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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이슈 故최숙현 선수 사망사건

“폭력 못 견뎌 운동 그만둡니다”…최숙현들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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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실업선수 1천명 대상 인권위 실태조사 보니

“이거 못하면 X신, 패배자” 언어폭력 만연

신고해도 피해보는 건 선수

“문제제기해도 허무함만 남아”

“제3의 감시기구 나와야”


한겨레

국가대표와 청소년 대표로 뛴 23세의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선수 최숙현씨가 2013년 전국 해양스포츠제전에 참가해 금메달을 목에 거는 모습. 최숙현 선수 유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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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성희롱 언어폭력 피해자입니다. 저는 이런 상황에 못 견뎌 내년에는 운동을 그만 두기로 결정했습니다. 언어폭력을 들으며 스스로 자책하고 정말 못 하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너무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늘 할 수 있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지금은 훈련장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내가 하는 이 운동이 두렵습니다. 훈련에 집중하지 못하고 감독님에게 무슨 말을 들을지 너무 겁이 납니다.

오늘은 어떻게 혼이 날지 너무 무섭습니다. 너무 지치고 또 지치고 지쳐서 자해까지 자살 시도까지도 해버렸던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때가 떠오르지만 그래도 지금은 내년에 이 일을 그만둘 생각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습니다. 가장 사랑했던 일이 어쩌다 이렇게 흘러온지는 모르겠지만 제 몸도 마음도 온전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실업팀 운동선수 ㄱ씨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실업팀 선수 인권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실린 체육계 폭력 피해자의 호소다. 소속팀 관계자들의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최숙현 선수의 안타까운 희생에 또다른 피해자들도 가해 감독 등을 고소하는 등 용기를 내고 있다. 인권위가 지난해 공개한 이 보고서에도 최씨처럼 체육계의 케케묵은 폭력 관행의 피해를 호소한 선수들의 목소리가 담겼다. 이들은 △만연한 언어폭력과 지나친 권위주의 △무력화된 신고제도 △제3의 감시기구 부재를 체육계 고질적인 문제로 꼽았다.

먼저 ‘지도자의 말이 곧 법’처럼 받아들여지는 권위주의 문화를 고발하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실업팀 선수 ㄴ(26)씨는 “이만큼 너희한테 지원해주는데 이거 못하면 패배자다. 그럼 X신이지”라는 말을 훈련장에서 매일 같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안좋은 소문을 내 정신적 고통을 주는 것도 지도자였다. 실태조사에서 ㄷ(28)씨는 “감독님이 제 소문을 안 좋게 내는 거예요. 다른 시군청 감독들한테 안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려 한 것 같아요. ‘팀 욕을 하고 다닌다, 감독 욕을 하고 다닌다’ 이런 식으로요. 본인 덕분에 제가 이만큼 잘됐는데 배은망덕하다고도 하고요”라고 말했다.

신체적 폭력도 일상화됐다. 설문조사에 응답한 1천251명을 대상으로 현재 소속팀 내에 신체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는지 물었더니 26.1%(326명)가 그렇다고 답했다. 신체폭력을 당한 이유에 대해서는 ‘가해자의 기분이 좋지 않아서’라고 답한 비중이 38.5%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정신력이 해이해졌다’(30.2%)는 이유나,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서’(24.7%)라는 이유도 많았다. 심지어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답한 선수도 24.2%나 됐다.



“문제제기를 하고, 호소문을 써도 생각보다 변한 게 없어요. 달라진 게 없어요. 저희가 나서서 그런 일을 한 것에 대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허무함이 더 커진 거죠. 결국 우리가 운동하는 데 있어서 더 제재를 당할 것 같은 불안감이 오는 거죠. 협회 쪽이 그쪽 분들이라서, 협회 쪽에서 도움을 전혀 못 받을 것 같아요. 체육회에서도 아직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잘 모르겠어요. 경찰서 갔을 때도 성추행이나 폭행당한 거 있냐? 그거 없으면 돈 말고는 걸 수 있는 게 없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거예요”

-실업팀 운동선수 ㅁ(30)씨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분위기는 선수들이 피해 구제를 제대로 받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내부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배신자 이미지가 될 거라는 두려움이 많다”거나 “내가 폭행을 당했다고 신고를 하면, 그 신고로 인해 실업팀을 없애 버리니 신고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소속팀에서 신체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는 326건 중 대처방안에 대해 응답한 182명의 선수 가운데 절반 이상(67.0%)이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움을 요청해 폭력행위가 중단됐다는 응답은 1명에 불과했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거나(40.0%), 상담으로 종결(40.0%)된 사례가 많았다. 이밖에 대처를 잘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보복이 무섭거나(26.4%) △상대방이 불이익을 줄까봐 걱정되어서(23.1%)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서(22.0%) △상대방과 껄끄러워지는 것이 싫어서(20.9%) 순으로 응답이 많았다. 최씨 또한 숨지기 직전까지 대한체육회와 철인3종경기협회, 수사기관에까지 도움을 요청하고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과정을 보면서 무력감을 많이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가 생기면 그냥 경찰서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딱히 연맹에서 도움 받을 것도 없고. 예전에 선수가 무슨 일이 있어서 자기 회사에 이야기를 했는데요. 그때는 피해보는 건 선수였어요. 회사는 감독, 코치 말만 들어줬지. 선수 입장은 잘 안 들어주더라고요. 문제가 안에서 잘 풀릴 거라고 기대할 수 없죠”

-실업팀 운동선수 ㅂ(35)씨




선수들은 이제는 이런 관행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선수 ㅅ(25)씨는 “스포츠인권 설문조사가 각 시도 군청에 들어가잖아요. 그럴 때 경고문이랄까요, ‘선수들에 대한 억압적 행동이나 이런 걸 자제해라, 선수에 대한 모욕적 행동 삼가라’ 이런 문구를 군수, 시장, 그런 높으신 분들에게 전달해줬으면 좋겠어요. 실질적으로 스포츠 인권이 하락되는 이유가 시장, 군수님처럼 위에 권력 가지신 분들이 몰라서 일어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라고 말했다.

선수들은 이제 체육계가 실태 파악을 넘어 현실을 바꾸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선수들은 인권위에 “조사하면 나아지나요? 저희가 알리면 알려지나요? 운동선수는 다 참아야 되는 건가요?”, “조사만 하지 말고 진짜 개선될 수 있게 방안들을 세워주세요. 운동선수들은 너무 힘들고 답답합니다”, “백날 천날 이런 설문지 하면 뭐하나요. 전혀 개선되는 것이 없는데”, “탁상행정으로 끝나질 않기를 바랍니다” 등의 의견을 남겼다. 결국 인권위의 전방위적인 실태조사에도 불구하고, 최숙현 선수의 고통은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공론화되지 못한 채 안타깝게 마무리됐다.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한 마디에, 인권위 조사에 응한 한 선수는 아래와 같은 긴 바람을 남겼다. 또다른 최숙현들의 절박한 목소리다.



“이런 특별조사를 하면 문제점이 사라지나요? 정말 궁금해서 묻고 싶네요. 아직도 코치, 감독님들은 고지식한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권위적이고 성적만을 원하시죠. 그렇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 하는 것 같습니다. 성적 그 전에 선수분들의 인권을 먼저 생각하시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제 바람이네요. 인권위원회에서 좀 더 힘써서 좋은 훈련환경이 만들어지게 도와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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