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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어린이 책] 과부·독신 여성·장애인… 약자를 향한 폭력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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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마녀 사냥

레이프 에스페르 안데르센 글ㅣ매스 스태에 그림 김경연 옮김ㅣ보림ㅣ144쪽ㅣ1만2000원

소년은 달음질쳤다. 오로지 저기 북서쪽 맑은 하늘을 향해 피어오르는 연기 기둥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기만 바랐다. 여전히 장작더미의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고, 연기가 폐를 찌르는 것 같았다. 고함과 비명 소리가 귀에 쟁쟁했다. 소년은 뭔가에 홀린 듯 장작더미를 에워싸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미치광이처럼 춤추는 사람들한테서 도망쳤다. 자신을 향해 달려들던 증오와 적대감으로부터 도망쳤다. 맹목적 무지에 기반해 나와 생각이 다른 누군가를 이단이라 못 박고 궁지로 내모는 건 몹시 위험한 일이지만, 광기에 사로잡힌 개인 혹은 집단이라면 못 휘두를 것도 없는 잔인한 폭력이다. "사람들이… 사람들이 어머니를 불에 태워 죽였어요!" 16세기, 유럽을 휩쓴 '마녀사냥'의 희생자는 대부분 가난한 과부와 혼자 사는 여인, 장애인 등 세상 낮은 곳에 머물던 약자였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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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나온 이 책은 병든 이웃을 치료해줬다는 이유로 마녀로 내몰린 어머니를 눈앞에서 잃은 소년이 숲속의 은둔자 한스 박사를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공황 상태에서 벗어나는 성장소설이다. 피해 당사자의 통렬한 증언으로 차츰 실체를 드러내는 폭력의 민낯이 생각에 날개를 달아주면서, 우리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편견과 편협에 경종을 울린다. “만약 네가 선택할 수 있었더라면 말이다. 너는 어디에 있는 어머니를 보는 것이 나았겠느냐? 다른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괴롭힘을 당하는 어머니냐, 아니면 그 바깥 괴롭히는 사람들의 무리 속에 끼어 있는 어머니냐?”

[김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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