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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 (수)

이슈 'N번방의 시초' 손정우 사건

손정우·최종범…법원이 자꾸 욕먹는 이유 '성범죄 특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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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안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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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성착취 문제를 알린 여성 활동가들의 모임인 edn(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 회원들이 지난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손정우의 미국 송환을 불허한 사법당국을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손정우의 '미국 송환 불허' 결정을 내린 재판부의 판단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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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손정우 인도 불허 결정을 내린 후 일주일이 지났지만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최근 반복된 사법부를 향한 분노는 판사들이 성범죄 특성과 피해자 처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약 9%의 확률…그 어려운 걸 손정우가 해냈다



손정우 이전에도 법원은 여러 범죄자들을 놓고 외국으로 인도할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왔다.

대법원에 따르면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16년간 한국 법원에서 이뤄진 인도 심사는 총 55건. 그중 법원이 인도를 거절한 건수는 5건이다. 게다가 5건 중 3건은 공범 관계이기 때문에 법원이 인도 불허 결정을 내린 사건은 사실상 단 3건에 불과한 셈이다.

손정우는 이 희박한 확률을 어떻게 뒤집을 수 있었던 것일까. 그간 불허된 3건의 면면을 살펴보면 의문은 더 커진다. 베트남 정치범 응우옌흐우짜인(Nguyen Huu Chanh)과 '야스쿠니 신사 방화범' 중국인 리우치앙(류창) 사건은 정치범 불인도 원칙에 따라, 나머지 1건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 등으로 불허했다. 이는 모두 절대적 거절 사유에 해당한다.

반면 손정우의 경우 재판부의 재량이 크게 반영되는 임의적 거절 사유에 의해 인도가 불허됐다. 재판부가 거론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손병우 신병을 확보해 '웰컴투비디오' 사이트 회원들에 대한 발본색원적인 수사를 해야 한다는 것과, 한국이 주권 국가로서 주도적으로 형사처벌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조계 "디지털 성범죄 특수성 간과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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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W2V)를 운영한 손정우가 미국 송환이 불허된 지난 6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되고 있다./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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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일각에서는 해당 결정이 디지털 성범죄의 특수성을 간과한 결정이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사건 특수성을 간과하고 국내 범죄자를 찾아내 처벌해야 한다는 좁은 생각에 갇힌 것 같다"면서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고, 손정우가 국내에 있어야 그들을 찾아내기 쉽다는 이야기도 설득력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사법주권을 말하는 것 또한 오히려 이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면서 "손정우의 범죄는 초국가적 범죄이며, 그간 국제 공조 수사가 이뤄진 만큼 사법적으로도 국제 공조가 반드시 필요한 사건이고 사법주권을 거론할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회장 윤석희)도 비슷한 취지의 입장을 표명했다. 여성변회는 지난 8일 낸 성명서에서 "'웰컴투비디오'는 디지털성범죄의 특성상 국제 사법공조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손씨의 신병이 국내에 있어야만 수사가 속도를 낼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런 측면에서 법원의 이번 결정이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부족한 인식을 드러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법부는 여전히 사법주권이라는 미명하에 디지털성범죄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을 용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의 넓은 아량에…최종범도 불법촬영 '유죄' 피했다



성범죄 사건 특수성에 대한 법원의 낮은 이해도는 앞선 최종범씨 판결에서도 드러났다. 지난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 1-1부(부장판사 김재영 송혜영 조중래) 최씨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1심보다 형량이 높아졌지만, 피해자인 고(故) 구하라씨가 입은 피해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형량이라는 여론이 거세다.

최씨 형량이 낮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불법촬영 혐의가 1심과 같이 '무죄'로 선고됐기 때문이다. 법원은 최씨가 핸드폰에 저장해뒀다가 추후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던 피해자의 사진의 "서로의 동의 하에 찍힌 것"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사진 촬영 당시 상황이나 촬영 시점 전후 피해자와 최씨의 행동을 보면 사진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촬영됐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을 하지 않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즉, 피해자가 촬영 직후 반발하지 않은 점 등을 토대로 이를 불법 촬영물로 보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인 구씨는 1심 재판 당시 직접 증언대에 서 "찰칵 소리가 나서 무언가를 찍는구나 생각했을 뿐 나를 찍는지 몰랐고, 추후 내 사진이 찍힌 것을 인지한 뒤 지우려고 했는데 화를 내면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악화될까봐 참았다"고 일관되게 주장한 바 있다.

법원은 구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조계 "판사들, 연인관계 성범죄 특수성 이해 왜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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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 상해 폭행 협박 등 혐의로 기소된 고(故) 구하라 씨의 전 남자친구 최종범씨. / 사진=김창현 기자 chm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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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씨 측 대리를 맡고 있는 노종언 변호사는 이 문제에 대해 "재판부는 피해자가 가만히 있는 것이 과연 진정한 동의라고 생각하시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노 변호사는 "연인 관계인 남녀 간에는 상호의존성이 생기는데 그 특수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판결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이 건뿐만 아니라 수많은 데이트 폭력들, 가정 폭력 사건에서도 법원이 마찬가지의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큰 유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법원은 '맞았으면 바로 신고를 해야지 왜 신고를 안 하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면서 "하지만 현실에선 보통 처음에 구타를 당하거나 불법 촬영을 당하더라도 '관계가 악화되면 헤어질 수 있으니 이번만 참고 넘어가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을 판사들이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8년째 성범죄 피해자 대리를 하고 있는 신진희 국선 변호사도 "성과 관련된 범죄의 경우 특히나 범행 양상이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그에 대한 법원의 이해도는 낮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최나리 변호사는 "법은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서도 존재해야 하고, 부작용 우려가 분명 있기 때문에 피해자의 진술만을 최우선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점은 이해한다"면서도 "하지만 성범죄의 특성이나 피해자가 처한 현실에 대한 법원의 이해도는 여전히 현저하게 낮은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안채원 기자 chae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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