 주민들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썼다. 우리도 그 우물을 사용했다. 누사프니다도 시골이라곤 하지만 전기, 수도, 인터넷이 있고 카페, 식당, 빵집이 있다. 나는 비로소 진짜 여행을 떠나온 기분이 들었다.

텐트와 해먹, 모기장을 설치하고 모닥불을 피웠다. 일행 중 와잉아푸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프랑스 청년 두 명이 요리를 담당했다. 그들은 열심히 밀가루를 치대더니 모닥불에다 난(naan, 서아시아와 남아시아의 납작빵)을 구웠다. 그 후 2박3일 동안 우리는 먹고, 수영하고, 책 읽고, 산책하고, 멍하니 바다와 별을 보며 지냈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 휴대폰 데이터가 안 터지기도 했지만 애초에 그럴 기분 자체가 들지 않는 곳이었다.

나흘째 캠프를 철수하고 다시 길에 올랐다. 북서쪽으로 향하다가 전통 마을에 들렀다. 마을 안에는 고인돌을 중심으로 밀짚모자처럼 생긴 전통 지붕을 인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집들의 역사는 600년을 추정한다는데 증거는 없다. 원주민들이 그 시절에 부동산 계약서를 쓰고 등기부등록을 했을 리 없다. 집은 세 개 층으로 나뉜다. 반지하에 가까운 1층은 가축이 사는 곳이다. 2층에서는 사람이 산다. 집 가운데 뾰족하고 높은 공간, 밖에서 봤을 때 밀짚모자 머리에 해당하는 곳은 조상의 영역이다. 각 집의 마루에는 물소 뼈가 걸려 있다. 물소를 잡을 때마다 기념으로 남겨둔 것이다. 마을을 구경하고 나오는 길, 광장에 뾰족한 나무 막대기가 서 있는 것을 보고 누가 묻자 토박이 가이드 ‘존’이 대답했다.

“적의 목을 꽂아두는 곳이야.”

일행이 ‘힉’ 하고 놀라자 존이 해맑게 웃으며 부연했다.

“옛날얘기야. 아주 먼 옛날.”

그때쯤 일행은 지쳐 있었다. 캠핑 끝에 제대로 샤워도 못하고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린 터였다. 다음 도착지는 폭포라고 했다. 발리에도 폭포는 많다. 이건 이것대로 아름답겠지만 나는 솔직히 이제 그만 문명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가보니 예상과 다른 그림이 펼쳐졌다. 폭포 주변으로 수로가 조성되어 있었다. 마침 주말이라 행락객이 바글바글했다. 물줄기가 시작되는 절벽 가운데까지 콘크리트 계단과 통로가 이어져 있었는데 나를 비롯해 몇몇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올라갔다가 내려오질 못해 쩔쩔맸다. 그런데 겁 없는 아이들은 거기서 펄쩍펄쩍 뛰어다니고, 콘크리트 벽을 맨손으로 기어오르고, 다이빙을 하면서 놀고 있었다. 하류에선 물소가 주저앉아 목욕 중이었고, 빨래를 하거나 세차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역동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높은 데 올라갔다가 무서워서 심장이 최대치로 쿵쾅댄 때문인지 나는 매우 기분이 좋아졌다.

폭포에서 연결된 수로를 따라 우리는 계속 걸었다. 벼가 무르익은 논이 끝없이 펼쳐졌고 논 주변으로 키가 삐죽하게 큰 나무들이 서 있었다. ‘파파야는 알겠고…. 저건 뭐지?’라고 생각할 때 가이드 존이 나타났다.

“코튼(면) 나무 본 적 있어? 키 작은 나무에서 자라는 면은 섬유를 짜는 데 쓰고, 이런 큰 나무에서 자라는 건 이불이나 베개 속으로 쓰지.”

설명을 듣고 목을 거의 90도로 젖혀서 위를 쳐다보니 나무에 새하얗고 몽실몽실한 이불 솜들이 맺혀 있었다. 나는 ‘천연 면 이불 솜’이란 게 그래도 어떤 가공을 거친 상태인 줄 알았지 나무에 열린 그대로인 줄은 몰랐다. 땅에 떨어진 솜에서 까만 씨앗을 발라내 씹으면서 걷다 보니 수로가 끝나는 곳에 다다랐다. 작은 계곡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수영을 했다. 물은 차고 깨끗했다. 전날 캠핑을 하다가 모기한테 뜯긴 자리가 차가운 계곡물이 닿자 진정되었다. 동네 사람 몇 명이 수영하는 외국인들을 구경하려고 다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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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에서 수영하고, 책 읽고, 산책하고, 멍하니 바다와 별을 보며 지냈다. 디지털 디바이스를 벗어나야 숨바의 기막힌 아름다움이 가슴으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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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지에서 나온 우리는 마지막 여정을 위해 섬의 북쪽을 향했다. 이제 인터넷을 할 수 있지만 아무도 휴대폰을 켜지 않았다. 나는 오랜만에 느끼는 머리와 마음의 개운함이 여행을 떠나온 때문인지, 그 여행지가 하필 숨바이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진짜 이유는 따로 있는지 모른다. 여행의 목적이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데 있다면 현대인에겐 인터넷과 디지털 디바이스를 벗어나는 게 가장 먼 여행이다. 숨바는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섬이다. 서핑에 미친 친구가 있다면 여기서 한 달쯤 캠핑하는 걸 권하겠다. ‘넥스트 발리’로 소문나기 전에 이 섬의 토속적 에너지를 경험할 수 있는 사람은 행운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모든 매력은 우리가 스크린에서 고개를 들기 전에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기록과 전시에 집착하지 않았기에 이번 여행은 그 어느 때보다 내게 오래, 생생하게 기억될 것이다.

▶이숙명

경향신문

영화잡지 ‘프리미어’, 패션지 ‘엘르’ ‘싱글즈’ 등에서 일했다. 27년차 프로 독거인으로서 <혼자서 완전하게>라는 책을 썼으며, 2017년 한국을 떠나며 짐정리를 하느라 고군분투한 얘기를 <사물의 중력>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현재 발리 인근 누사프니다에 살면서 가끔 글을 쓰고 요가와 스쿠버다이빙을 한다.


이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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