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DNA 확인 안 되어도 부녀관계 증거 명확” 판결
전북 전주에 사는 A(68·여)씨는 6·25전쟁 기간 중인 1952년 9월 태어났다. 부친은 딸이 출생하기 한 달 전에 입대, 여러 전투에 참가했고 1953년 휴전이 얼마 안 남은 시점에 경기 연천지구 전투에서 그만 전사했다.
서울 국립현충원의 전사자 묘역. 현충원 홈페이지 |
당시 A씨의 부모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에 A씨는 18세가 될 때까지 호적이 없는 ‘무적’ 상태로 지내다가 큰아버지의 딸로 출생신고를 하게 됐다.
경제사정이 넉넉치 않았던 A씨는 6·25전쟁에서 전사한 국가유공자의 유족으로 인정받고자 노력했다. 전주시청에서 선친의 묘적대장 기록을 찾았고, 이를 단서로 전사자 화장보고서도 확인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A씨와 아버지 사이에 친자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그러는 사이 A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될 정도로 생활이 어려워졌다. 고령의 어머니마저 요양병원에 입원해 병원비 마련도 시급해졌다.
결국 A씨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문을 두드렸고 공단 측은 A씨의 딱한 사연에 법률구조를 결정했다. 공단 소속 변호사는 먼저 친자관계를 입증할 확실한 증거를 찾기로 했다. 법원 허가를 받아 전주시 교동 국립묘지에 안장된 A씨 아버지 분묘를 개장해 유전자(DNA) 검사를 진행했다.
화장된 경우에는 통상 유골에서 DNA가 검출되지 않는다. 다만 ‘전쟁통에 화장된 경우는 고온에 노출되지 않은 유골이 있을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고려한 조치였다. 예상대로 화장된 유골에서 DNA는 검출되지 않았다.
공단 변호사는 다른 증거를 제출키로 했다. △육군본부가 부녀관계를 인정해 A씨에게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한 사실 △어머니와 A씨 사이에 친생관계가 있다는 확정 판결 △어머니가 아버지의 전사 후 미혼으로 살아온 사실 등을 재판부에 적극 소명했다.
3일 공단에 따르면 전주지법 담당 재판부는 최근 “A씨와 해당 전사자 사이에 친생자관계가 존재함이 명백하다”고 판결했다.
소송을 대리한 공단 박왕규 변호사는 “6·25전쟁 당시 불완전한 행정 시스템으로 인해 국가를 위해 희생된 전사자의 가족들이 유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다”고 말했다. 공단 관계자는 6월이 ‘호국보훈의 달’임을 강조하며 ”친생관계를 증명하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하는 만큼 언제든 공단을 찾아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