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운하, 선거 개입으로 재판중인데… 검사들 "모욕감 느낀다"
통상의 경우라면, 수사가 개시되면 진행하던 감찰도 중단하기 마련이다. 이번에는 이미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가 MBC의 '검·언 유착' 보도로 촉발된 의혹을 수사 중인데도 추 장관은 '실효성'이 없어 보이는 감찰을 지시했다. 이날 법무부 발표 이후 추 장관은 외부에서 열린 2개 행사에 참석해 윤 총장과 검찰을 난타했다. '검찰 개혁은 황운하 의원에게 맡겨도 된다'는 추 장관 발언에 일선 검사들은 "모욕감을 느낀다"고 했다. 경찰 출신 황 의원은 '청와대의 울산시장 하명 수사' 사건으로 기소된 인물이다.
25일 오후 추미애(오른쪽) 법무장관이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립준비단 주관 대국민 공청회에 참석해 축사를 마친 후 남기명 공수처 설립준비단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남강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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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비판 쏟아낸 秋, 친문 지지층 의식"
추 장관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여당 행사에서 "역대 검찰총장 중 이런 말 안 듣는 검찰총장과 일해본 적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책상을 여러 번 내려치며 "이것도 검찰의 치명적인 오욕"이라며 "(검찰이) 개혁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개혁의 대상이 됐다는 게 증명되지 않았나"라고 했다.
추 장관은 "검찰을 경험한 사람만 개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검찰 개혁' 눈 부릅뜨고 할 수 있는 사람으로 황운하 의원도 (책임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황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30년 친구인 송철호 울산시장 당선을 위해 청와대 하명으로 선거 직전 김기현 전 울산시장을 수사한 혐의로 기소돼 있다.
검사들은 "황운하 같은 사람이 '검찰 개혁'의 적임자라는 말을 법무장관이 하다니 어이가 없다" "같은 편이면 법을 어겨도 상관없다는 것이냐"고 했다. 추 장관은 이 행사 직전 열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공청회에서도 "검찰이 선택적 수사, 선택적 정의라고 할 만큼 그릇된 방향으로 왜곡되는 것을 많이 목격했다"며 검찰을 싸잡아 비판했다.
윤석열(왼쪽), 한동훈 |
이런 추 장관의 행보는 친문(親文) 진영의 '윤석열 사퇴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2일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는 당 회의에서 "입건된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직위 해제가 필요하다"고 했었다. 이 발언이 나온 지 3일 만에 추 장관이 한 검사장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보내면서 그에 부응했다. 최근 문 대통령 지지자들은 법무부가 운영하는 유튜브 영상에 '윤 총장을 제어하기 위해 추 장관이 하고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댓글을 수십개 달기도 했다. 법조계와 정치권에선 "여권이 앞다퉈 윤 총장 압박 발언을 내놓자, 부담을 느낀 추 장관이 그대로 받아 실행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추 장관의 '말 안 듣는 총장' 발언에 빗대 "우리도 이런 장관은 처음 맞아 본다"는 검사들도 있었다.
앞서 지난 22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추 장관과 윤 총장에게 "서로 협력해달라"고 했다. 그런데도 3일 만에 윤 총장 공격에 나선 이유에 대해 추 장관은 "(문 대통령 발언은) 인권 수사 제도 개선에 대해 (대검과) 협력하라는 것이고 이 사건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 뜻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는 취지였다. 이를 두고 한 변호사는 "감찰 자체보다는 윤 총장 퇴진을 압박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강하게 깔려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수사 중인 사건인데 돌연 감찰 결정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한 검사장이 채널A 이모 기자와 공모해 이철 전 VIK 대표에게 '여권 인사 비리 자료를 내놓으라'고 압박(강요미수)한 혐의를 두고 수사해왔다. 이철 전 대표 대리인으로 채널A 기자와 접촉했던 '제보자X' 지모씨는 '여권 인사 비리 자료'가 없으면서도 있는 것처럼 속여 취재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고발돼 있다. 또한 채널A 기자와 한 검사장에게 '강요미수'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느냐에 대해 대검 형사부 과장·연구관 전원이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해 윤 총장이 이 사건을 전문수사자문단에 회부한 상태다. 법무부 직접 감찰 결정은 이런 가운데 나왔다. 이 과정에서 윤 총장과 사전 논의는 없었으며 대검에 사후 통보했다고 한다.
이날 이철 전 대표는 서울중앙지검에 이번 사건과 관련한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했다. 자신은 '강요미수'의 피해자라며 채널A 이 기자와 한 검사장 수사·기소 여부를 수사심의위가 가려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일방적 피해자인지도 불분명한 이 전 대표까지 여권의 공세에 일조하는 모양새"라고 했다.
한 검사장에 대한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전보는 추 장관이 그를 상대로 한 두 번째 좌천 인사다. 정권 초기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 등을 총괄했던 공로로 2019년 7월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승진한 한 검사장은 이후 조국 전 법무장관 일가(一家) 수사, '청와대의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을 지휘하면서 여권 전체의 표적이 돼 왔다. 이후 지난 1월 인사에서 부산고검 차장으로 좌천된 데 이어 이번에 또다시 '한직(閑職) 중의 한직'으로 밀려난 것이다.
[이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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