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서 몰라도 온라인 조직성 인정 가능할 수도
여성을 협박해 성 착취 불법 촬영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지난 3월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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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공범이 누구인지도 몰랐어요."
"어떤 목적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저는 모르고 있었어요."
텔레그램 성착취물 공유방인 '박사방' 사건으로 기소된 공범들이 재판에서 저마다 이유를 내세우며 조직적으로 범행에 가담한 사실을 애써 부인하고 있다. 범행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사실만은 결단코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인데, 그 이유는 중형이 선고될 수 있는 '범죄단체조직죄'를 피하기 위해서다.
현재까지 열린 박사방 관련 재판에서는 범죄단체조직죄 적용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상태다.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부장 조성필) 심리로 열린 '부따' 강훈(18)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도널드푸틴' 강모(24)씨와 '랄로' 천모(29)씨는 공동의 목적에 따라 범행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날 증인신문에 나선 강훈 측 변호사는 천씨에 박사방 공동 운영자로 알려진 닉네임들을 열거하며 “이들과 직접 만나거나 연락한 적 있냐” “이들이 (조직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아냐”고 물었다. 이에 천씨는 줄곧 "그런 적 없다" "모른다"고 대답했다. 또 다른 증인으로 나선 강모씨는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그게 아동 성착취 범행의 일환인지 몰랐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항변을 요약하면 '공범끼리 서로 알지도 못하고, 조직의 목적조차 모르는데 어떻게 범죄집단이 되느냐'는 것이다. 박사장 주범 조주빈(24)으로부터 1대 1로 지시를 받아 범행을 하기는 했으나, 성착취물 제작ㆍ유포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려는 '공동 목적' 하에 움직인 조직원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애써 "조직원이 아니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범죄단체조직죄를 피하기 위해서다. 범죄단체조직죄가 인정되면 주범, 공범을 구분하지 않고 조직원 전원에게 '그 조직이 목적한 죄에 정한 형'으로 처벌할 수 있다. 즉 이들 모두에게 아동청소년보호법상 음란물 제작죄(최대 무기징역)를 적용해 중형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남은 재판에서 검찰이 △온라인 내 조직적 공모 정황 △범죄 수익 배분 등의 부분에서 ‘조직성’을 증명하는 것이 범죄단체조직죄의 유무죄를 가늠할 결정적 변수가 될 전망이다. 판사 출신인 신중권 법무법인 거산 변호사는 “단순한 지시 관계였다고 하면 조씨 단독 범행에 다른 이들이 공범이 될 수는 있겠지만 범죄단체조직죄 혐의 적용은 어려울 수 있다"며 "조직도상 역할 분담이 있었고, 그 중 자기 역할이 무엇인지를 (공범들이) 인지하고 있었음을 검찰이 입증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들이 오프라인상에서 몰랐다고 변명하더라도 이 범죄가 온라인상에서 벌어진 만큼 공모 여부를 달리 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온라인 범죄에 대해 오프라인 항변을 내세우는 것”이라 지적한다. 현실에서 서로를 몰라도 온라인상 닉네임에 기반해 공모가 있었다면 상관없다는 것이다.
검찰은 돈이 아니더라도 조직원들에게 피해자와의 오프라인 만남, 미공개 성착취물에 대한 우선 다운로드 권한 등을 준 것도 ‘이익 제공’으로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성범죄 전문 이은의 변호사는 “불법 성착취 영상을 보거나 다운로드 하는 것을 범죄수익 공유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일부 적극 가담자는 (범죄단체조직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 외에는 법리적으로 한계가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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