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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아는 맛이라 더 찾는다, 복고 타고 돌아온 '황금빛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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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김만두 - "겉은 파삭, 속은 페이스트리…" 옛맛 고급스럽게 재현해 인기

조선일보

"이건 80점 받긴 쉬워. 근데 85점 받기는 어렵지. 여기저기서 만들어도 정말 맛있게 내놓는 곳은 많지 않거든." 지난 12일 서울 석관시장 골목에서 튀김만두집을 하는 이모(64)씨가 갓 튀겨낸 만두를 가리키며 말했다. 분식집에서 볼 수 있는 튀김만두, 시쳇말로 '야키(燒き)만두'라 불리는 만두다. 반달처럼 접은 밀가루 반죽 안엔 별것도 없다. 잘게 다진 당면과 소금·후추 정도. 값도 싸다. 대개는 한 개당 몇 백원쯤. 이 보잘것없는 튀김만두가 요즘 배달앱 순위를 움직이는 인기 메뉴로 떠올랐다. '쿠팡이츠' '배달의 민족' 같은 배달앱 인기 순위에 오르는 떡볶이집 상당수가 '야키만두 맛집'이란 평을 듣는 곳. '금미옥' '뚝떡' '부자떡볶이' 등이 대표적이다. 학창 시절 학교 앞에서 먹던 맛이어서일까. 긴 장마에 지친 이들이 무의식중에 그리워하는 이른바 '아는 맛'의 힘일 수도 있겠다.

◇금싸라기처럼 튀겨낸 몇 백원짜리

서울 중구 예장동에서 경양식집 '그릴데미그라스'를 운영하는 김재우 대표는 자칭 타칭 분식 마니아다. 그는 "어릴 때부터 분식집 튀김만두를 좋아했다. 속이 꽉 차지 않아 바람 든 것 같은 맛이지만 그래서 또 매력 있다"고 했다. "결핍의 맛! 떡볶이 국물이 젖어들 때 비로소 완성되는 미완성의 맛이랄까. 누구나 아는 맛이지만 100%를 내는 곳은 많지 않아요."

서울 옥천동 '독립문만두'는 '알아서 더 무서운 그 맛'을 37년째 구현해온 곳이다. 사장 허복례(62)씨는 스물다섯 살 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동틀 녘 가게 문을 열고 만두 몇천 개씩 빚어 끓는 기름에 튀겨왔다. "아침에 눈뜨면 공기 냄새부터 맡아요. 날이 습한지, 쨍한지 보면서 만두 튀기는 시간을 몸으로 가늠하니까요." 불린 당면에 약간의 파와 백후추·소금을 넣고 갈아낸 것을 생반죽에 넣어 일일이 손으로 접는 것이 일과의 시작. 그가 기름이 절절 끓는 커다란 솥에 빚은 만두를 던져넣고 완전히 익을 때까지 온몸을 움직여가며 체로 휘젓는 모습을 보노라면 땀이 절로 흐른다. "이래야만 맛이 담백해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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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과 비지땀으로 빚어내는 음식이 있다. 서울 옥천동 ‘독립문만두’에서 튀겨져 나오는 이 만두도 그렇다. 절절 끓는 기름에 잠겼다가 쉬지 않고 저어주는 체에 실려 찬 공기와 바람을 맞고 다시 익어간다. 37년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인 팔뚝에서 나오는 맛이다. 왼쪽은 떡볶이 국물을 묻힌 성수동 ‘금미옥’의 야키만두. 복고 열풍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튀김만두의 맛을 보다 고급스럽게 해석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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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윤·김용준·이남곤 대표가 의기투합해서 성수동에 문을 연 떡볶이집 '금미옥'에서도 튀김만두는 "제일 예민한 인기 메뉴"다. 김용준 대표는 "한입 베어물었을 때 파삭 소리가 나고 속살은 페이스트리처럼 보드라워야 한다. 약불로 튀기다가 강불로 마지막 맛을 낸다"고 했다. "몇 초에 한 번씩 계속 뒤집어줘야 해요. 번거롭지만 맛이 다른 걸 어쩌겠어요."

당면과 후추만 든 분식집 만두의 형태가 굳어진 건 1970년대 이후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유추한다. 음식문화저술가 윤덕노씨는 "일본풍 중화요리 중 군만두나 탕수육 같은 것이 건너와 우리나라 중식이 됐고, 시간이 지나면서 분식 만두의 형태로 다시 진화했을 것"이라고 했다. 시장통 주인들은 또 다른 이유를 말한다. 허복례씨는 "본래는 다진 당근, 양파도 넣고 고기도 넣었다. 음식 맛이 쉬이 변할까 걱정해 고기를 빼게 됐고, 채소가 튀겨지는 과정에서 속이 거무튀튀해지는 것이 보기 안 좋아 당면만 넣은 형태로 굳어졌다"고 했다.

◇팔뚝으로, 비지땀으로 빚는다

서울 동대문 경동시장 골목은 또 다른 튀김만두 전쟁터다. '땡이네' '기태네' '짱구네'처럼 내공 있는 전문점이 몰려 있다. 1000원에 5개쯤 한다. 눈물겹게 저렴하지만 대충 만들어선 팔리지 않는다. 시아버지에 이어 2대째 만두를 만들었다는 배모(62)씨는 "튀김만두는 한숨으로 빚는 것"이라고 했다. "온몸이 결리도록 빚고 팔뚝으로 쉬지 않고 저어주면서 튀겨내요. 힘들다고 쉬엄쉬엄하면 틀림없이 그날은 맛이 별로라니까. 이렇게 하늘빛에 대봤을 때 찌꺼기 하나 비치지 않아야 제대로 된 거고요." 배씨가 잘 익은 만두 하나를 햇빛 아래 들어 보였다. 잡티 하나 없이 투명한 200원짜리 황금빛 반달이 보였다.

[송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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