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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세계와 손잡는 K팝

[이규탁의 팝월드] 강남 스타일이 개척한 길, BTS가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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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은 이미 앨범 차트 ‘빌보드 200’에 넉 장의 앨범을 잇따라 1위에 올리며 수백만 장의 앨범 판매고를 기록하는 등 탄탄한 팬층을 자랑해왔다. 사실 여기까지만 해도 한국 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굉장한 성과다. 그런데 싱글 차트 1위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음악을 즐기는 방식이 실물 음반에서 디지털 음원과 스트리밍 서비스로 전환되고 있다. 지금은 팬들도 앨범이 아니라 싱글 중심으로 음악을 듣는다.

따라서 앨범 판매량이 충성도 높은 팬들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면, 싱글 차트 순위는 음악이 일반 대중 사이에서 얼마나 널리 사랑받고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방탄소년단은 세계적인 인지도와 화제성, 충성도 높은 팬덤에 비해서 그동안 싱글 차트 성적은 다소 기대치를 밑돌았다. 그런데 ‘다이너마이트’를 통해 드디어 마지막 남은 목표였던 ‘핫 100’ 1위를 달성한 것이다.

1990년대에 10대 시절을 보낸 필자는 미국에서 히트곡의 기준이 되는 ‘핫 100’의 상위 40위권 노래들을 줄줄 외우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마이클 잭슨과 너바나, 보이즈 투 맨과 투팍의 노래를 통해 영어 표현을 배우고 미국 문화에 대해 눈뜨게 된 이른바 ‘빌보드 키드’였다. 이런 필자에게 ‘강남스타일’의 빌보드 히트는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한국인으로서 느끼는 자랑스러움과 뿌듯함만이 아니라 뭔가 다른 세상의 일처럼 제대로 실감이 나지 않는 그런 기분이었다고 할까.

조선일보

K팝의 빌보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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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스타일 이후 8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비록 ‘강남스타일’은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 즉 반짝 히트곡으로 인식됐지만 이 노래의 상징성은 무척 크다. 2000년대 말부터 소수의 열성 팬들 위주로 수면 밑에서 서서히 감지되던 K팝의 인기를 전 세계 팬들에게 뚜렷하게 각인시킨 계기이자 ‘K팝 폭발’의 뇌관이 된 노래였기 때문이다.

국내보다 해외 시장에서 더 큰 사랑을 받는 K팝 가수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2013년 데뷔 이후 미국 등 해외에서 더욱 폭넓은 인기를 누리면서 한국으로 ‘역수입’됐다는 평가를 받는 방탄소년단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K팝에 입문한 해외 팬들은 혁오·카더가든·딘 등 다른 장르의 한국 대중음악으로 관심을 확장하고 있다. 따라서 방탄소년단을 비롯해 블랙핑크와 몬스타엑스, 슈퍼엠 등 빌보드 차트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K팝 가수들은 ‘강남스타일’이 개척한 길을 따라가면서 자신들의 노력으로 확장하는 작업을 성공적으로 해냈다고 볼 수 있다.

혹자는 방탄소년단의 첫 빌보드 1위 곡이 지금까지 그들이 내놓은 한국어 곡이 아니라 영어 곡이라는 점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은 다른 가수들과는 달리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일부러 처음부터 영어 노래를 들고 가지는 않았다. 대신 한국어 노래로 먼저 팬덤을 확보한 뒤 전 세계 팬들을 위한 ‘팬 서비스’ 차원에서 영어 곡을 만들었다. 따라서 ‘다이너마이트’는 분명 K팝과 한국 대중음악의 자장(磁場) 아래에 있는 곡이다. 이 노래의 ‘핫 100’ 1위는 한국 대중음악사의 또 다른 빛나는 페이지가 될 것이다.

다만 그동안 빌보드 앨범 차트 4연속 1위를 하는 동안에도 싱글 차트 1위곡을 내지 못하다가, 이번처럼 영어 싱글을 발표했을 때에야 높은 라디오 방송 횟수를 기록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미국의 주류 미디어가 여전히 비(非)서구권 가수의 비영어 노래에 대해 개방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미국 시장이 ‘로컬(local)’에 머무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따라서 글로벌 보편성과 한국음악의 특수성을 조화롭게 결합시키는 것은 앞으로 더 활발한 해외 시장 진출을 꿈꾸는 한국 대중음악 산업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수

[이규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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