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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섬마을 폐가 벽지, 알고 보니 19세기 수군 병사 군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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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신진도 폐가 거닐던 산림청 공무원 발견

출생연도·나이·신장 등 부친 이름과 함께 적어

“병사 징발보단 군포 징수 대상 선별 위한 것” 분석


한겨레

태안 신진도 폐가에서 한 공무원이 발견한 19세기 조선 수군 군적부의 일부분을 수습하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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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적부터 서해의 해상 거점이던 충남 태안군 섬마을 폐가에서 19세기 동네 바다를 지켰던 조선 수군 병사들의 이름과 인적 사항이 적힌 군적부가 나왔다. 섬을 산책하던 산림청 공무원이 우연히 폐가에 들렀다가 뜯긴 벽지 속에서 발견한 것으로 밝혀져 화제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최근 산림청 공무원의 신고로 태안군 근흥면 신진도 폐가에서 조선 후기 수군 명단이 적힌 군적부 4장과 한시를 적은 종이 3장을 수습했다”고 4일 발표했다.

판독 결과 이 군적부는 19세기에 만들어진 문서로 드러났다. 섬 건너편 항구 안흥에 설치됐던 수군 기지 안흥진의 군역 의무 대상자 60명의 인적 사항이 기록돼 있다. 해역을 지키는 병사인 수군(水軍)과 이를 돕는 구실을 하는 보인(保人)으로 나눠 이름과 주소, 태어난 연도, 나이, 신장 등을 부친의 이름과 함께 적어놓았다. 출신지는 모두 당진 현으로, 당시 당진 현감의 직인과 서명인 수결(手決)이 보인다. 사용 기한을 다한 뒤 집 안 황토벽에 벽지로 붙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후 다른 벽지를 덧대면서 가려졌다가 덧댄 벽지가 떨어져 나가면서 발견됐다.

연구소 쪽은 “16세기 이후 조선 수군 편성 체계를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문서”라며 “충청 수군 군적부는 현재까지 충남 서산 평신진(平薪鎭) 수군 군적부(서울 규장각 소장)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었던 만큼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밝혔다. 현지에 주둔한 수군 징병 대상자의 이름, 나이, 주소, 출생연도 등이 상세히 명기됐다는 점도 조선 시대 지방 수군의 운용 상황을 밝히는데 중요한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작성 형식이나 시기로 미루어 실제 수군 병사의 징발보다는 18~19세기 군역 대신 바쳤던 군포(軍布)를 거두기 위한 징수 대상으로 보인다고 연구소 쪽은 분석했다.

안흥진은 태안 해역의 신진도, 마도, 관장목을 잇는 험난한 해로인 안흥량 일대에 주둔했던 수군들의 기지였다. 안흥진의 수군은 고려 후기부터 조선 시대까지 왜구의 침입을 막고, 유사시 한양을 배후에서 지원하는 후원 부대 구실을 했다. 안흥량 일대가 물살이 가장 험하고 항해하기 어려운 해역으로 유명했던 만큼, 일대를 지나는 조운선(세금용 곡물을 실은 선박) 등의 사고 예방과 통제도 주된 업무였다고 전해진다.

군적부가 발견된 신진도 폐가는 상량문(上樑文:집의 대들보를 올릴 때 지은 내력과 연도 등을 적은 글)을 판독한 결과 ‘도광(道光) 23년’이라는 19세기 초 청나라 황제의 연호가 확인돼, 1843년 지어진 건물로 드러났다. 폐가 안에서는 판독이 가능한 한시(漢詩) 3편도 함께 발견됐는데, 지은이는 당시 조선 수군이거나 학식을 갖춘 지식인 선비로 수군 기지가 있는 바닷가 마을 풍경과 일상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연구소 쪽은 발견된 유물을 5일 오후 1시부터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에서 열리는 ‘태안 안흥진의 역사와 안흥진성’ 학술세미나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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