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0 (월)

[매경춘추] 내로남불 심리학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종이신문은 멀리하고 인터넷으로 뉴스를 읽는 것이 시대의 흐름이지만, 아날로그 세대인 나는 아침을 먹으면서 조간신문을 뒤적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잠이 보약인 체질이라 일어나는 시간을 최대한 늦추다 보니, 시간에 쫓겨 큰 글자 위주로 스캔을 하며 신문을 넘기다 눈길이 가는 기사는 본문까지 읽기도 한다.

신문을 읽다 보면 거의 매일 정치면에서 마주치는 단어가 '내로남불'이다. 우리말, 한자, 영어가 섞여 있는 재미있는 표현인데, 사자성어로 오해하는 젊은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내로남불에는 내가 남들보다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환상이 깔려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윤리의식을 실제보다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일까? 자신의 외모, 지능, 윤리성이 각각 몇 점 정도 되는가를 스스로 평가하는 설문조사가 기억난다. 주변 사람들을 기준으로,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면 100점, 그 반대이면 0점을 주는 방식이었다. 다수가 한쪽으로 쏠리는 집단적 편견이 존재하지 않으면 평균은 50점 근처일 것이다.

외모의 평균값은 52점으로 기대치 근처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능의 평균은 65점이었다. 자신이 남들보다 더 똑똑하다는 환상이 조금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객관적으로 비교하기 어려운 윤리점수는 평균이 무려 86점으로 매우 높게 나왔다. 즉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윤리의식이 다른 사람들보다 높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며칠 전 일이었다. 경부고속도로 진입로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는데 상습 정체 구역인지라 할 수 있는 일은 앞차 꽁무니만 바라보며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옆 차선에 있던 차량이 막무가내로 끼어들었다. 얍삽한 운전자는 순식간에 내 혈압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서 또 다른 승용차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욕설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날 저녁 집 앞의 한강공원을 걷는데 꽉 막힌 88올림픽도로가 눈에 들어왔다. 차들은 서로 양보하지 않고 시끄럽게 경적을 울려대고 있었다. '나도 시간에 쫓기고 바쁠 때는 이곳에서 끼어들기도 많이 했었지. 그런데 나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어.' 내 행동을 합리화했던 다양한 이유가 생각났다. '강의에 늦지 않기 위해, 비행기 탑승 시간에 맞춰 공항으로 급히 가다 보니, 골프장에 제시간에 도착하려고….' 그러자 갑자기 낮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내 앞에서 무리하게 끼어들었던 운전자도 혹시 빨리 이동을 해야 하는 어떤 사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끼어들어야 할 이유가 있고, 다른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는 이중잣대를 가지고 있었다니 이거야말로 내로남불 아닌가?

우리의 일상에는 내로남불이 넘쳐나서, 화를 내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스스로 자기 몸과 마음을 해친다. 내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화를 내기 전에 남의 사정을 헤아려볼 필요가 있겠다.

[박영석 자본시장연구원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