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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월세 못낼 ‘위기 가구’ 244만, 언제까지 ‘갓물주’만 기다릴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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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재난이 드러낸 주거불평등

6월3일 무주택자의 날

넷 중 한 가구(23.1%) 월세살이

코로나 장기화, 주거위기 가시화

주거급여 생계비 써 월세 못내

연세로 낸 월세 못 돌려받아

기존 법·제도 보호장치 작동 안 해

임대인 선의 기댄 운동으론 부족

“외국처럼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한겨레

주거권네트워크와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 사회경제 위기대응 시민사회대책위원회 주최로 2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주거세입자 대책 마련 정책간담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인사말을 통해 청년세입자의 주거문제가 코로나19 사태로 악화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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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이 없으면 서럽다. 코로나 시기에 집이 없으면 더 서럽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자기 집을 소유한 가구는 절반꼴인 57.7%뿐이다. 나머지는 전세(15.2%)나 월세(23.1%)에 산다. 코로나로 소득이 줄거나 불안정해졌는데, 월세 내는 날은 꼬박꼬박 돌아온다. 6월3일은 ‘무주택자의 날’이다. 지금 전국의 세입자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와… ‘갓물주’가 나타났다.”

“부럽네. 난 월급 받기 전에 (월세) 또 내야 하는데.”

“(집주인이) 돈 필요하다고 전세로 돌린다고 나가라네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지던 지난 2월 말 페이스북 ‘자취생으로 살아남기’ 페이지에 누군가 집주인으로부터 받은 문자메시지를 화면 갈무리해 올리자 1195개 댓글이 달렸다. 문자메시지는 “안녕하세요. 집주인입니다. 최근 바이러스로 모두가 불안하고 걱정이 많은 시기입니다. 조금이나마 걱정을 덜고 함께 이겨내고자 다음달부터 최종 고지시까지 월세를 30% 삭감하여 내실 수 있도록 조정하겠습니다. 건물에 거주하는 15세대 모든 가족분들의 건강과 안전을 기원합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뜨거운 호응과 환호가 이어졌다.

코로나 사태 이후 월세를 깎아줬다는 집주인의 미담이 가끔 인터넷에서 회자된다. 월세를 낮춘 건물주는 마치 인간을 고통의 늪에서 구원해준 ‘신’(god)처럼 ‘갓물주’라 불린다. 그만큼 집이 없는 보통 사람들에겐 다달이 돌아오는 월세의 고통이 일상에서 겪는 가장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월세를 깎아준 건물주가 ‘갓물주’라 불리는 건 그만큼 보편적인 일이 아니기 때문일 터. 매출이 줄어든 상가 임차인들을 위해 일부 지역에서 ‘착한 임대인 운동’이 벌어졌지만, 선의를 가진 소수 임대인들의 이야기다. 상가가 아닌 주거 임대인 중엔 착한 임대인 운동에 동참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코로나발 경제위기에 임대료 고통이 심해지자 외국에선 세입자들이 집 창문에 흰색 천을 내걸며 월세를 거부하는 ‘렌트 스트라이크’(월세 파업) 운동도 벌어졌는데, 우리나라에선 잠잠하다. 대부분의 세입자들은 일자리 불안에도 꼬박꼬박 임대료를 내고 있다.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2018)를 보면, 우리나라 전체 1967만4천여가구 중 자기의 집을 소유한 가구는 절반 수준인 57.7%(1136만2천여가구)뿐이다. 나머지는 전세(15.2%), 보증금 있는 월세(19.8%), 보증금 없는 월세(3.3%)에 산다. 네 가구 중 한 가구꼴인 23.1%(전국 455만3천가구)가 다달이 월세 부담을 지고 있는 것이다. 6월3일 무주택자의 날을 맞아 수개월째 계속되는 코로나 위기에 세입자들의 월세 고통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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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보다 무서운 건 ‘집주인’


서울 종로구에 사는 50대 부부는 4개월째 월세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아내 홀로 공장에서 일해 돈을 벌어왔는데, 2월부터 수출 일감이 사라지자 소득이 끊겼고 당장 낼 월세 30만원이 없는 것이다. 10대 아들과 딸을 키우는 부부는 일감이 있었을 때도 소득이 150여만원이었다. 네 식구가 먹고살기 넉넉지 않은 돈이다. 나라에서 지원받는 주거급여로 겨우 월세를 냈는데, 소득이 끊겨 당장 쓸 식비마저 없자 주거급여가 생계비가 되어버렸다. 집주인은 월세를 받지 못하자 부부에게 방을 빼라고 재촉했다. 부부는 임대차 계약기간이 남아 있으니 당분간 미리 낸 보증금 300만원에서 월세를 제하라고 호소했지만 집주인은 물러서지 않았다. 6월 말 장마철이 오기 전 누수공사를 해야 하니 집수리를 위해 방을 빼달라는 것이다. 네 식구는 두 칸짜리 방에서 나와 당장 거리로 나앉을 위기에 처했다.

