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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부대 생체실험 만행 고발? 이 사진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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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1911년 만주 페스트 환자, 1928년 제남사건 일본인 부검 사진을 731부대 만행으로 소개

조선일보

사진① KBS 역사저널 그날이 731부대 생체실험으로 소개한 사진. 실제론 1928년 장제스 국민혁명군과 일본군이 충돌한 제남사건 당시 살해된 일본인 시신을 부검하는 장면이다. 일본 국립 아시아역사센터 자료관 홈페이지에 '제남사건 방인 참살 사진'이란 자료로 실려있다./KBS 역사저널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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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② KBS 역사저널 그날이 731부대가 '13~14살 중국 남자 아이를 속여 산채로 해부'했다며 내보낸 사진. 실제론 731부대가 페스트 방역작업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731부대는 1940년 6월 페스트 균을 만주 신징 지역에 살포, 세균전 실험을 했던 것으로 훗날 드러났다. 자신들이 세균을 뿌리고, 실태 조사를 겸해 방역작업을 했던 것이다. 이 사진은 731부대의 야만성을 드러내는 증거이긴 하지만, 아이에게 생체실험을 하는 장면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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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를 쓴 의사가 수술대 위에 누운 사람의 배를 열어보인다(사진①). 길바닥에 쓰러진 아이에게 뭔가를 뿌리는 장면(사진②)과 함께 ’13~14살 중국 남자아이를 속여 산 채로 해부' 자막이 흐른다.

KBS TV ‘역사저널 그날’이 작년 8월11일 방송한 ‘군국주의의 광기-731부대와 마루타’. 1930년대 후반부터 일제 패망까지 중국인·러시아인·조선인 등을 대상으로 한 일본 731부대의 생체실험을 고발하는 방송이다. 731부대는 관동군 예하 세균전 부대로 부대장 이시이 지로 중장 이름을 따 이시이 부대로도 불린 악명높은 곳이다.

방송 도입부에 나온 장면은 731부대의 생체실험 만행 고발에 자주 이용된 사진들이다. 하지만 최규진 인하대 교수는 이 사진들이 731부대와 상관없는 자료라고 폭로한다. ‘역사비평’ 최근호 논문 ’731부대에 대한 민족주의적 ‘소비’를 넘어서'를 통해서다. 제1저자인 하세가와 사오리(인하대 박사과정)와 함께 썼다. 이들은 KBS ‘역사저널 그날’뿐 아니라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에서 엉뚱한 사진을 731부대 만행 자료로 쓰고 있다고 비판한다.

