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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 (일)

‘반일 종족주의’가 우리에게 끝까지 알려주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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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가지고 하는 거짓말, ‘반일 종족주의’

‘반일 종족주의’의 오만과 거짓

전강수 지음/한겨레출판·1만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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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귀향>에서 위안부 피해 소녀 역을 맡은 강하나의 촬영 모습. 제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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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버마 로드’에 있는 중국 쑹산의 한 마을에서 중국군 제8군 병사가 포로로 잡은 ‘위안부’들과 찍은 사진. 맨 오른쪽 만삭의 여성 이름은 박영심이다. 사진을 찍을 당시 박영심은 하혈을 하고 있었고, 결국 사산했다. 일본군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특종 보급품’으로 여겨, 연전연패의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끌고 다녔다. 웃으며 포즈를 취한 중국군 병사는 이들을 적(일본군)과 함께했던 전리품으로 여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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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효과적인 거짓말은 진실을 가지고 하는 거짓말, 그러니까 사실을 재가공한 거짓말이다.” (슬라보이 지제크 칼럼 ‘가짜뉴스에서 거대한 거짓말까지’, <한겨레> 2018년 9월28일 치)

사실을 재가공해서 만든 거짓말이 효과적이라는 지제크의 주장은 ‘반일 종족주의’ 논쟁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반일 종족주의>는 일제강점기와 관련해 어느 정도의 사실을 말하면서 몇몇 진실은 빠뜨렸거나 배제했기 때문이다.

<반일 종족주의>의 대표 저자인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을 가리켜 “전쟁 특수를 이용해 한몫의 인생을 개척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특히 문옥주씨의 경우 현재 가치로 약 8억3000만원의 돈을 위안부 생활로 벌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가 위안소 관리인으로부터 돈을 주겠다는 약속이 담긴 군표는 받았어도 급료는 실제로 거의 받지 못했다는 점은 밝히지 않는다. 그렇게 ‘위안부는 자유를 누리며 자신의 인생을 개척한 사람’이라는 ‘진실처럼 보이는 거짓’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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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 종족주의’의 오만과 거짓>은 <반일 종족주의>가 적당량의 사실을 말하되 몇몇 진실을 가려 거짓을 퍼트린다는 점을 논증한 역사비평서다. 지은이 전강수 교수(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는 대학원에서 일제강점기 한국경제사를 전공해 ‘식민지 조선의 미곡정책에 관한 연구’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근대경제사 전문가다.

지은이는 전공을 살려 일제강점기 경제사를 중심으로 반일 종족주의론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전 교수는 <반일 종족주의>와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에서 드러난 이영훈 등의 입장을 반일 종족주의론·토지 수탈·쌀 수탈·한일 청구권 협정·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등 다섯 가지 주제로 나눠 요약한 후, 이 주장이 사실에 부합하는지 경제사학자의 눈으로 검토한다.

그는 먼저 <반일 종족주의>의 주장이 모두 거짓은 아니라는 점을 밝힌다. 전 교수는 “일제가 신고주의를 활용해 조선 농민 소유지의 40%를 국유지로 수탈한 일은 없었다는 이 교수의 지적은 대체로 정당하다”고 인정한다. 국사교과서에서도 나온 이 오류는 다수의 역사학자가 인정했고 교과서는 수정됐다. 하지만 이 사실을 <반일 종족주의>는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반일 종족주의>의 주장처럼 일제는 한국의 토지를 수탈한 적이 없을까. 이 물음에 전 교수는 <반일 종족주의>가 어떻게 사실을 가공해 진실처럼 보이는 거짓을 만들었는지를 논증한다. 그는 <반일 종족주의>가 일제의 경제적 수탈은 없었다고 주장하고자 수탈의 개념을 ‘대가 없이 무력으로 빼앗아가는 행위’로 좁혔다고 말한다. 그는 일제가 ‘제도와 정책을 통한 수탈’을 했다는 증거도 제시한다. 일본인은 강 주변 저습지나 상습 침수지를 동양척식회사 등으로부터 차입한 자금으로 싸게 매입했다. ‘1930년대 말 50정보 이상 소유 대지주의 민족별 경지소유 상황’을 보면, 이런 수리조합지역의 토지 소유면적은 조선인이 15%, 일본인이 85%를 차지했다. 당시 조선 전체 대지주들의 토지 소유면적은 조선인이 52%, 일본인이 48%였다. 수리조합은 일본의 교묘하고도 주요한 수탈 조직이었던 셈이다.

<반일 종족주의>는 ‘부분의 진실’을 말하지만 동시에 중요한 거짓들을 만들었다. 지제크는 “우리는 언제나 특정한 이해의 지평에서 데이터에 접근하며, 어떤 데이터는 특권화 되고 어떤 데이터는 누락된다. 우리의 역사가 바로 이런 것이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반일 종족주의> 논란에 개입한 이 책은 탈진실 시대에 역사적 진실이 마주한 위기를 파악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젖힌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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