사단법인 나눔과미래 종로주거복지센터에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되기 시작한 2월부터 집 문제로 위기를 겪는 사람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40대 초반 남성은 하던 일이 모두 끊겨 월세를 못 낸다며 센터에 문의했다. 연극 일을 하던 남성은 건설일용직 일을 병행해 생계를 이어왔는데 코로나로 두 일자리 모두 사라진 것이다. 보증금 100만원, 월세 10만원 단칸방마저 집주인이 ‘월세를 못 내면 나가라’고 하는 바람에 옮겨야 할 처지가 됐다. 다행히 센터에서 약간의 보증금을 지원해 몸을 누일 다른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얼마 전 종로구 고시원에 사는 청년 한명은 “당장 고시원비 낼 돈이 없다. 주소지는 서울이 아닌데 종로에서 주거비 지원을 받을 수 있냐”며 센터로 문의하기도 했다. 수개월째 계속되는 코로나 사태는 건강만 위협하는 게 아니라 살 집까지 잃는 위기로 번져가고 있다. 경제위기로 일자리가 불안한 주거 세입자들은 재난의 고통이 두 배다. 정은영 나눔과미래 종로주거복지센터 사무국장은 “얼마 전 정부에서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주긴 했지만 일부 가게들로 사용처를 제한했고 카드로 지원한 터라 세입자들의 월세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국가가 위기 때 생계비를 지원하는 긴급복지지원제도가 있지만 지금 충분히 활용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 시기 월세 부담을 겪을 가능성이 높은 가구는 전국에 약 244만8천가구로 추정된다. 지난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코로나 위기, 주거세입자 정책간담회’ 자료를 보면, 월세에 거주하는 전체 가구 중 코로나 시기 소득 감소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높은 ‘불안정 취약 직업군’(서비스·판매·기능업무·단순노무 등)에 속한 가구는 244만8천가구다. 이 중 보증금 없는 월세에 거주해 월세를 못 낼 경우 바로 퇴거 위기에 처하는 이들은 33만3천가구다.(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 2018 분석)

한겨레

페이스북 ‘자취생으로 살아남기’ 화면 갈무리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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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경기변동에도 월세는 그대로


전세계적으로 닥친 재난으로 많은 이들이 동시에 소득이 감소했는데 임대인이 기존 임대료를 그대로 받는 것은 고통 분담 의무를 회피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있다. 민법이나 상가임대차보호법에는 ‘차임증감청구권’이란 이름으로 경제적 변동이 있을 때 임차인과 임대인이 기존에 합의한 임대료를 조정할 수 있게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거의 작동하지 않고 있다.

대학생 김지훈(가명·21)씨가 올해 가장 후회하는 일은 지난 2월 충남 천안시 학교 근처에 자취방을 계약한 일이다. 김씨는 올해 2학기 종강 때까지 머물 방세 약 10개월치를 방을 계약하던 2월에 모두 선불로 냈다. 학교 근처 원룸촌은 한 학년간 머물 방의 월세를 선불로 내는 ‘연세’라는 관행이 있다. 김씨는 풀옵션 원룸의 연세 470만원을 지불하고 지난 2월 입주했다. 원룸 임대인들은 보증금 대신 약 1년치 방세를 계약 때 목돈으로 받는 방식으로 ‘원룸 장사’를 했다. 기숙사에 당첨되기란 하늘의 별 따기고, 다른 도시의 부모님 댁에서 통학하기란 불가능해 김씨가 학교를 다니려면 울며 겨자 먹기로 연세를 내고 자취방을 얻을 수밖에 없다. 사이버 강의로 전환돼 3개월째 학교에 못 가는 김씨는 식비라도 아껴보고자 자취방을 비우고 부모님 댁에서 두어달 생활했다. 김씨는 “방세가 아까워 5월부터는 학교 앞 원룸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일부라도 월세를 돌려받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로 아르바이트 구하기도 어려워서 지난해 알바해 저축한 돈을 ‘갉아먹으며’ 살고 있다.

