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피격 공무원 친형 "참담하고 괴롭고 힘들다…국가는 북한 만행 알릴 생각 있나"
"월북 하려 했다면 공무원증은 왜 배에 그대로 있었을까"
서해 북단 소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됐다가 북한에서 피격돼 사망한 공무원 A(47)씨의 친형이 24일 동생이 남겨두고 간 공무원증 등을 근거로 월북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사진은 A씨의 공무원증.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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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허미담 기자]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에서 표류하다 북한군 총격을 받고 숨진 공무원 A(47)씨의 친형이 우리 군 당국의 사건 경위 발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군 당국은 A씨가 해류 방향을 잘 알고 있고 해상에서 소형 부유물을 이용했다는 점 등을 들어 자진 월북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유족 측은 월북 근거가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A씨 친형은 25일 MBC와 인터뷰에서 "채무나 가정사로 몰아서 월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A씨 가족들은 숨진 A씨가 다른 배에서 2년간 근무하다 해당 어업지도선으로 넘어온 지 나흘밖에 되지 않아 구조를 착각했거나 실족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군과 정보 당국은 A씨가 월북을 시도하다가 북측 해상에서 표류했고, 지난 22일 북측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고 밝혔다.
군 당국은 A씨가 해류 방향을 잘 알고 있고 해상에서 소형 부유물을 이용했으며, 북한 선박에 월북 의사를 표시한 점 등을 토대로 자진 월북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에 대해 A씨의 친형은 전날(2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현재 언론과 방송에 나오는 서해어업관리단 피격 사망 보도가 저희 동생"이라면서 "정부는 말로만 규탄한다고 떠드는데 최소한 유가족인 저에게 아무런 통보가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신분증과 공무원증이 선박에 그대로 있는데도 불구(하고) 동생이라고 특정해 언론에서 쓰레기들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해상의 날씨가 아무리 좋아도 조류가 보통 지역과 달리 상당히 세고 하루 4번이 물때가 바뀐다"며 "월북이라는 단어와 근거가 어디서 나왔는지도 왜 콕 집어 특정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실종되고 해상 표류시간이 30시간 이상으로 추정되는데 헤엄쳐서 갔다(는 것이냐)"라면서 "조류가 가만있지 않고 사고 당시 (물때가) 11물인 점 그리고 이 해역은 다른 지역보다 조류가 상당하다. 팩트는 없고 가상으로 날조해 기삿거리를 가십거리로 다룬다"고 비판했다.
서해 북단 소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됐다가 북한에서 피격돼 사망한 공무원 A(47)씨의 친형이 24일 동생이 남겨두고 간 공무원증 등을 근거로 월북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사진은 A씨가 지냈던 선실의 모습.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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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친형은 또 다른 글을 재차 올려 "멀쩡한 국민이 북한의 해역에 떠밀려서 총살이라는 비극이 발생했는데, (이를) 마치 파렴치한처럼 몰아가는 게 개탄스럽고 분통터진다"며 "참담하고 괴롭고 몸이 힘들지만, 진실을 밝히고 싶다"고 했다.
이어 "약 30시간의 해상표류 중 최소한 20~24시간 동안 우리 해역에서 표류 또는 떠다닐 때 우리 군은 어디서 무엇을 했나"라며 "같은 시간 저는 애타게 동생을 찾았고 동생은 바로 위에서 거의 실신 상태로 북측에 잡혀서 총질을 당할 동안 군은 입 다물고 있었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충격적이고 참담한 사고가 국내에서 첫 번째로 군이 우리 국민을 총질하는 장면을 목격한 최초의 천인공노할 엄청난 사건임에도 국가는 국제사회에 북한의 만행을 알릴 생각은 있는지. 무슨 근거로 월북이라는 용어를 근거로 내세우며 몰아가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당시 조류 방향은 제가 직접 수색 당시 체크해본바로 강화도 방향이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그는 "월북을 하려 했다면 공무원증이 왜 배에 그대로 있었을까. 그리고 돈 없으면 가정사가 있다면 다 월북해야 하냐"면서 "빚이 있으면 나쁜 놈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동료 직원들도 정부가 제기한 월북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A씨의 동료인 서해어업관리단의 한 직원은 MBC와의 인터뷰에서 "10km 이상 떨어져 있었으면 생존율도 낮을 텐데 실제 월북을 하려고 했다고 해도 그렇게 무모하게 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북한의 총격으로 우리 민간인이 북한에서 사망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8년 7월11일 평범한 주부였던 박왕자 씨는 관광차 금강산에 방문해 해안가를 산책하다가 인민군 육군 해안초소 초병이 등 뒤에서 발사한 총탄에 맞아 숨졌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사건 발생 후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약속, 신변 안전 보장의 '3대 선결 요건'을 제시했지만, 북한이 거부했다. 이에 정부는 국민 보호 차원에서 금강산 관광을 금지시켰고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에 따른 대북제재를 본격화했다.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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