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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서울 말고] 우리에게 땅이 있다면 / 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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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명인(命人) ㅣ <회사를 해고하다> 저자

몇년 전에 땅을 샀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은 제일 먼저 무슨 생각을 할까?

대지 200평, 이것은 저마다의 사람들에게 어떤 가치로 상상이 될까? 만일 이만한 땅이 생긴다면 사람들은 그것으로 무엇을 가장 하고 싶을까? 약 5천만 인구 중에 자기 땅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전라남도 고흥군에 있는 한 시골 마을에서 땅 200평, 강원도 관광지 어디쯤의 200평, 충청도 어느 시골 마을 200평, 부산이나 대전 같은 대도시에서의 200평, 경기도 어디쯤의 200평, 같은 경기도라도 신도시의 200평, 서울 강북 혹은 강남에서 200평. 같은 면적의 땅이라도 어디에 있는 땅을 떠올렸느냐에 따라 상상이 되는 가치도, 그것으로 하고 싶거나 할 수 있는 일도 매우 다르지 않을까?

우리 가족이 수도권에 살 때까지만 해도 내 소유의 땅을 가질 수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으므로 나는 위에서 내가 열거한 지역들의 땅값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며칠 전엔 방송에서 들었다는 전세보증금 얘기에 내 귀를 의심했다. 서울 선유도역 주변 8평 전세 2억9천만원, 당산역 주변 9평 전세 3억2천만원, 망원동 9평 전세 3억6900만원. 땅값도 집값도 아니고, 그게 전세금 액수라니. 서울에서 전세는커녕 간신히 월세 보증금이나 될 돈으로 우리는 대지 200평에 밭 500여평을 샀다. 땅이 과연 무엇이길래 지역마다 이렇게 돈으로 매겨지는 가치가 다를까?

어떤 사람에게 땅은 사고 되팔아 이익을 남기는 것일 테다. 어떤 사람에겐 대대손손 물려줄 재산일지도, 또 어떤 사람에겐 개발 대상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 땅은, 2년마다 이사를 다녀야 하는 설움에서 벗어날, 자기 집 한 채에 대한 평생의 꿈일 것이다. 한편 우리 마을 할머니들에게 땅은, 빈 곳만 보이면 무엇이라도 심어야 하는 곳이다. 자기 밭도 모자라 남의 논둑에까지 돈도 별로 안 되는 작물을 심어야 하는 곳.

그렇게 평생 농사만 알고 살던 시골 사람들의 땅에도 세상은 투기의 바람을 몰아다 넣는다. 고흥에서 여수까지 닿는 연륙교가 놓이더니 그 주변 마을들이 술렁이고 땅값 소문이 수상하다. 마을마다 빈집이 수두룩한데, 읍내에는 아파트 공사가 늘어나 분양 광고 현수막이 여기저기 펄럭이더니 신청사를 짓고 이사한 군청 주변의 땅값도 수상해졌다. 점점 소농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운 농촌이 되면서 논도 우리가 처음 고흥에 왔을 때에 비하면 값이 올랐다. 우리 식구가 집 지을 터를 바로 구하지 못해서 사기를 미루었던 논이 몇년 사이에, 처음 사려고 했던 것에 비하면 반밖에 살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쌀값은 지대에 비해 얼마나 올랐나. 그걸 생각하면 농사로 먹고사는 사람이 아닌 나도 한숨부터 나오는데 그런데도 거기서 죽어라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아직 있다. 그 농민들의 시름이야 더 말해 무엇 할까. 심지어 어떤 사람들에게 이런 시골 땅은, 땅값 비싼 지역 사람들이 꺼리는 발전소나 비행기시험장 같은 시설을 지을 수 있거나 화력발전소 폐기물 따위를 묻어도 되는 만만한 곳이기도 하다.

지난해 경실련에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 5대 재벌이 소유한 토지자산이 10년간 23.9조원에서 75.4조원으로 51.5조원 증가했다고 한다. 기업 본연의 목적이 지대추구가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역대 모든 정권이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도 예외는 아니어서 대통령이 다주택 보유 공직자에게 집을 팔라고 지시했다는 기사도 보았다. 그러나 그에 이어지는 기사들을 보면 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그리 기대되진 않는다. 기업과 정치인에게, 아니 우리 모두에게, 과연 땅은 무엇이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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