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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한겨레 프리즘] 애도가 끝난 자리 / 엄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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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엄지원

사건팀장

기자로 살면 무대 위의 모습과 무대 밖의 모습이 다른 이들을 자주 보게 된다. 무대 위에선 호방한 재담꾼인데 무대 밖에선 극도로 낯을 가리고 무뚝뚝하다거나, 공식석상에선 약자의 수호자인데 실제로 만나보면 ‘갑질’이 몸에 배어 있다거나…. 겉과 속, 무대 안팎의 모습이 시종 비슷해서 놀라운 이들도 있긴 했다. 10일 숨진 채 발견된 고 박원순 서울시장도 그런 이들 중 한 명이었다. 카메라가 비추거나 안 비추거나 그는 우리가 아는 ‘박원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의 죽음 뒤 알려진 ‘성추행 피소’ 사실이 충격과 혼란을 준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미투’ 폭로의 대상이 된 거물급 정치인이나 전설적인 문화계 인사들은 여성 인권에 크게 기여하거나 목소리를 높여온 이들이 아니다. 그러니 그들을 향한 미투 고백에 놀라긴 했어도 그다지 혼란스럽진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알던 ‘운동가 박원순’은 19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 등 국내 여성 인권에 획을 그은 사건들을 변론했고, 서울시와 여당 출입기자로서 내가 알던 ‘정치인 박원순’은 사석에서도 좀체 ‘아슬아슬한 발언’을 하지 않는 ‘양반’이었다. 실체적 진실은 차차 밝혀지겠지만 피소된 사실만으로 충격과 혼란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를 신뢰했던 여느 시민들처럼 잠들기 어려운 며칠을 보냈다. 진자에 매달린 추처럼 이쪽과 저쪽을 오가는 마음이 생각을 방해했다. 하나의 기사를 두고도 독자에게선 “고인에 대한 예의를 지키라”는 의견과 “피해 호소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동시에 도착했다. 독자의 의견을 차치하더라도 기자로서, 인간으로서, 나를 붙잡는 원칙과 도의들이 있었다. 망자에 대한 예의, 큰 족적을 남긴 운동가에 대한 신뢰, 무죄 추정의 원칙….

그러나 <한겨레> 기자로서 가꿔온 제1원칙은 그 모든 걸 넘어선다.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는 것, 어길 수 없는 지상명령이다. 박 시장을 신뢰한 이유도 공인으로서 그가 늘 약자의 곁에 서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취임 뒤 가장 먼저 쪽방촌을 찾고, 선거 때 만났던 미화원들과의 약속을 지켜 일일 미화원 노동에 나섰던 시장, 트라우마로 숨진 지하철 기관사와 거리에서 숨진 노숙인의 빈소를 누구보다 먼저 찾았던 시장. 내가 신뢰한 것은 그런 박원순이었다. 그러니 지금, 그의 가치와 삶을 지지했던 이가 서야 하는 자리는 힘없는 자, 피해 여성의 곁이 아닐까.

박 시장의 공과가 모두 평가돼야 하는 것은 맞다. 역사는 운동가와 정치인으로서 그의 공을 공정히 기록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의 죽음의 죄까지 떠안도록 요구받고 고통스러워할 피해자가 어딘가에서 숨죽이고 있다. 그가 받은 충격은 분명 우리의 충격을 넘어설 것이다. 공과에 대한 평가 작업과 추모는 언제든 이어갈 수 있지만,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이의 회복을 위한 지원은 신속해야 한다.

일각에선 피해자에 대한 ‘신상털기’에 나서고 ‘정치적 음모’를 주장하고 있다. 무죄 추정의 원칙은 중요하다. 허나 피고인을 보호하기 위한 무죄 추정의 원칙이 피해자의 ‘무고죄’를 주장하거나, 그를 2차 가해하는 데 이용된다면 우리 시대는 부천서 성고문 사건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손쉽게 죄를 단정해선 안 되는 것만큼이나, 손쉽게 피해자를 매도해서도 안 된다. 성폭력 사건에선 더욱 그렇다.

애도를 넘어 피해자를 공격하는 이들에게 부천서 사건 당시 박원순 변호사 등이 작성한 변론 요지의 한 구절을 전하고 싶다. “우리는 권양(권인숙 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변호인들로서 언론에 대하여 무엇보다도 권양의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합니다. 권양을 근거 없이 비방-중상하는 숱한 기사들이 보도된 경위를 일일이 해명할 것을 요구합니다.” 오늘(13일)은 박 시장의 발인일이다. 애도가 그친 자리에서 ‘진실’을 찾아가야 하는 시점이다.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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