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강정호가 서울 마포구 스탠포드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음주운전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고 최숙현 선수 사건을 보면서, 지난달 한국야구위원회(KBO) 복귀 포기를 선언한 야구선수 강정호가 떠올랐다. 강정호는 미국 메이저리그서 뛰던 2016년 서울에서 음주운전 뺑소니 사고를 일으켰고, 추가로 두 차례 음주운전을 했던 사실이 조사 도중 드러났다. 법원은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메이저리그는 사실상 강정호에 대한 퇴출 수순을 밟았고, 강정호는 5월 국내 복귀를 타진했다. 하지만 그는 빗발치는 비난 여론을 이기지 못하고 복귀 포기 선언을 했다. 연봉을 기부하고 평생 봉사하면서 살겠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원소속 구단 키움도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적극적으로 영입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입장 수익이 중요한 구단에서 팬들을 자극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프로야구에서 범죄를 저지른 경우 퇴출은 공식이 됐다. 삼성의 박한이는 지난해 음주운전이 적발되자, 바로 은퇴를 선언했다. 2016년 승부조작에 연루된 이태양·문우람도 야구계를 떠났다. 이들은 실력이 없어서 떠난 것이 아니라,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퇴출당했다. 이렇듯 프로 스포츠에서 팬들의 눈은 높아졌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범죄를 저지른 선수는 스포츠인으로서 자격이 상실된 것이다.
프로에서 감독의 선수 폭행도 사라진 지 오래다. 2002년 기아타이거즈의 김성한 감독이 야구 배트로 2군 포수 김지영의 머리를 때린 사건이 사회적 파문을 낳은 뒤로다. 이번 최숙현 선수에게 폭력을 가한 감독의 사례와 사뭇 대비되는 장면이다.
‘맞지 않을’ 프로야구 선수들의 권리가 거저 보장된 것은 아니다. 1994년 오비 베어스 윤동균 감독의 폭력 행위에 소속 선수 17명이 항명 파동을 일으켰던 것이 시작이었다. 피해 선수들이 숨지 말고, 더 단합해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6일 국회에서 용감한 목소리를 내 준 고인의 동료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최근 프로 스포츠 선수들은 소속 에이전트를 통해 구단과 세밀한 계약을 맺는다. 스승과 제자가 아닌, 계약관계로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명확하게 정해놓는다면, 자연스럽게 폭력이 설 땅은 좁아진다. 아마추어도 마찬가지다. 성문정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박사는 “아마추어 선수들도 계약 단계부터 폭력 사건 등에 대한 강력한 제재 조항을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6일 늦은 밤, 대한철인 3종 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는 고 최숙현 선수에게 폭력을 가한 의혹을 사는 경주시청팀 감독과 선배 선수에게 영구제명을, 또 다른 선배 선수에겐 자격 정지 10년이란 중징계를 내렸다.
만약 최 선수가 세상을 등지지 않았어도 이런 결과가 나왔겠느냔 의문이 앞선다. 이제는 인권과 상식의 잣대로 선수를 보호해야 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최 선수의 죽음이 헛되지 않는다. 그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올림피즘’ 정신이기도 하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
▶네이버 뉴스판 한겨레21 구독▶2005년 이전 <한겨레> 기사 보기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