◇1928년 제남사건 부검을 731부대 생체실험으로 소개

731부대 생체실험으로 알려진 사진 ①은 1928년 제남(濟南)사건 당시 사망한 일본인을 부검하는 장면이다. 제남사건은 장제스가 이끌던 국민혁명군이 일본군과 충돌한 사건이다. 일본은 사망자를 제남의원에 옮겨 부검을 한 뒤 ‘제남사건 방인(邦人) 참살 사진’이란 문서를 만들었다. 위 사진을 포함한 부검사진 13장이 실려있는데, 10년쯤 뒤에 활동한 731부대 생체실험 사진으로 잘못 쓰였다는 것이다. 일본 방위성 방위연구소가 소장한 이 사진들은 일본 국립 공문서관 아시아역사자료센터 홈페이지에서 쉽게 검색할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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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③ 731부대 생체실험 사진으로 신문, 방송, 인터넷에서 널리 유포된 사진. 실제론 1910~11년 만주에서 널리 유행한 페스트 방역과정에서 페스트에 걸린 시신을 해부하는 장면이다. 1912년 일본 관동도독부 임시방역부가 발간한 '명치사십삼사년남만주페스트유행지부록사진첩'에 실린 사진이다. /일본 국회도서관 디지털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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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④ 731부대 생체실험 사진으로 신문, 방송, 인터넷에서 널리 유포된 사진. 실제론 1910~11년 만주에서 널리 유행한 페스트 방역과정에서 페스트에 걸린 시신을 해부하는 장면이다. 1912년 일본 관동도독부 임시방역부가 발간한 '명치사십삼사년남만주페스트유행지부록사진첩'에 실린 사진이다. /일본 국회도서관 디지털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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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부대 자료로 널리 유포된 사진 중엔 수술모와 마스크를 쓴 의료진들이 수술대 위 시신을 배경삼아 카메라를 바라보거나(사진③) 어린 아이를 해부하는 장면(사진④)이 있다. 이것도 ’1910~1911년 만주에 유행한 페스트로 사망한 이들을 역학조사 차원에서 부검하는 장면'이다. 1912년 일본 관동도독부 임시방역부가 간행한 ‘명치 사십삼·사년 남만주 ‘페스트’ 유행지부록사진첩’에 실려있다. ‘페스트 사진첩’은 일본 국회도서관 디지털컬렉션에서 온라인으로 누구나 볼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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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일본 관동도독부 임시방역부가 발간한 '명치사십삼사년남만주페스트유행지부록사진첩' 표지/일본 국회도서관 디지털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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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⑤. KBS 역사저널 그날이 731부대 생체실험으로 소개한 사진. 실제로는 731부대가 아니라 주몽골 일본군이 시행한 동계훈련 사진이다./KBS 역사저널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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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 부대 동상 생체실험으로 소개된 사진(⑤)도 731 부대가 아니라 몽골에 주둔한 일본군 군의부가 시행한 실험이다. ‘극비(極秘) 주몽군 동기 위생연구 성적’에 실렸다. 몽골 내륙 초원에서 혹한기에 작전할 경우에 대비한 훈련이었다. 1941년1월31일부터 2월11일까지 대동육군병원 소속 다니무라 소좌를 반장으로 한 50여명이 ‘생체 8(명)을 연행’해 700㎞를 오가며 복부 관통 총상을 일으켜 지혈·수술법을 연구하거나 만취 상태에서 동상 발생 상황을 관찰했다고 한다. 실험에 동원된 포로 8명은 살해, 소각했다. 최 교수팀은 ’1940년대에 들어서면 731부대가 아닌 부대에서도 이런 생체실험이 자행됐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방역 장면이 생체실험으로 둔갑

아이에게 생체실험을 하는 장면으로 소개된 사진(②)은 실제 731부대 활동으로 추정된다. 중국 지린(吉林)성이 2003년 펴낸 ’731부대 죄행(罪行)철증-특이급·방역문서편집'에 실렸다. 1940년 만주국 수도였던 신징(新京)과 눙안(農安)에 페스트가 유행했다. 관동군은 731부대를 파견해 방역활동을 펼쳤다. 그런데 페스트 유행이 731부대가 실시한 세균살포 때문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2011년 731부대원이었던 가네코 준이치의 박사 학위논문이 발견되면서다. 가네코는 731부대가 1940년6월4일~19일 비행기로 페스트 감염 벼룩을 살포했다고 썼다. 731부대는 페스트를 일으켜 놓고 그것을 숨긴 채 방역 작업을 한 것이다. 최 교수는 ‘자신들이 살포한 페스트 균이 어떻게 전파되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기 위한 역학 조사의 일환으로도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크게 보아 이 사진은 731부대의 만행을 보여주는 증거’일순 있지만, ‘이 사진 자체가 아이를 대상으로 731부대가 생체실험을 하는 장면이라고 설명해선 안된다’고 거리를 뒀다.

◇잘못된 사진 내걸고 민족주의 과장

731부대 허위자료 파문은 과거에도 있었다. 2005년 8월15일 MBC는 러시아 군사영상보관소에서 731부대 생체실험 영상을 입수했다며 보도했다가 오보로 밝혀져 다음날 사과방송을 내보냈다. 이 영상이 국내에서도 개봉된 홍콩영화 ‘흑태양 731’(국내 제목 ‘마루타’)을 흑백화면으로 처리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731부대가 중국인·조선인 수천명을 생체실험하고 세균전을 펼친 사실은 부대원이 남긴 증언과 기록 등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을 공격하면 그만이라며 자료 출처나 신빙성을 면밀히 따지지 않으면, 비판의 무게가 떨어지는 건 물론 역공을 당할 우려가 크다. 최 교수는 ‘언론에서 731부대에 대한 잘못된 사진을 내걸고 민족주의적으로 과장된 내용을 보도한 역사가 40년에 이른다’면서 ‘한국 사회에 이를 검토하고 교정해줄 만한 연구자들이 없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썼다.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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