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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황석영 "우리 문학사에 빠져있던 산업노동자의 이야기 채워넣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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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간담회, 전날 막걸리 과음으로 늦잠 자 불참... 송구"
예스24의 웹진 '채널예스'와 함께 연재한 소설 책으로 묶어
염상섭의 '삼대' 이후 일제시대부터 21세기까지 노동자 3대의 역사 이어
"노벨상은 다 낡은 얘기, 의미 없어.. 노벨상 버금가는 '로터스 상' 복원 염원"


파이낸셜뉴스

황석영 작가가 2일 서울 서교동 창비서교빌딩에서 신작 '철도원 삼대' 출간기념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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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 10대국으로 성장하고 엄청난 산업사회로 진입했는데 산업노동자를 한국 문학에서 정면으로 다룬 장편 소설이 없었어요. 참 묘하죠. 이전에는 그 이유를 피상적으로 생각했는데 이 작품을 쓰면서 우리 문학사에서 빠진 부분을 채워넣으려 했습니다."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 작가 황석영(77)이 지하 50주년홀에 가득찬 기자들 앞에 섰다. 지난 1일 출간된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의 출간 기념 간담회를 위해서였다. 당초 지난달 28일 예정돼 있던 행사였지만 당일 황 작가가 전북 익산의 자택에서 늦잠을 자는 바람에 취소됐다 5일 만에 다시 열렸다.

간담회장에 들어서자마자 황 작가는 "지난 번에 헛걸음하게 돼 죄송하다"며 사과의 말부터 건냈다. "전날인 5월 27일이 광주 식구들 사이에선 중요한 날이어서 행사에 참여를 했는데 이제는 60대 중반이 된 당시 20대 청년들과 막걸리 한 잔 하다가 사단이 났다"고 설명했다.

"한국 술이 은근과 끈기가 있어서 참. 광주에서 익산까지 30분 거린데 12시쯤 쓰러져 잠들기 전에 새벽차 타려고 탁상시계 알람을 맞춘다는게 눌리지 않아서.. 다음날 오전 11시쯤 창비에서 난리가 나서 후배 작가들이 집 문을 두들기는 바람에 일어났는데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네요. 죄송합니다." 여든을 바라보는 작가의 연이은 사과에 간담회장은 오히려 푸근한 분위기가 됐다. 황 작가는 "오히려 간담회 펑크가 나서 신간 홍보가 됐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의 신작 '철도원 삼대'는 지난 주말 새 초판 1만부가 모두 소진됐다.

이후 자리에 앉은 황 작가는 이번 신간을 쓰게 된 계기부터 이야기를 꺼내기 술술 풀어내기 시작했다. 간담회의 시작부터 여든 넘어 절필을 선언했던 수 많은 문학계 선배들의 이야기를 죽 풀어놓은 그는 계속해서 글을 써야겠다는 의지를 다시금 갖게 됐다고 밝혔다.

"작가는 은퇴기간이 따로 있는게 아니에요. 죽을 때까지 써야하고 이게 작가가 세상에 가진 책무입니다. 기운이 남아있는한 써야죠. 하지만 그냥 마구 쓰는 게 아니라 죽을 때까지 새로운 정신으로 길을 가고 써야 합니다. 안되면 더이상 안되겠다 하는게 낫죠. 사실 지난 2017년에 쓴 자전 '수인(囚人)'을 쓰고 막막함에 부딪혔습니다. 이번 소설을 쓸 때도 기운이 딸리고 기억력도 딸려서 주인공 이름도 헷갈리고 고생했는데 그래도 소설 '장길산'을 쓸 때처럼 보따리를 들고 나와서 여기 저기 옮겨다니며 하루에 8시간에서 10시간씩 앉아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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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신간 '철도원 삼대' 표지


황 작가의 이번 소설은 온라인 서점 예스24의 웹진 '채널예스'와 함께 연재한 소설 '마터 2-10'을 묶어낸 것이다. 마터 2-10은 현재 판문점 근처 통일공원에 분단의 화석처럼 놓여있는 산악형 기관차의 제작번호다. 하지만 책으로 엮어내면서 독자들이 어려워하지 않도록 가제로 붙였던 '철도원 삼대'를 다시 가져왔다. 이 소설은 서울 영등포 지역을 중심으로 이백만, 이일철, 이지산으로 이어지는 철도 노동자 삼대와 오늘날 아파트 16층 높이의 발전소 공장 굴뚝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이백만의 증손이자 공장 노동자인 이진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해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전후, 21세기까지 이어지는 노동자와 민중의 삶을 실감나게 다룬다. 원고지 2000매의 분량에도 속도감 넘치는 전개로 책을 손에 뗄 수 없게 만든다.

황석영은 "이 소설은 민담의 형식을 빌려 쓴 작품"이라며 "1989년 북한을 방문했을 당시 평양에서 만났던 서울 출신의 70대 노인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구상하게 됐다"며 "철도 산업은 근대 산업 사회를 상징하는 중공업으로 근대 노동의 '핵'으로 철도 노동자가 보는 사회상을 다루고자 했다"고 밝혔다.

이번 작품의 제목이 '철도원 삼대'로 확정되면서 근대 한국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염상섭의 '삼대'도 거론됐다. 황 작가는 "근대문학의 시작은 염상섭 선배에게 있다"며 "3.1운동을 기점으로 시작된 우리나라의 20세기, 염상섭의 '삼대'가 개화기부터 3.1운동 시기까지 식민지 부르주아 주인공을 통해 조명했다면 저는 그 이후, 3.1운동부터 전쟁까지를 이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작품을 통해 노벨상을 염두에 두고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황석영은 "노벨상 이야기는 다 낡은 얘기 같다. 내가 좋아하는 선배인 필립 로스가 노벨상에서 기타치고 노래하는 밥 딜런에게 밀려서 놀랬다"며 "다들 심심해서 그럴텐데 노벨상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우리가 노벨상 같은 상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있다"고 답했다. 이어 황 작가는 "냉전시대 이후에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작가 회의(알라·AALA)가 사라진 것이 아쉽다"며 "당시 알라에서 노벨상 버금가는 로터스(Lotus)상을 줬었는데 진흙에서 연꽃이 피듯 각 나라의 사회에서 민중들의 고통들을 딛고 올라오는 연꽃같은 작품에 대한 상을 의미했다. 이걸 복원하면 어떤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희망사항인데 2~3년 내에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사회가 급변하고 있는 이 때, 다음 작품으로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볼 수 있는 철학 동화를 기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황 작가는 "코로나 19 사태로 우리가 20세기 이후 지구상에 만든 자본주의 세계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고 있다"며 "문명이 이렇게 온 것이 잘 해온 것인지, 인생의 말년에 이런 화두가 생긴 것 같아서 이에 대한 응답으로 작품 활동을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그는 "내 나이가 한국 나이로 78세인데, 10년 뒤 88세까지 어떻게든 버티려 한다"며 "담배도 끊으려 한다. 이제 서울은 복잡하고 심심하다. 술도 많이 못 먹고 친구들도 늙어버려서 만날 사람도 없는데 지방에서 공부를 좀 더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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