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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여섯번 SOS 쳤지만… 경주시·대한체육회·협회 모두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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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팀서 가혹행위 당한 故최숙현 선수는 왜 극단 선택했나

트라이애슬론 최숙현(22) 선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하루 전까지 국가인권위원회에 절박한 호소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월부터 사망 전날까지 4개월여 동안 여섯 차례나 인권위·검찰·경주시청·대한체육회·철인3종협회에 폭행과 폭언에 시달렸다고 진정서를 내고 고소했지만, 그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으로 나선 곳은 없었다. 심지어 대한철인3종협회 관계자는 최 선수 장례식장에서 다른 선수들을 만나 "숙현이는 의지가 부족해서 잘 극복하지 못해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너희는 잘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선수들이 이용 미래통합당 의원 보좌관에게 전했다. 최 선수의 죽음 앞에서도 스포츠계의 폭행은 근절돼야 할 것이 아니라 참고 이겨내야 할 것이라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대한철인3종협회가 최 선수 폭행 사건을 인지한 것은 지난 2월이었다. 통합당 '고 최숙현 트라이애슬론 선수 사망 사건 관련 진상조사 태스크포스' 의원들에 따르면, 이재근 협회 사무처장은 처음에는 "이 사건을 4월에 알았다"고 말했으나, 이용 통합당 의원이 증거를 내밀며 '2월에 알지 않았느냐'고 계속 묻자 "협회 직원을 통해 2월에 알았다"고 말을 바꿨다. 당시 협회가 한 일이라고는 김모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 여부를 확인한 것뿐이다. 김 감독이 '아무 일 없다'는 취지로 말하자 추가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조선일보

가혹 행위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고 최숙현 선수의 생전 모습. 최숙현은 숨지기 직전까지 관계 기관에 여섯 차례나 도움을 요청했다. 그에게 돌아온 것은 “증거를 대라” “고소해라”라는 반응이었다. /고 최숙현 선수 유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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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선수 사건을 담당한 스포츠인권센터 조사관은 3일 "최 선수와 계속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락이 잘 되지 않았다"며 "지난달 25일 통화하고 증거 자료를 받았는데 그게 마지막 통화였다"고 말했다. 이양수 통합당 의원은 "조사관이 계속 증거를 요구하자, 최 선수가 '이걸 다 제가 해야 하는 건가요'라고 물었다고 한다"며 "용기 내서 신고했는데 기관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니 '신고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은 경주시 직장운동경기부 소속이다. 경주시 관계자는 3일 "진정에 대해 조사하려 했으나 팀이 해외 훈련 중이라 사실관계 파악이 늦어졌다"고 말했다. 최 선수 아버지 최영희씨는 "올 2월 경주시청에 가혹행위에 대해 진정했는데 보름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었다"며 "다시 찾아가니 담당 팀장이 '우리 예산으로 팀을 뉴질랜드로 훈련 보냈는데 지금 불러올까요? 안 그러면 고소하세요'라고 했다"고 말했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3일 발표한 애도문에서 "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팀 해체를 비롯한 강력한 조치 및 예방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3월 뉴질랜드 전지훈련에서 선수들을 폭행한 팀 닥터 안모씨는 대한의사협회 확인 결과, 의사도 아니었고 물리치료사 자격증도 없는 인물인 것으로 드러났다. 무면허로 선수들을 치료해왔던 것이다. 경주시체육회 여준기 회장은 "안씨를 불법 의료행위와 업무방해 등 혐의로 고발할 예정"이라고 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감독과 선배 선수들에게 폭언·폭행을 당했다는 선수들의 추가 폭로도 나왔다. 선수 A(23)씨는 3일 본지 통화에서 "2016년 입단 후 감독과 선배 선수에게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2016년 4월 소속팀의 한 선배는 자신을 불러 벽에 세운 뒤 각목을 다른 후배에게 주며 때리라고 강요했다고 한다. A씨는 "저를 때린 후배가 나중에 울면서 사과했다"며 "후배도 같은 피해자라 용서했다"고 말했다. 최 선수의 경북체고 단짝이었다는 B(22)씨는 "숙현이가 운동을 마치고 들어오면 울면서 많이 힘들어했다"며 "주로 체중이 늘었다는 이유로 많이 맞았다고 들었다"고 했다. 그는 또 "죽고 싶다는 말을 가끔 했는데 정말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김 감독과 선수들은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김 감독은 경주시체육회에 "지난해 3월 전지훈련 때 나는 팀 닥터 안씨를 말렸고, 그가 체격이 좋고 힘이 세서 밀리자 다른 선수도 같이 나서서 말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선수는 "최숙현은 나와 해외여행을 둘이서 다닌 적이 있을 정도로 친했다"며 부인했다고 한다.

[경주=권광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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