주거권단체 민달팽이유니온은 지난달부터 ‘코로나도 힘든데 임대인이 너무행’이라는 프로젝트로 재난 속 겪는 주거권 침해 사례를 수집하고 있다. 정용찬 민달팽이유니온 기획국장은 “서울 대학가에 자취방을 얻었지만 온라인 개강으로 비서울 본가에서 생활하는 많은 대학생들이 기약 없이 월세를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대차계약에서 경제 상황을 반영한 임대료를 낼 수 있는 방식이 코로나 시기에 각광을 받고 있다. 일부 상가에서는 불황 때 매출이 줄면 임대료를 적게 받고 호황 때 매출이 늘면 임대료를 늘려 받는 매출 연계 방식의 임대차계약을 한다. 대표적으로 스타벅스의 일부 매장은 고정 금액 월세가 아닌 ‘매출 연계’(수수료 방식) 방식으로 임대료를 지불한다. 예를 들어, 수수료율 10%로 임대차계약을 맺고 입점할 경우 첫달 1억, 둘째 달 2억의 매출을 올렸다면 월세는 첫달 1천만원, 둘째 달 2천만원이 된다. 스타벅스코리아 관계자는 “어떤 방식으로 계약할지는 임대인이 키를 쥐고 있다. 상권과 임대인에 따라 고정 금액의 월세를 받기도 하고 매출 연계 월세를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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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선 왜 ‘월세 파업’ 없나


상가 임대료 부담은 코로나 위기 직후 3월부터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지만 주거 세입자의 월세 부담은 지금껏 거의 회자되지 않고 있다. 월세의 두세배가량을 보증금으로 맡기는 외국에 비하면 우리나라에선 월세의 수십배 이상 대규모 금액을 보증금으로 받는다. 세입자가 월세를 못 내면 임대인이 보증금에서 월세를 제할 수 있기 때문에 당장 강제퇴거 같은 주거 위기에 닥친 이들이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보증금이 없거나 낮은 월세에 혼자 살면서 코로나로 소득이 줄 경우 바로 퇴거 위기에 놓일 수 있다고 분석한다. 국토연구원이 지난 25일 발간한 <국토이슈리포트> 18호를 보면, 총 41만6천가구에 코로나 위기 발발 6개월 내 긴급 월세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41만6천가구는 ①자신의 소득이 줄 경우 주거비 부담에 곧바로 직접 타격을 받는 1인가구 ②보증금 규모가 월세 6개월치 미만이거나 무보증 ③서비스·판매·기능업무·단순노무 등 코로나 시기 일자리를 잃기 쉬운 불안정 직업군에 있다. 박미선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높은 보증금에 기반한 월세 임차시장이 우세해 해외처럼 한두달 월세를 못 낼 경우 직접 퇴거 위기에 놓이지 않지만 경제위기가 장기화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세입자들의 주거 불안이 점점 커질 것”이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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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임대인 운동? 정부는 뭐 했나


외국에서는 코로나발 경제위기로 주거 위기에 처한 세입자를 위해 정부가 법과 제도를 적극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임차인이 임대료를 납부하지 못하더라도 최소 3개월간 강제 퇴거를 금지하는 조처를 시행 중이다. 미국 42개주, 독일, 프랑스, 영국, 스페인 등에서도 코로나 시기 월세를 내지 못한 세입자를 강제로 퇴거시키는 일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미국 연방정부는 전체 주택 비중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정부 보증 모기지 주택의 담보 대출금 납부를 최장 1년간 유예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주거 세입자들을 위한 방패막이를 정부가 적극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더불어민주당, 주거권네트워크, 코로나19 사회경제 위기 대응 시민사회대책위원회 등은 지난 28일 국회에서 ‘코로나 위기, 주거세입자 정책간담회’에서 임대료 동결과 감액 청구 지원, 주거급여 확대, 강제퇴거 금지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개정연대 공동대표인 김남근 변호사는 “전 국민이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코로나발 경제위기가 길어져 월세를 못 내고 주택담보대출 이자를 못 내는 이들이 많아지면 파국적 상황이 온다. 재난지원금같이 시장에 돈을 푸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정부가 더 개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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